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동 체육관> 다시 한번! 한방에 훅 가지 않는 인생이기에

권투처럼 주는 만큼 받는 것이 정직하고도 치열한 것이 없다. 잠시 잠깐 가드를 내려도 상대방의 무차별 펀치를 온 몸으로 당해내야 한다. 벗어나면 무효인 사각의 링 안에서 기권의 흰 수건을 던지지 않는 이상 마지막 라운드의 종소리가 울릴 때까지 발을 빨리 놀리며 긴장을 풀어선 안 된다.

원해서 태어난 건 아니었지만, 삶을 살아감에 자유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한 우리네 인생이 복싱에 자주 비견되는 건 이 때문이다. 결코 녹녹하지 않은 하루하루에 우리는 좌절과 친해질 수 밖에 없기에 상대방이 올린 어퍼컷에 다운되어도 다시 글러브를 조이고 파이팅 하며 일어나는 모습에서 더 큰 가능성을 엿보게 된다.

연극 <이기동 체육관>은 이처럼 복싱과 닮은 우리네 삶의 모습을 정직하고 담백하게 그려내고 있다. 왕년의 챔피언이었으나 오랜 잠적 후에 허름한 체육관 관장으로 나타난 이기동과, 그가 동네 다방에서 종일 종업원과 수다를 떨며 시간을 보내는 동안 소소히 삶을 살아가며 체육관을 채우고 있는 우리 이웃들이 주인공이다.

이제는 훌륭한 선수 한 명 키워보는 것이 목표인 마코치, 권투 글러브를 냉동실에 넣고 다니며 언젠가 부장에게 얼음 주먹 한방 날리는 꿈을 버리지 않는 보험판매원, 한 번도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해 보지 못한 시간 강사, 학교 날라리에게 복수해 주기 위해 권투를 시작한 여학생을 비롯해 소심하지만 열심히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이들의 가슴에는 힘이 넘치는 정열의 한 방이 담겨 있다.

어둠 속에서 쉼 없이 몸을 달련 시키는 한 여자의 모습은 과거 속에 허우적대던 이기동의 마음마저 움직이게 한다. 되돌릴 수 없는 시간에 자책하는 것은 가장 어리석기 짝이 없는 인간의 미련임을, 그리하여 그것을 극복해 내는 의지는 내일을 전혀 예상하지 못한 길로 돌려 놓을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임을 관객들도 지켜보게 된다.

창작 초연 중인 <이기동 체육관>에서 실제 체육관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무대에 더하여 배우들은 꽤 오랜 시간 이어지는 쉼 없는 줄넘기에 실수 한번이 없으며 펀치를 날리는 자세 등에 허점이 없다. 공연에 한참 앞서 실제 권투 체육관을 운영 중인 이기동 관장 아래 훈련을 받았다는 후문이다. 작품의 출발부터 정도를 걸으며 정직하게 시작한 이들의 잽과 어퍼컷이 혀끝에서 이내 사라지는 조미료 맛이 아닌, 온 입안과 몸을 은근히 품어주는 구수한 진국 맛이 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글: 황선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una1@interpar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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