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세계> 무대를 향한 순수한 그네들의 뜻

“속이 검은 지 하얀 지는 중요하지 않아…….”
흔히 본질을 ‘속’이라는 단어로 표현하는 것에 비한다면, 위의 말을 ‘본질, 근원 따위는 상관없어’ 식의 무책임하고 안일한 발언이라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속’이 대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자기 편의를 위한 왜곡된 마음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 속이 검든 희든 신경 쓰지 않겠다는 고집이야 말로 정도를 향한 얼마나 순수한 가짐이더냐.

연극 <은세계>는 검고 또 흰, 그래서 혼란스럽고도 비통한 1908년, 소리를 안고 ‘속이 검은 지 하얀 지는 중요하지 않음’을 다짐하며 무대 위에 선 우리 연극인들의 이야기다.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극장인 원각사 설립과 최초 신극 ‘은세계’를 통해 한국 연극사에 신극이 등장한 지 100년을 기리기 위해 마련된 이 작품에서 이념 논쟁이나 은세계의 작가이자 친일 행동으로 비판의 논란을 여전히 품고 있는 이인직이라는 사람은 잠시 놓아두자.

뿌옇게 무대 배경으로 기관차가 투영되고, 그 옆에 이인직이 있다. 자신의 작품 ‘은세계’ 공연을 보기 위해 경성으로 향하는 그의 발길 중, 뜻 모를 여인과의 조우를 통해 그와 우리는 연극 <은세계>를 만나게 된다.

극단 미추의 <은세계>는, ‘은세계’를 무대에 올리기 위한 당시 배우들의 고군분투와 그것을 지켜보는 이인식의 모습이 극중극으로 펼쳐진다. 100년이 지난 지금에서 이뤄지는 작가와 작품의 가상 만남이다.

구국을 위해 큰 돈을 모았지만 악독한 관찰사에게 재산과 생명을 잃게 된다는 최병도 타령을 기초로 한 ‘은세계’. 구전되는 춘향이나 심청이 이야기가 아니라, 만민들이 보고 겪어 살에 와 닿는 이러한 이야기는 당시 ‘신극’, ‘연극개량’ 등과 같은 용어로 더욱 관객들에게 낯설게 다가왔을 수도 있음이 비춰진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은세계를 준비하는 무대인들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공연’과 ‘극장’, 그리고 그것을 이어가고자 하는 바람이라는 점이다. 새로운 변화를 사이에 둔 세력들 속에서 그들에게 이인직의 친일 행적과, 새로운 연극 형태 등은 제 1의 사항이 아니다. 오로지 ‘극장을 지키느냐, 공연을 이어가느냐, 그리하여 많은 사람들과 어울려 살 수 있느냐’이다.

창극 형태인 100년 전 은세계처럼, 이번 <은세계>에서도 역시 구성진 가락이 어울린다. 자연스러운 유머가 녹아 든 그네들의 소리에 웃음이 소소하다. 부드럽고 맛이 있어, 고루할 것이라는 생각은 오산이 될 것이다.

다만 이인직의 등장과 퇴장, 전 부인과의 대화는 화해의 분위기를 띠고 있으나, 무엇을 위한, 누구와의 화해인지 불분명하다. 허나 ‘늘 앞서고자 했으나 늘 반 발짝 늦었다’는 마지막 이인직의 절규는 쓸쓸하고도 날카롭게 생을 선택했던 그의 일편인 듯 하여 보는 이의 가슴을 멍멍하게 한다.

<은세계>는 오늘날 관객들에게 100년을 품고 부활한 기념비적인 가치에 더하여 많은 것들을 던져준다. 무대인들에게 작품을 향한 그들의 뜻과 삶의 태도가 어찌 만나고 있는지 되돌아 볼 기회를, 그리고 열정으로 지켰던 그 무대를 쉬이 가벼이 여기곤 하는 일상의 우리들에게 작은 울림을 말이다.


글: 황선아 기자(인터파크INT suna1@interpar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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