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잠> 젊음, 내게도 젊음은 있었다

첫사랑이었다. 30년 만에 만난 첫사랑과 재회한 곳은 노인전문 치료기관인 요양원이다. 남자는 당뇨, 심근경색, 요실금으로 기저귀를 차고 다닌다. 치매를 앓는 남자의 첫사랑은 남자를 기억하지 못한다. 되살아난 첫사랑의 기억. 추억은 세월을 곱씹게 만들고, 환갑을 넘긴 남자를 꿈꾸게 만든다.

연극 <낮잠>에서는 원작소설 ‘낮잠’에 담긴 작가 박민규의 숨쉬는 문체와 연출로 나선 ‘8월의 크리스마스’, ‘봄날은 간다’의 허진호 감독 특유의 섬세함이 살아있다. 환갑을 넘긴 한영진(이영하, 김창완, 오광록)과 소년 한영진(김기범, 이주승)의 대면 장면, 치매에 걸린 첫사랑을 감싸주는 장면에서 허진호 감독의 세심함과 아릿한 기운을 느낄 수 있다.

현재와 과거를 오가는 구도 속에 보증금을 노리는 첫사랑 사위의 등장, 사랑의 훼방꾼으로 등장하는 고교동창과의 대결 등 곁가지를 친 이야기들은 김기천, 김도연 등 감초 배우들이 실어준 힘을 받아 자칫 진부하게 흘러갈 수 있는 이야기에 두둑한 웃음과 긴장감을 더한다.


이번 무대를 통해 첫 연극무대에 오른 김기범은 풋풋한 소년의 모습과 노년의 ‘나’와의 대결장면을 자연스럽게 소화하며 기대 이상의 연기력을 보여준다. 중, 장년층 관객들 틈에서 소년 한영진의 등장에 술렁이는 10대 관객들을 지켜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첫사랑을 바탕으로 한 중년 로맨스를 강조 했기에, 김기범의 분량에 기대를 하고 온 관객이라면 다소 아쉬울 수도 있겠다.

소설 ‘소나기’를 닮은 첫사랑, 노년의 촌스러운 사랑, 그리고 죽음의 이야기 안에는 인생을 압축한 명대사들이 줄줄이 등장한다. 봄볕의 노곤함을 선사하는 연극 <낮잠>에는 온 몸을 쓰다듬는 여운을 담고 있다.

장면 전환 지점, 무대 전환 사이의 긴 암전, 음악소리를 웃도는 넘치는 소음은 <낮잠>이 풀어야 할 숙제다. 나를 돌아보게 하는 로맨스,  '감독 무대로 오다 두번째 시리즈 2탄' 연극 <낮잠>은 3월 28일까지 삼성동 백암아트홀에서 공연된다.

관람 캐스트
이영하(한영진), 서지영(이선), 김기천(안동필), 김기범(소년 영진)
박하선(소녀 이선), 김도연(멀티)


글: 강윤희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kangjuck@interpark.com)
사진:엠뮤지컬컴퍼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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