<드로잉쇼> 무대 위에 펼쳐지는 마술 같은 그림 그리기
미술이 무대 위에 올라 마술 같은 쇼로 탄생했다. 손에 물감을 묻혀 뿌리면 불꽃놀이가 되고, 아무렇게 그은 선들이 한 송이 꽃으로 피어난다. 완성된 작품에 놀라기 전에 그림이 그려지는 과정이 감탄이 먼저 튀어나오는 공연, <드로잉쇼>다.
넌버벌 퍼포먼스 <드로잉쇼>는 말 그대로 ‘그림을 그리고 있는’ 쇼의 무대이다. 지구어를 모르는 ‘The Look’ 일당은 자신들만의 소리와 몸짓, 그리고 가장 중요한 그리기를 통해 저마다, 그리고 관객과 소통한다.
공연은 미술관에 걸린 완성작 감상에 비견할 수 없는, ‘그리는 과정’에 포커스를 맞춘다. 1분에서 6분을 넘지 않는 초 스피드 드로잉 과정에, 빠르고 강렬한 비트의 음악, 어두운 공연장 안에서 더욱 눈부신 현광 불빛이 더해지면 관객의 넋은 이미 날아가고 없다. 여기에 1차 드로잉 위로 색이 솟아나고 또 다른 그림으로 변신할 때 아이들은 ‘우와~’ 하고, 어른들은 절로 입이 벌어진다.
미술을 주제로 한 쇼이니 만큼 다양한 드로잉 기법이 등장한다. 손이 붓이 되는 핑거드로잉, 빛이 캔버스에 새겨지는 빛드로잉을 비롯하여 마블링, 스템핑 등 갖가지 방법의 드로잉 테크닉은 과학과 마술의 조화처럼 예상 못한 결과를 빚어낸다. 또한 검은 선만으로 이뤄진 다비드의 명작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이 6분만에 완성되고 나면, 순간 그 위에 현란한 색이 입혀지고, 산수화 풍경 위로 파란 폭포수가 쏟아 내리는 등 <드로잉쇼> 만의 독특한 드로잉 방법도 빼 놓을 수 없다.
The Look 무리들의 드로잉이 단순히 빠르고 신선한 과정을 거쳤기에 객석의 탄성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다. 이들이 그린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 중 아담은 막대 사탕을 내밀고 있고, <최후의 만찬>의 예수님과 제자들은 롤러코스트를 타며 환호를 지르고 있는 등 명작을 멀게 만드는 근엄한 벽이 재미와 위트로 허물어 재탄생 되고 있다.
또한 숭례문 그림에서 뿌연 연기와 붉은 불꽃이 피어 오를 때, 그 옆에 서 있는 큰 칼 찬 이순신 동상이 그 모습에 묵직한 눈물을 떨어뜨릴 때, 이 시대의 씁쓸한 자화상에 가슴이 먹먹해 지기도 한다.
10년간 드로잉을 연구했다는 김진규 예술감독의 노력이 뒤늦게 대학로에서 빛을 내고 있다. 다양한 드로잉 기법과 기발한 발상의 표현이 참신하지만, 그리기와 보여주기의 반복이나 드로잉 사이에 선보이는 형광쇼, 화면을 통한 간접 보여주기 등은 넌버벌 쇼의 익숙한 장면이라 아쉬움이 남는다.
환상적으로 빚어내는 드로잉 과정처럼 환상적인 예술적 완성도가 더해진다면, 어른, 아이, 외국인 할 것 없이 모두를 관통하는 웃음과 감탄의 소리가 지금보다 더 객석을 채우리라 확신한다. 오픈런으로 사시사철 만나볼 수 있게 되었지만, 입추 후에 맞이하는 무더위 속, 이들의 기발환상스피드의 드로잉이 무엇보다 시원하다.
글: 황선아 기자(인터파크INT suna1@interpar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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