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택트> 상상, 황홀한 춤이 되다

뮤지컬이라는데, 노래가 없다. 대사도 거의 없다. 노래와 말 대신 무대를 채우는 건 다름 아닌 춤. <컨택트>의 농도 깊은 상상력을 표현하는 건 배우들의 춤이다.

1999년 오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돼 ‘노래 없는 뮤지컬’에 대한 논쟁에도 불구하고 이듬해 2000년 토니 어워즈에서 최우수 작품상을 받은 뮤지컬 <컨택트>가 국내에서 첫 선을 보였다.

이 작품의 국내 초연무대에 국립발레단의 수석 무용수 김주원을 비롯, 배우 장현성, 구자승, 윤길, 안무가 이란영, 전국립발레단 무용수 정주영 등이 참여했다. 최고의 실력을 자랑하는 무용수와 배우들, 그리고 작품에 대한 입소문. 이 소문난 잔칫상은 어땠을까? 결과는 ‘소문난 잔칫상에 먹을 것 많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의례적으로 나오는 노래가 없었다는 점이 이 작품의 매력 중 하나. 기계적으로 나올 시간에 나오는 노래 없이 몸짓과 춤만으로도 이야기 이해와 감정표현은 충분히 이루어졌다.

3개의 옴니버스로 이뤄진 이 작품의 첫 번째 이야기는 ‘Swing’(그네타기). 가장 짧은 에피소드로 귀족 여인과 하인이 그네를 타며 정사를 벌이며 무용보단 서커스를 떠올리는 기교 섞인 몸짓을 선보인다. 선정적으로 보이는 두 남녀의 몸짓에 어색해 하는 관객들이 많지만, 작품의 문을 열어주는 의미로 만족할 수 있는 이야기다. 두 번째 이야기, ‘Did you move?’ (당신 움직였어?)에서는 줄거리와 캐릭터에 힘이 실린다. 의처증 남편과 레스토랑을 찾은 소심한 여인. 그녀가 꿈꾸는 일탈된 상상이 은밀하고, 파워풀한 발레와 춤으로 이어진다. 안무가 이란영이 배우로서 무대에 올라 주목을 받은 에피소드다.

3막 ‘컨택트’는 이 작품의 하이라이트라 할만한 무대. 성공한 커리어를 가졌지만 인생이 허무한 남자(장현성)가 ‘노란 드레스의 여인’(김주원)의 매력에 빠지며 벌어지는 이야기가 현실과 환상을 넘나들며 펼쳐진다. 사무실 같이 삭막한 남자의 거실과 질펀한 남녀와 술이 있는 바가 수시로 장면 전환하는 무대는 세련되고 매력적이다. ‘춤’의 백미 또한 3장에서 빛을 발한다. 수많은 남녀가 보여주는 스윙댄스는 몸치 관객들도 들썩이게 할 만큼 매력적이다. 특히 토슈즈를 벗고 선보이는 발레리나 김주원의 스윙댄스는 눈을 뗄 수 없을 정도. 남성 댄서의 허리와 어깨를 재빠르게 타고 내려오는가 하면, 리드미컬하게 다리를 구르고 미끌어지기도 하는 노란 드레스 여인은 김주원의 도도한 매력을 만나 훨씬 빛난다. 여기에 장현성의 탄탄한 연기는 극의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 힘. 섬세하고 노련하게 극 중 우울증에 시달리나 새로운 매력에 빠지는 마이클 와일리 역을 소화해 무대 전체를 아우른다.

<컨택트>는 춤이 짜임새 있는 이야기를 만났을 때의 즐거움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무대다. 춤 대신 다른 장르가 와도 싱싱한 발상과 탄탄한 이야기만 있다면 역시 즐거움을 주지 않을까,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

글: 송지혜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ong@interpar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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