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앵두> “우지 마라, 꽃이 지면서 우는 거 봤나?”

형체가 있는 것들은 언젠가 사라진다. 인간이 자주 잊고 사는 이 단순한 명제를 무대는 담담하게 읊조린다. “모든 건, 사라지기 때문에 애틋하다”고. 과학연극시리즈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연극 <하얀앵두>는 과학연극이라기 보단, 철학연극에 더 가까워 보인다. 5억년 전 삼엽충을 보며 그 안에 새겨진 시간의 흐름을 신기해 하는 사람들. 그 가늠할 수 없는 세월을 보면 인간의 삶이 얼마나 찰나와 같은지 깨닫지만, 그래도 그들은 세상사 희로애락에 다시 푹 빠져 소소한 일상을 보낸다. 지지고 볶고 싸우다 화해하고, 사랑한다. 그리곤 삶은, 사라지기 때문에 더 찬란하지 않냐고 묻는다. 특별한 줄거리는 없다. 화석채집을 위해 강원도 산골을 들른 지질학자와 조교, 잊혀져 가는 50대 작가와 그의 연극 배우 아내, 그리고 그들의 딸과 이웃집 노인의 소소한 일상이 작은 시골 마당에서 펼쳐진다. 사람 나이로는 100살쯤 되었을 15살 개의 임종과 18살 고등학교 딸의 사고 같은 임신은 이들에게 일어난 충격적인 사건이다. 오랜 시간 자신과 함께한 개의 죽음에 뜨거운 눈물을 흘리고, 자신의 딸을 임신시킨 도둑 같은 (앞날의) 사위에게 분통을 터트리지만 결국 변한 건 없다. 겨울이 가고 봄이 오고, 황량한 마당에 꽃과 나무를 심으며 이들의 피고 짐을 바라본다. 5만년 된 삼엽충 화석은 이들의 일상에 던져진 각성과도 같다. 몇 억만년 전 적도에서 자유롭게 떠돌던 삼엽충이 지금, 그들 앞에서 시간의 작은 흔적으로 남았다. 이 시간 동안 얼마나 수많은 형체들이 나타났다, 소멸됐을까? 무대는 거창하게 삶과 죽음, 자연의 순환에 대해 이야기 하지 않는다. 고약한 술주정으로 사랑을 고백하는 여자가 있고, 자신의 학생을 사랑하게 된 35살 노총각과 더 이상 주목 받지 못해 힘겨워 하는 작가, 곧 여생을 마무리 하는 개 한 마리가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들의 소소한 일상과 수다는 소멸해 가는 생명의 기억이 된다는 걸 알고 있기에 애틋하고 특별하다. <과학하는마음3-발칸동물원> <산소> <코펜하겐>이 뇌, 화학, 양자물리 등 과학에 대해 이야기를 해나갔다면, <하얀앵두>에서는 탄생과 소멸이라는 극히 철학적인 내용을 풀어나가고 있다. 등장인물들의 감정을 때론 현미경을 들이댄 듯 자세하게 묘사하며 2시간 이상 인터미션 없이 이어져 극 말미엔 관객에게 쉽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개의 죽음을 지켜보고, 작은 삼엽충 하나로 무한한 시간을 되돌려 보면 삶의 의미를 관조적으로 바라보게 하는 작가와 연출의 힘을 느낄 수 있다. 물론 배우들의 자연스러운 일상 연기는 이 작품의 또 다른 힘이자 백미다. 글: 송지혜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ong@interpar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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