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의 대학> 권력을 허무는 '웃음'의 힘


“요즘 같은 시대에 사랑이야기는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근엄한 얼굴의 검열관이 소심해 보이는 희극 작가에게 한 마디 던진다. 그리곤 희극 ‘로미와 줄리엣’을 비장한 복수이야기인 ‘햄릿’으로 다시 만들어 오라는,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한다.

언뜻 심각한 분위기이지만, 곧 객석 여기저기에서는 폭소가 터지고 만다. 무리한 요구에 순순히 대응하는, 요령이라곤 없어 보이는 작가의 엉뚱한 기지도 기지지만 인간미도 풍기지 않은 검열관의 근엄함도 의외의 웃음을 자아내기 때문.

연극열전2의 아홉 번 째 작품 <웃음의 대학>은 자연스러운 웃음을 원하는 관객들에게 오랜만에 나타난 수작 코미디다. 검열관과 작가라는 일방적인 권력관계와 이를 허물어가는 웃음의 힘을 무리 없이, 자연스럽게 펼쳐 어느새 관객은 그들의 이야기에 몰입한다.

평생 웃음이라곤 모르고 살아온 냉정한 검열관 사키사카. 그의 검열을 통과해야 작품을 무대에 오릴 수 있는 희극 작가 츠바키. 확연한 권려관계에서 알 수 있듯 작가는 처음 대면하는 날 은근슬쩍 검열관 앞에 타코야키도 밀어 본다. 하지만 검열관에게 일방적으로 휘둘리는 사태는 피할 수 없다.

희극 자체가 싫은 검열관은 ‘로미오와 줄리엣’을 ‘햄릿’으로 하룻밤 만에 고쳐오라고 하는가 하면, 말 끝 마다 ‘천왕폐하 만세’를 삽입하라는 억지스러운 요구를 한다. 이를 지키지 않으면 무대에 올라갈 수 없단다. 하지만 이 작가, 다음 날이면 나타나 모든 요구를 받아들인 대본을 가지고 나타난다. 아이러니하게도 대본은 더 재미있고 재치있게 변한다.

이 작품의 백미는 ‘변해가는 냉정한 검열관’을 섬세하게 포착했다는 데 있다. 평생 웃음도 모르고 연극은 본 적도 없다는 그는 조금씩 작가의 대본에 빠져들어 어느새 그의 작품에 영감을 불어넣어 주는 역할을 한다. 급기야 연극을 천박하게 여기던 그가 대본을 읊으며 배우 역할까지 하니, 드라마틱한 변화가 아닐 수 없다.

<웃음의 대학>은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영화 <미스터 맥도날드>의 작가 미타키 코우기가 대본을 써 일본에서 초연된 작품. 1940년 전시의 일본을 배경으로 진행되지만 웃음과 권력이라는 보편적인 메시지로 이미 캐나다, 영국, 러시아 등에서 공연됐다.

이 작품에는 뒹굴고 넘어지는 슬랩스틱도, 불륜이나 얽히고 설킨 인간관계도 등장하지 않는다. 농담이라고는 하지도 않고, 받아주지도 않는 딱딱한 검열관과 희극 작가가 등장할 뿐이다. 하지만 설정과 캐릭터에 힘을 뺀 만큼, 딱 그만큼 웃음은 강하고 자연스럽게 유도된다. 이게 이 작품의 가장 큰 강점이다.

단 두 사람이 채우는 무대지만 허전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송영창과 황정민의 열연은 돋보인다. 뭐니뭐니 가장 큰 힘은 탄탄한 대본일 것. 억지설정과 막가는 코미디로 지친 우리에게 이 작품은 오랜만에 만난 자연스러운 웃음이다. 그래서 더 반갑고 즐겁다.


글: 송지혜 기자(인터파크INT song@interpar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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