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을 기다리며> 친근한 이순신 장군을 만나는 즐거움
작성일2009.02.06
조회수15,056
“늙은 놈이 굶어야지~난 괜찮어~” 한 중년 남자가 담담하게 노래를 부르자 객석에서 배꼽잡는 웃음이 터져 나온다. 숲 속에서 두 젊은 남녀가 애정전선을 도모하고 허기를 달래는 칡뿌리 식사에서 소외 당하자 능청스럽게 “다 늙어서 굶으면 좀 어때”를 외치는 이 남자는, 임진왜란의 그 영웅 ‘이순신 장군’이다.
지난 1월 개막한 <영웅을 기다리며>는 역사 속 한 페이지를 차지하는 위인 이순신 장군이 겪은 삼일 간의 여정을 그린 창작 뮤지컬이다. 물론 당돌한 상상력을 발휘한 픽션이다.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왜군무사에게 포로로 잡혀 산속을 헤맨다는 가상의 설정으로 이순신과 일본 무사, 그리고 어쩌다 그들과 합류하게 된 여자 막딸이 벌이는 황당하고 코믹한 에피소드가 극을 이끈다.
이 작품에서 그려지는 이순신 장군은 “내 죽음을 적들에게 알리지 마라”라고 말한, 범접할 수 없는 영웅의 모습이 아니다. 오히려 고구마 하나에 체면을 버리고 자신을 일개 졸병으로 생각하는 막딸에게 “나 이순신이야….”라고 은근하게 밝히는 친근하고 어리숙한 아저씨의 모습이다. 그리고 이 점은 웃음을 주는 커다란 요인으로 작용한다. 제작진 스스로 ‘본격 역사왜곡 코믹 풍자 사극’이라는 모토를 충실히 지켜 나가는 것이다.
그는 왜군에게 얼떨결에 생포 당했어도 밤 중에 잠을 잘 생각은 안 하는 일본무사 사스케에게 “잠 좀 자자 쓰벌”을 외치며 심각한 사랑 노래에 재를 뿌리는가 하면 막딸이 잡아온 자라 등껍질을 보고 거북선의 아이디어를 얻고 혼자 신나한다. 여기에 사스케와 막딸 사이에 흐르는 애정 기류에 끼어 소외감을 느끼다가도 헛 꿈을 꾼 것을 “못 먹어서” 그렇다며 그들과 코믹한 노래를 한 판 뽑아내기도 한다.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로 정도 많고 탈도 많은 보통 사람의 모습은 생각지도 못한 경쾌한 웃음을 선사한다.
현재 상황을 빗댄 풍자도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꿈을 꿨는데 이순신 장군 앞에 수많은 사람들이 횃불, 아니 더 작은 걸 들고 있더라. 장군 앞에 커다란 성이 쌓여 있더라.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날 것 같다”며 지난 해 일어난 촛불집회를 직접적으로 언급하기도 한다. 극 중간에 원더걸스의 ‘노바디’가 등장하는가 하면, 랩과 힙합을 구사하며 퓨전풍자해학극(?)의 모습을 주저없이 보여준다.
이순신 역에는 <연극 이> <칠수와 만수> <형제는 용감했다> 등으로 실력파 배우로 거듭난 박정환과 <젊음의 행진> 등에 출연한 실력파 배우 임진홍이 번갈아 ‘인간 이순신’을 연기한다. 여기에 전병욱과 가수 고재근이 일본병사 사스케를, 유정은과 박혜나가 생존력 강인한 여성 막딸을 연기한다.
이 작품은 지난 1월 문화체육관광부가 추진한 2008년 창작팩토리 사업에서 출품된 6개 작품 중 최우수상을 수상하는 경사를 누렸다.
“어머니가 일기는 매일 쓰랬다”며 난중일기를 펼치는 이순신의 캐릭터는 코믹하지만 따뜻하고 인간적이며, 그 속에서 풍자와 해학은 빛을 발한다. 난세일수록 시대는 영웅을 기다리기에 21세기에 만난 소탈한 영웅은 더 반갑다.
글: 송지혜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ong@interpar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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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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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님 2009.02.23
임진홍 아니고..임기홍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