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티풀 선데이> 담백하고 유쾌하게 사랑의 기초를 말하다

고통을 감내하는 방법 중 하나는, 나 보다 더 불행하다고 생각되는 이의 삶을 보는 것이다. ‘그래, 저런 사람도 있는데 내가 뭘.’ 자신의 어깨를 짓누르는 짐은, 그에 비하면 고작 손톱 끝의 가시이며 배부른 탄식이었다고 결론이 나면 세상을 살아가는 힘이 부쩍 솟기도 한다. 용기를 얻는 방법은 아인슈타인이 의도하지도 않은 상대성 이론이 적용되어, 가끔씩 이처럼 치사하고 이기적이며 자기 중심적일 때가 있다. 그리곤 돌아서서 다시 말한다. 손 끝에 가시가 박히면 얼마나 아픈 줄 아느냐고.

고민과 고통의 크기는 서로 다르지 않다. 정진의 말이다. 비교나 대조, 혹은 자기 암시 따위의 또 다른 수단을 동원하지 않고, 온 몸과 마음으로 삶을 부딪히는 그의 명제는 쉬이 무시할 수가 없다. 나를 보고 그를 인정한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와 나의 오늘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함을 그는 알고 있다.

연극 <뷰티풀 선데이>의 세 남녀는 자신의 고통과 상처를 오로지 스스로 감내해 낸다. 자기 안에 갇힌 소통 부재가 아니라 끊임없이 자신이 사랑하고 아끼는 상대를 위한 배려이고 이해하려는 노력이다.

패밀리 레스토랑 지점장 정진과 미대생 준석이 살고 있는 집에 구청 호적계를 담당 직원 은우가 불청객으로 들어온다. “자고 일어나니 옆에 낯선 이가 누워있다”는 다소 뻔하게 느껴질 수 있는 관계의 시작은 ‘상큼함’만이 아닌, 담백과 뭉클함을 풀어내는 실타래의 중요한 임무도 갖고 있으니 쉬이 놓치지 말길.

또한 불륜과 게이 등 이야기의 소재에 지레 무게를 두진 말자. 열심히 자신과 타인을 사랑하는 세 사람이 모여 있는 어느 아름다운 일요일의 풍경에서, 그들은 단지 생명과 마음을 지닌 사람일 뿐이다.

소재는 신선하고 이야기는 담백하다. 진행은 유기적이나 과정은 유쾌하다. 극작가 나카타니 마유미의 작품으로 2000년 일본 초연 후 한국에 온 것이 2006년. 지금까지 매년 앵콜 공연을 거듭하고 있는 이유는 분명히 있다. 유명 모델에서 연극 무대에 첫 데뷔식을 치르고 있는 게이 이준석 역의 김영광은 다소 힘이 들어가 있으나 귀여움이 가득한 모습이다. 작품의 긴장과 이완에는 장준휘(오정진 역)와 김선아(강은우 역)가 능수능란하다.

‘막장’은 브라운관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최근 오감을 더욱 자극하기에 혈안이 되어 있는 공연계 몇몇 작품들 사이에서 연극 <뷰티풀 선데이>는 허울에 욕심내지 않아 더욱 은은하게 빛나는 작품임엔 분명하다.

글: 황선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una1@interpark.com)
사진: ZERA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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