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어왕> 애정을 시험한 자 벌 받을 지니

보이나 보이지 않았다. 들리나 들리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 누구든 중력에 이끌려 오고 가는 한낱 종에 불과한 인간은, 자연의 순리에 따라 무릎 꿇어 비통한 침묵만 누리는 것이다.

살아 숨쉬는 사람들과 그들이 이루는 사회가 본능에 충실한 어리석은 간계를 끊임없이 반복하기에, 셰익스피어가 쓴 '리어왕'은 태어난 지 40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우리들의 정신을 아찔하게 만드는 경고로 다가온다. 극단 미추의 연극 <리어왕>에서 우리는 그간 어떤 리어왕에서 보다도 강렬한 힘을 느낄 수 있는데, 그대로 살아있는 이야기의 비극성이 그 첫째 동력이다.

세 딸들에게 자신을 얼마만큼 사랑하는 지 묻는 리어왕의 질문에서 불행은 예고된다. 부모 자식간의 신의를 의심하는 발상 자체가 어리석은 것. 두 딸의 감언이설에 리어왕의 두 눈은 본질을 향한 시력을 잃는다. 아비를 사랑하는 지극한 마음이 ‘당연한 자식의 도리’로 여겨 일부러 뽐내지 않는 막내딸을 천하의 불효녀로 낙인 찍어 프랑스 왕에게 내쫓듯 시집 보내는 것이 바로 그 증거이다.

여기에 부와 재산을 갖지 못할 서자로서의 운명에 격분한 백작 글로스터의 아들 에드먼드가 형과 아버지를 죽음으로 몰아넣는 것 하며, 이런 사악한 자에게 몸과 마음을 주며 서로를 시기하는 리어의 첫째, 둘째 딸들의 모습 등 어둠의 악취를 기둥으로 한 치밀한 이야기들이 극적 긴장과 비극성을 더욱 극대화 한다.

하지만 미추의 연극 <리어왕>의 강렬함은 대사와 텍스트의 힘 보다 소리, 빛, 의상 등 여타의 요소들을 통해 더욱 발현된다.

의상은 흑과 적만이 혼재한다. 하지만 유일하게 셋째 딸 코딜리어에게는 순백의 옷이 주어진다. 커다란 목소리로 백성들과 자식들을 통제하던 리어왕의 옷은 붉게 찬란하여 풍성하였으나, 두 딸들에게 버림 받은 후 거리를 떠돌며 정신을 잃어갈 즈음, 그는 차례로 빛 바란 흙빛 누더기 차림의 벌거숭이로 변할 뿐이다.

귀를 찢을 듯한 타악 소리와 구슬피 흘러오는 대금 소리가 대조 속 조화를 이룬다. 무대 위로 고요히 오르내리는 처연한 막들은 단순하고도 가장 효과적으로 인상 깊은 공간들을 만들어낸다. 내리쬐는 스포트라이트에서부터 안개를 머금은 듯 아득한 빛 까지 조명은 묘한 쾌감까지 만들어 낼 정도이다.

여기서 가장 돋보이는 것은 ‘몸’이다. 인간의 또 다른 언어인 몸에서 관객들은 입을 통과하지 않는 수 많은 인물들의 고뇌를 알아차릴 수 있다. 단련된 배우들의 능수능란한 몸의 쓰임은 동생의 계략으로 집에서 쫓겨나게 된 에드거(조원종 분)가 미치광이로 분하며 세상을 떠돌 때, 그리고 눈 먼 아비를 앞에 두고 괴로워할 때 정점에 달한다.

‘효’를 중시하는 동양적 사상을 물씬 엿볼 수 있는 리어왕이라 할 지라도, 서양의 작품을 동양적인 형태로 풀어낸 것 하며, 의심없이 믿음을 실을 수 있는 무게감과 배우들이 자리하여 연극 <리어왕>에는 미추의 색이 여실히 드러난다. 이 시대를 보고 말하는, 발랄함을 가장한 가벼운 여러 시각들에 대해 이렇게 또 한번 명작은 격조있는 조소를 날리고 있다.

글: 황선아 기자(인터파크INT suna1@interpar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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