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아뮤즈들> 엄마 없는 20년을 지배한 뮤즈들의 환상

이들을 키운 건 8할이 바람이었다. 현관문을 열자 마자 집안을 습격하는 모진 바람에는 날카로운 모래들이 엉켜있었다. “빨리 문 닫아” 큰 언니 까뜨린느(김소희)는 외치고 또 외친다. 하지만 몰아치는 바람을 이길 수는 없다. 사랑 없는 결혼을 외면하고 가족 대신 자유를 택한 엄마의 자식들이라는 멍에는 바람이 되어, 모래가 되어 그들의 숨통을 편히 두지 않는다.

연극 <고아뮤즈들>의 네 남매는 차를 타고 나가야지만 이웃을 만날 수 있는 외딴 집에 실로 오랜만에 모였다. 지난 20년간 엄마가 부재한 사이, 삶을 채워왔던 이들의 ‘바람과 맞서 싸우는 저마다의 방법’은 대단히 위험했다. 실체가 없는 수 많은 상상과 망상, 이상과 공상의 결과를 실행해 현실로 만드는 것. 그들이 딛고 사는 곳은 현실이나, 그 현실을 낳는 것이 비현실인 위태한 흐름이 네 남매들을 지배해 온 것이다.

큰 언니 까뜨린느는 “가족이라는 게 얼마나 아름다운지 보여주려고 열 두 명의 아이를 갖고 싶었”지만 지능이 떨어지는 막내 이자벨(강영해)을 붙들고 엄마 노릇 하는 것으로 엄마를 향한 분노의 욕망을 대리충족 할 수 밖에 없다.

둘째 딸 마르틴느(함수연)는 좁은 마을에서 선택의 여지 없이 주어진 신부를 맞이하고, 그것에 순응했던 군인 아빠를 재현하고, 하나 밖에 없는 아들 뤽(윤정섭)은, ‘엄마를 끊임없이 긍정하는 동시에 자신들을 한 없는 피해자로 명명하며 애원하고 구원받고자 발버둥치는’ 누나들에 영감을 비추며 허망한 소설을 써 댄다.


어두운 굴 속 같은 집과 두 다리를 묶어 놓는 과거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장 큰 가능성은 막내 이자벨에게 있다. 언니와 오빠가 현실을 왜곡한 망상을 굳은 믿음과 사실로 치부하고 있을 때 그녀는 자신있게 “나는 덜떨어졌어”를 외치며 섬뜩한 영리함을 발휘한다. 관객들의 손발까지 절절하게 만드는 결말의 아찔함은, 바로 이자벨의 머리 속에 담겨 있다.

죽은 예수가 다시 눈을 뜨는 부활절, 서걱거리는 건조한 모래와 굴 속과 같은 집 등은 작품을 이야기하는 생생한 기호이다. 1965년 퀘백의 한 외딴 마을을 간결한 무대로 표현한 이 작품엔 항상 팽팽한 긴장감이 흐른다.

이토록 명확하고 강렬하게 대사가 들리는 무대는 굉장히 드물다. 영국에서 가장 정확한 영어 발음을 듣고 싶으면 국립극장(내셔널씨어터)으로 가라는 말이 있다면, 가장 정확한 한국의 표준어 발음을 원한다면 게릴라 극장으로 가라고 해야 할 것이다.

딱 떨어지는 앙상블 속에서도 개개의 배우가 돋보인다. 지난 해 국내 초연한 퀘백 출신의 작가 미셀 마크 부샤르의 작품인 <고아뮤즈들>이 올해 공연으로 이어진 것에 작품 자체의 힘이 컸다면, 올해 공연에 보내는 큰 박수는 연희단거리패 배우들이 더해졌기 때문이다.


글: 황선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una1@interpark.com)
사진: 게릴라 극장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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