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야> 정을 나누며 사는 것이 잘못입니까?

한자가 뜻 글이라 정겨운 것은 이 글자 하나로도 충분히 설명할 수 있다. 좋을 호, 好.
여자(女)와 남자(子)가 서로 함께 의지해 살아가니 어찌 아니 좋을 수 있겠는가.

연극 <호야>가 품은 뜻은 거창하지 않다. 요란하지도 않다. 통하는 사람과 사람이 마음을 나누는 것이 사람답게 사는 것 아니지 않느냐, 하고 조용히 건네는 말이 전부다. 하지만 그걸 허락하지 않는 세상에서 이들의 목소리와 몸부림은 더욱 거세질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는 <호야>에서 웃음만이 아닌 울음도 터트리게 된다.

야릇함과 스릴도 있다. 어슴푸레한 달빛에 잠긴 조선시대 궁궐의 밤은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온갖 암투와 음모로 평안할 새가 없다. 아이가 없는 중전, 자신의 아들을 세자로 책봉하려는 후궁, 그리고 끊임없는 상소문과 위협으로 좀처럼 의지할 곳 없는 자신의 처지에 미쳐가는 왕, 하늘이 금한 사랑을 나누는, 성은을 입은 귀인 어씨와 중전의 오라비 한자겸 등 이들이 잠 못 이루는 까닭은 여러 가지다.

뚜렷한 시공간 배경과 뚜렷한 존재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으나 이 작품이 시공간의 경계 없이 이야기 될 수 있다는 것은 생명력 있는 작품으로서 제일의 미덕이다. 또한 이야기를 펼치는 무대의 형태에서도 기존의 관념을 사뿐히 넘고 있다. 온 스테이지와 오프 스테이지의 모습을 모두 한 무대 위에 올려 놓은 것이다.


가장 먼저 경계를 허무는 발걸음은 공연 시작 전부터 천천히 제자리 달리기를 하고 있는 배우로부터 시작된다. 슬슬 발동을 걸기 시작한 나머지 배우들은 한번 무대 위로 입장하면 공연이 끝날 때까지 무대 위 사각의 또 다른 무대 주변을 맴돌며 퇴장하지 않는다.

스스로 자신이 맡은 배역을 설명하고, 생각이나 행동을 설명하는 희곡 안의 지문과 해설도 빠짐없이 말하며 연기하는 이들로 인해 관객들은 오히려 극에 더욱 몰입하게 된다.

지저귀는 새 소리, 바람에 나뭇잎 나부끼는 소리 등의 효과음들도 배우의 몫이다. 첼로, 바이올린, 기타, 플룻, 북 등으로 이뤄진 작은 오케스트라의 감미롭고 센스 넘치는 연주는 극의 윤활유 역할을 톡톡히 한다.

하지만 가장 사랑스러운 건 배우들이다. 미치광이 왕 조한철도, 간계에 능한 대비 홍성경도, 샘이 많은 숙원 김은실도, 안쓰럽고 우스꽝스러우며 귀엽게 비춰질 뿐 악한의 모습으로 넘어가지 않는다. 하물며 정인의 마음을 끝까지 지켜내는 귀인 어씨 전미도와 한자겸의 이원, 바르디 바른 중전의 김진아, 박상궁의 조시내, 상선의 오찬우는 어떻겠는가.

혹자는 오타로 생각될 수도 있는 극단명 ‘죽도록달린ㄴㄴㄴ다’에서 세 개의 ㄴ은 조금씩 흔들려 새기는 것이 바르다. 죽도록 달리는 것에 더해 생동감 넘치게 따라오는 받침들은 새로움을 즐기고 향유하는 이곳의 사람들의 표정을 그대로 나타낸다. 그 표정은 공연을 본 관객들에게서도 발견할 수 있다.


글: 황선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una1@interpark.com)
사진: 극단 죽도록달린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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