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 너희들의 죄는 자유를 탐한 것

죄수는 죄를 가진 이유로 자유를 빼앗긴다. 자유는 모든 인간에게 공평하게 부여된 태생의 것이기에 되찾고자 하는 열망은 그 무엇보다 크다. 하물며, 스스로 납득할 수 없는 상황으로 좁은 감옥 안에 무기한으로 갇히게 된 이들에게 자유는 얼마나 간절한 것이겠는가.

1974년 당시 남아프리카연방의 인종차별을 빗댄 연극 <아일랜드>가 가깝고도 먼 미래로 시간을 옮겨 대학로 무대에 서고 있다. 싸늘하고 건조한 돔 형식 철제 감옥에 살며 하루 종일 작은 삽으로 바닷물을 퍼 나르는 윈스턴(양준모 분)과 존(조정석 분). 이들은 영리한 교도관인 감시카메라 지니의 시선 속에 짜여진 일정대로 움직여야만 한다.

지금의 <아일랜드>는 과거 흑백 차별의 범위에서 확장하여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물질 문명에 전복된 불쌍한 인간들을 아우른다. 뒤바뀐 것은 이 뿐만이 아니다. 인류의 상생을 위해 구성된 국가가 오히려 구성원들의 목소리를 짓누른다.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에도 반드시 힘 없는 자들은 존재했지만 그들의 목소리는 잘 드러나지 않는 법. 하지만 그들은 결코 좌절하지는 않는다.

윈스턴과 존은 그들의 비통함 가득한 절규를 교도소에서 선보이는 연극 안티고네를 통해 드러낸다. 반역자로 처참히 죽어 버려진 오빠의 시신을 거둔 안티고네가 죄인으로 심판대 앞에 선 것처럼, 그들은 어느 새 죄인이 되었고, 안티고네의 이름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내 놓는다. 이곳을 벗어날 수 있을까? 나가고 남겨지는 건 어떠한 기준에서인가?

뮤지컬 배우로 왕성한 활동을 펼쳐온 조정석과 양준모는 자신들의 첫 연극무대인 <아일랜드>에서 연극 본연의 맛을 제대로 선사한다. 이들의 삭발한 머리카락은 둘째 치고서도 강한 눈빛에 소극장 안을 채우는 작품의 밀도는 더해진다. 등장인물을 따라 움직이는 천정에 매달린 작은 카메라도 새로운 시도이다. 무대 위 설치된 6개의 스크린을 통해 지니가 찍은 영상이 비춰지면, 객석은 두 사람을 감시하는 또 한 명의 묵인자가 된다.

무대와 배우들의 움직임 등은 현 상황을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아일랜드>의 응축된 메시지는 관객들에게 쉬이 다가가진 못한다. 극 중 극인 안티고네의 등장을 비롯한 여럿 수사는 깊어지는 작품의 맛을 뿜어주기에 다소 불친절한 것이 사실이다.

짙은 무게로 공간을 점령했던 100분이 다소 걱정스러웠는지, 배우들은 커튼 콜 때 무대와 객석을 갈라놓았던 붉은 실들을 박력 있게 뜯어 끊어내며 활짝 웃는다. 이제 다시 현실로 돌아온 것이다. 현실과 무대를 100% 혼동하는 어리석은 관객은 없을 터인데, 현실을 반추해 볼 수 있는 공연의 잔상을 이토록 확실히 깨 줄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글: 황선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una1@interpar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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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1

  • A** 2009.03.23

    다시한번 꼭 보고싶은 공연! 아일랜드.. 깊은 여운이 남는 공연이였던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