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에> 지금 이 시간은, 기쁜 우리 젊은 날

지나간 것들은 항상 후회와 아쉬움을 남긴다. 그리움으로 남은 ‘그 때' 를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빠져봤을 달콤한 상상. ‘만약, 당신이 원하는 그 때로 이동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뮤지컬 <시간에>는 이 단순한 상상에서 시작한다.

원하는 시간으로 이동할 수 있는 시계를 갖게 된 세 주인공은 헤어진 연인과 다시 만나기 위해, 죽음을 피하기 위해, 소매치기에서 벗어나 제대로 된 삶을 살기 위해 자신들이 원하는 순간으로 시간을 돌린다. 경쾌한 오프닝 넘버 ‘시간에’ 에 고개를 끄덕이다보면 주인공들의 안타까운 상황은 관객들의 현실 속으로 스며들고 타임머신을 대신하는 손목시계는 모두의 바람을 이루는 매개체가 된다.

사실 시간을 자유자재로 요리하는 이야기는 그리 신선한 꺼리는 아니다. 한국 영화 ‘동감’ 이 그랬고 ‘나비효과' , ‘이프온리’  최근의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까지. 시간이라는 추상적인 소재를 <시간에>는 뮤지컬의 묘미를 살리며 유쾌하게 표현해낸다.

매 순간마다 촘촘하게 숨겨진 위트 있는 상황은 이 작품의 백미. 비정상적인 시간에 맡겨진 극은 핑퐁처럼 주고받는 대사를 따라 빠르게 흘러간다. 시현이 여자친구 지수에게 프로포즈 할 때 보여주는 장미 마술, 우산 등 적재적소에 놓인 소품 활용이 신선함을 더한다. 어느 것 하나 놓칠 것 없이 섬세하게 차려입은 장면들은 2년 동안 이 작품에만 매달렸다는 젊은 연출가의 톡톡 튀는 열정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잘 맞는 평상복을 입은 듯이 자연스러운 배우들의 연기는 익숙하지 않은 작품에 대한 의구심을 날려줄 정도로 제몫을 다한다. 특히, 이팔자로 열연하는 배우 윤수미는 그녀의 다음 작품이 기대될 정도의 강렬한 무대를 보여준다. 배우들의 일상적인 말투까지 리듬에 실어낸 넘버는 그 섬세함에는 손을 들어줄 수 있지만 쉼표 없이 변하는 상황을 그려줄 넘버의 변화가 없다는 것은 못내 아쉽다.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은 욕심 때문이었을까. 삶과 죽음, 사랑과 이별 등 추상적인 단어들을 무겁지 않으면서 가볍지 않게, 관객들이 흡수할 수 있을 만큼의 무게로 담아냈지만 그 양은 조금 넘쳤던 것 같다.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은 욕심 때문이었을까. 시간을 돌릴 수 있는 시계를 가진 세 명의 이야기 중 한 명인 소매치기로 살아가는 현실의 이야기는 극 주위를 겉도는 느낌이다.

알차게 달려온 재미에 비해 극 마지막에 찾아온 감동은 지나치게 교훈적인 나머지 서투르고 빠른 마무리라는 느낌마저 준다. 하지만 지난 해 대구국제 뮤지컬 페스티벌의 최우수 작품상과 여우주연상을 동시에 받은 저력은 200% 느낄 수 있다. 노련미는 없지만 참신함이 극치에 다다랐고, 세련미는 없지만 친숙한 감동이 있다. 스타배우, 스타연출은 없지만 될 성 부른 푸르른 떡잎들이 모여 있다.

‘오늘이 바로 당신의 인생 중 가장 젊은 날’ 이라는 누군가의 말이 공연 중간에도, 끝나고 난 뒤에도 계속 맴돈다. 누구 하나 빼놓지 않고 힘들다는 요즘 <시간에>가 주는 뭉클한 메시지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메시지가 아닐까 싶다. 가슴속에 이런 느낌표 하나를 담아올 작품을 만나기는 참으로 어렵다. 따뜻한 <시간에>를 놓칠 이유는 없을 것 같다.



글: 강윤희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kangjuck@interpar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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