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란> 여전히 안타까운 그들의 엇갈림


한심하고 비루한 인생이 여기 있다. 새파란 후배에게 무시당하고 중학생에게마저 얻어 맞는 건달 강재. 이제 마흔 줄에 접어들었지만, 그에게 남은 건 발에 치이듯 날아드는 경멸뿐이다. 언젠가 이 짓거리 때려치우고 고향에 내려가 배를 띄우는 게 마지막 희망인 삼류 건달이다.

그런 그에게 갑작스럽게 날아든 러브레터. 한 여인은 세상에서 그가 가장 좋단다. 어리둥절할 정도로 순수하고 직접적인 고백으로 남자의 마음은 출렁이지만, 이 편지의 주인공은 이미 세상을 떠난 상태다.

뮤지컬 <파이란>은 동명의 영화, 소설과 마찬가지로 삼류양아치 강재와, 중국 여인 파이란의 안타까운 사랑을 그리고 있다. 한껏 허풍을 떨어보지만 무시만 당하는 건달 강재와 돈을 벌기 위해 강재와 위장 결혼하는 파이란. 세상의 마이너리티들이라 할 수 있는 이들의 애틋한 이야기가 무대에서 펼쳐진다.

이 작품의 묘미는 스토리 자체에 있다. 제대로 만나 본 적도 없는 이들의 절박함이 묻어나는 사랑은, 언제 보아도 눈시울을 붉히게 만들고, 강재가 얼굴도 본 적이 없는 파이란의 시신을 거두러 가는 여정은 여전히 안타깝고 애틋하다.

하지만 영화나 소설을 원작을 무대에 올릴 때면 빠지는 딜레마를 이 작품도 피해가진 못한 듯 하다. 원작의 세밀한 묘사와 많은 에피소드를 압축하거나 생략하는 과정에서 오는 스토리 전개의 허전함이 이 작품에서도 느껴진다. 이 때문에 강재와 파이란 사이의 감정이 급하게 진행되어 영화에서 미리 감정선을 보지 않은 관객이라면 뜬금없게 느낄 수 있다. 또한 과감하리만큼 배제한 무대세트는, 관객입장에선 아쉬움이 남는 선택이다.

강재역을 맡은 서범석은 후반부에 갈수록 강재에 몰입하면서 무대를 휘어잡는 건 여전하지만 이전 <노트르담드 파리>에서 보여줬던 강렬한 카리스마를 보이진 않는다. 중국에서 오디션을 통해 발탁된 중국 배우 은유찬은 가냘프고 순수한 파이란의 모습을 잘 그려낸다. 꾸미지 않아도 저절로 구현되는 미흡한 한국어 구현은 제작진의 의도대로 흘러간다. 하지만 극중 구사되는 중국어가 자막 처리 되지 않는 건 자칫 불친절해 보일 수 있다. 극을 이해하는데 별 무리는 없다고 해도 말이다. 

뮤지컬은 원작보단 한결 가볍게 접근했다. 강재의 비극적인 죽음으로 마무리 되는 영화와는 달리, 뮤지컬은 소설에 맞춰 강재의 죽음을 보여주지 않는 것. 여기에 건달들이 보여주는 코믹한 설정으로 객석에선 간간히 웃음이 터지기도 한다. 하지만 두 주인공 사이의 감정선이 좀 더 치밀했으면 하는 바람은 여전히 남는다.

올해 잇따른 무비컬이 선보이는 가운데 초연무대에 오른 <파이란>은 한국 뮤지컬의 무비컬 시도의 명암을 가려줄 작품 중 하나다. 여러 아쉬운 점이 있지만, 그 속에서 문득 뜨거운 눈시울을 만들어 내기에 기대해 볼만한 작품이기도 하다.



글: 송지혜 기자(인터파크INT song@interpar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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