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1> 잔잔한 바닷물결에 실려 온 삶의 회한
작성일2009.07.24
조회수11,856
석 달 내내 내리는 비, 호롯이 켜져 있는 주막 등불 아래 몸뚱아리 하나 기댈 만한 마루. 걸을 때마다 자박자박 소리를 내던 고무신을 벗어 고인 물을 털고 마루에 앉아 영감은 담담하게 말한다. “그란개 나도 늘 짜안해떠니요, 늘 참 짜안했었더랑개요.”
1986년 출판된 박상륭의 소설집 ‘열명길’에 실린 ‘남도 1’을 바탕으로 한 연극 <남도.1>은 가슴이 ‘짜안’ 해지는 작품이다. 혼례 후 석 달 만에 과부가 된 주막집 할멈 덕산댁과, 덕산댁을 마음에 품었으나 고자로 태어난 까닭에 외로움과 벗이 되어 평생 뱃사람으로 살아온 영감. 어느 날 밤 덕산댁은 문득 영감을 찾아와 배를 태워달라고 하고, 그리하여 나선 바다 한 가운데서, 한 평생을 ‘견뎌내 왔던’ 이 둘의 설움이 삐질삐질 터져 나온다.
‘젊은이들의 사랑만이 전부가 아니다’를 외치는 것이 아니다. 두 노인의 애틋한 사랑이야기라고 말하는 것은 너무나 안일한 서술이다. 업보로 받아들이며 감내했던 삶이지만, 그 고난이 목젖까지 차오른 이 때, 가슴 속 깊이 눌러 놓았던 한 인간으로서의 서글픔은 인내를 넘어선 서로를 위로하는 고요한 의식과도 같기 때문이다.
황망히 떠 있는 달, 오른쪽 작은 툇마루, 중앙을 비켜서 들어선 낡은 배 한 척이 전부인 무대는 어둠이 가득하나 두렵지 않다. 눈앞이 침침하나 따스하게 모든걸 감싼다. 새벽, 남도의 파도가 몰고 온 해무가 공연장을 점령한 듯 하다.
작은 공간을 넉넉하게 만든 단출한 무대는 여백의 미를 살리고, 그곳을 넘나드는 거친 사투리는 남도의 갯바람과 두 인물의 삶을 담담하게 풀어내고 있다. 한 단어, 한 단어를 모두 이해하기 보단 문맥에서 풍겨오는 분위기에 젖는 것이 현명하다.
<남도.1>은 올해 여러 번 관객과 만나고 있다. 1월 혜화동 동인 페스티벌에서 ‘극장전’이란 주제 아래 첫 무대에 섰으며, 3월 재공연에 이서 7월 말 다시 막이 올랐다. 삶과 죽음에 대해 깊이 있는 통찰을 보여주는 박상륭 원작으로, 2007년부터 리딩 페스티벌 등에 참가하며 작품의 공연화를 준비해 온 까닭에 탄탄한 텍스트는 두말 할 것이 없겠다.
하지만 너무나 텍스트의 힘만을 믿고 있는 점이 아쉽다. 잔잔한 분위기에서도 극의 흐름은 긴밀해야 한다. 사투리가 더욱 와 닿지 않는 관객들이라면 <남도.1>은 좀 더 느슨하고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올해 모든 무대에서 줄곧 같은 배역을 맡았던 배우들이건만, 또 다시 새로운 무대는 어색한 듯 주고 받는 말이 입에 걸리기도 했다. 연습한 비즈니스가 아닌 체화되어 절로 나오는 모습을 이 둘 배우에게 더욱 기대하는 건, 그 만큼 작품의 맛과 내음이 진하기 때문이다. 프리뷰 첫 날의 느낌이다. 본 공연은 내달 1일부터 시작된다.
글: 황선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una1@interpark.com)
사진: 한강아트컴퍼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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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출판된 박상륭의 소설집 ‘열명길’에 실린 ‘남도 1’을 바탕으로 한 연극 <남도.1>은 가슴이 ‘짜안’ 해지는 작품이다. 혼례 후 석 달 만에 과부가 된 주막집 할멈 덕산댁과, 덕산댁을 마음에 품었으나 고자로 태어난 까닭에 외로움과 벗이 되어 평생 뱃사람으로 살아온 영감. 어느 날 밤 덕산댁은 문득 영감을 찾아와 배를 태워달라고 하고, 그리하여 나선 바다 한 가운데서, 한 평생을 ‘견뎌내 왔던’ 이 둘의 설움이 삐질삐질 터져 나온다.
‘젊은이들의 사랑만이 전부가 아니다’를 외치는 것이 아니다. 두 노인의 애틋한 사랑이야기라고 말하는 것은 너무나 안일한 서술이다. 업보로 받아들이며 감내했던 삶이지만, 그 고난이 목젖까지 차오른 이 때, 가슴 속 깊이 눌러 놓았던 한 인간으로서의 서글픔은 인내를 넘어선 서로를 위로하는 고요한 의식과도 같기 때문이다.
황망히 떠 있는 달, 오른쪽 작은 툇마루, 중앙을 비켜서 들어선 낡은 배 한 척이 전부인 무대는 어둠이 가득하나 두렵지 않다. 눈앞이 침침하나 따스하게 모든걸 감싼다. 새벽, 남도의 파도가 몰고 온 해무가 공연장을 점령한 듯 하다.
작은 공간을 넉넉하게 만든 단출한 무대는 여백의 미를 살리고, 그곳을 넘나드는 거친 사투리는 남도의 갯바람과 두 인물의 삶을 담담하게 풀어내고 있다. 한 단어, 한 단어를 모두 이해하기 보단 문맥에서 풍겨오는 분위기에 젖는 것이 현명하다.
<남도.1>은 올해 여러 번 관객과 만나고 있다. 1월 혜화동 동인 페스티벌에서 ‘극장전’이란 주제 아래 첫 무대에 섰으며, 3월 재공연에 이서 7월 말 다시 막이 올랐다. 삶과 죽음에 대해 깊이 있는 통찰을 보여주는 박상륭 원작으로, 2007년부터 리딩 페스티벌 등에 참가하며 작품의 공연화를 준비해 온 까닭에 탄탄한 텍스트는 두말 할 것이 없겠다.
하지만 너무나 텍스트의 힘만을 믿고 있는 점이 아쉽다. 잔잔한 분위기에서도 극의 흐름은 긴밀해야 한다. 사투리가 더욱 와 닿지 않는 관객들이라면 <남도.1>은 좀 더 느슨하고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올해 모든 무대에서 줄곧 같은 배역을 맡았던 배우들이건만, 또 다시 새로운 무대는 어색한 듯 주고 받는 말이 입에 걸리기도 했다. 연습한 비즈니스가 아닌 체화되어 절로 나오는 모습을 이 둘 배우에게 더욱 기대하는 건, 그 만큼 작품의 맛과 내음이 진하기 때문이다. 프리뷰 첫 날의 느낌이다. 본 공연은 내달 1일부터 시작된다.
글: 황선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una1@interpark.com)
사진: 한강아트컴퍼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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