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살의 신> 뒤통수 때리는 지적인 코미디란 이것!
작성일2010.04.14
조회수9,936
비가 와도 절대 뛰지 않고 갈 지(之)자 걸음 하는 양반이 집에 들어가 방문을 잠그고 개다리 춤을 추는 걸 상상해 본 적이 있는가? 황당하고 기가 막히나 터져 나오는 웃음을 도저히 막을 수 없을 것이다. 마당 쓸던 어린 돌쇠의 춤을 흘끗 보곤, 따라 해 보고 싶은 걸 겨우 참았던 것일 수 있지 않은가. 그에게 누가 돌을 던지겠는가, 그도 사람인지라 이해할 수 밖에.
이처럼 뒤돌아 폭소를 터트리게 만드는 건 ‘믿었던 것’에서 맞는 유쾌한 뒤통수이다. 연극 <대학살의 신>이 특별한 건 처음부터 끝까지 점점 난이도를 더해가는 이런 솔직한 뒤통수 강타 덕분이다.
관객들을 기만(?)하는 행위는 제목에서부터 시작한다. 집단, 무작위, 잔악함을 동반하는 ‘대학살’을 전면에 내세우곤 무대 위에서는 고작 ‘두 쌍의 부부’가 고작 ‘10살 아들들의 싸움’ 때문에 옥신각신 한다.
‘고작’은 제 3자만의 생각일지도 모른다. 작은 막대기로 상대 아이를 때린 것은 ‘막대기로 중무장하여 가격한 것’이 되었고, 미안하다는 사과 한마디면 끝날 법한 일은 철저히 가해자와 피해자로 서서 경위서를 주고 받는 꼴이 되었으니 말이다.
아이들의 싸움도 뒤통수에 포함된다. 사건 해결을 위해 모인 양쪽 부모이지만, 이들을 더욱 궁지로 몰아 폭발하게 만드는 건, 그간 참거나 애써 외면하며 살았던 남편과 아내에 대한 불만이며, 아무런 결론 없이 소통과 작별을 고하고 마는 허탈한 그들 스스로의 모습이다.
‘한 다발에 50만원 밖에 안 하는’ 꽃으로 집을 장식한 생활용품점 사장, 남편의 의중은 안중에도 없는 판에 아프리카 어느 곳의 유혈 분쟁에 핏대를 세우는 작가, 자기 아들 싸움에 끼어들고 싶지 않으면서 제약회사의 과실을 감싸주기에 한시가 바쁜 변호사, 남편 대신 집안일이며 아이들 일에 총대를 매 왔지만 결국 중압감에 못이겨 남의 집 거실에 '오바이트'를 하고 마는 주부.
연극 <아트>를 기억하는 관객이라면, 작가 야스미나 레자의 상황 변주 능력과 리드미컬한 대사 발휘력을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대학살의 신>에서도 사소한 사건과 거창하지 않은 배경으로부터 인간 본성에 감춰진 이기심을 여실히 드러낸다. 희곡 안에서 충분히 이야기의 완급과 탄력이 느껴지는 건 흔한 일이 아니다.
마지막이자 가장 큰 뒤통수는 바로 배우들이다. 대학로 대표 ‘진지파’에 속한다 해도 과언이 아닌 배우들이 치졸하고 유지하게, 결국 위엄 따윈 집어치워 버리는 부부로 나섰다. 참으로 오랜만에 코미디극을 통해 스스로 말하길 ‘잠재된 쌈마이’ 기질을 발휘 중인 서주희와 박지일은 결코 놓쳐서는 안 될 기가 막힌 모습이다.
공연장은 작품에 비해 크기가 커 무대로의 집중을 떨어뜨린다. 수시로 전복되는 상황들을 내달리며 주고 받아야 할 때, 쉼 없는 대사와 입에 잘 붙지 않는 어휘들이 다소 어색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아직 십분 발휘되지 못한 텍스트와 무대의 매력을 뛰어난 배우들의 연기력이 채워주고 있는 건 다행이다. 결코 지적이지 않은 <대학살의 신>이 주는 지적이고 통쾌한 웃음에 감염되어, 극장을 나서며 가려워 지는 내 뒤통수를 긁지 않는 관객은 별로 없을 것이다.
글: 황선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una1@interpar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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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뒤돌아 폭소를 터트리게 만드는 건 ‘믿었던 것’에서 맞는 유쾌한 뒤통수이다. 연극 <대학살의 신>이 특별한 건 처음부터 끝까지 점점 난이도를 더해가는 이런 솔직한 뒤통수 강타 덕분이다.
관객들을 기만(?)하는 행위는 제목에서부터 시작한다. 집단, 무작위, 잔악함을 동반하는 ‘대학살’을 전면에 내세우곤 무대 위에서는 고작 ‘두 쌍의 부부’가 고작 ‘10살 아들들의 싸움’ 때문에 옥신각신 한다.
‘고작’은 제 3자만의 생각일지도 모른다. 작은 막대기로 상대 아이를 때린 것은 ‘막대기로 중무장하여 가격한 것’이 되었고, 미안하다는 사과 한마디면 끝날 법한 일은 철저히 가해자와 피해자로 서서 경위서를 주고 받는 꼴이 되었으니 말이다.
아이들의 싸움도 뒤통수에 포함된다. 사건 해결을 위해 모인 양쪽 부모이지만, 이들을 더욱 궁지로 몰아 폭발하게 만드는 건, 그간 참거나 애써 외면하며 살았던 남편과 아내에 대한 불만이며, 아무런 결론 없이 소통과 작별을 고하고 마는 허탈한 그들 스스로의 모습이다.
‘한 다발에 50만원 밖에 안 하는’ 꽃으로 집을 장식한 생활용품점 사장, 남편의 의중은 안중에도 없는 판에 아프리카 어느 곳의 유혈 분쟁에 핏대를 세우는 작가, 자기 아들 싸움에 끼어들고 싶지 않으면서 제약회사의 과실을 감싸주기에 한시가 바쁜 변호사, 남편 대신 집안일이며 아이들 일에 총대를 매 왔지만 결국 중압감에 못이겨 남의 집 거실에 '오바이트'를 하고 마는 주부.
연극 <아트>를 기억하는 관객이라면, 작가 야스미나 레자의 상황 변주 능력과 리드미컬한 대사 발휘력을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대학살의 신>에서도 사소한 사건과 거창하지 않은 배경으로부터 인간 본성에 감춰진 이기심을 여실히 드러낸다. 희곡 안에서 충분히 이야기의 완급과 탄력이 느껴지는 건 흔한 일이 아니다.
마지막이자 가장 큰 뒤통수는 바로 배우들이다. 대학로 대표 ‘진지파’에 속한다 해도 과언이 아닌 배우들이 치졸하고 유지하게, 결국 위엄 따윈 집어치워 버리는 부부로 나섰다. 참으로 오랜만에 코미디극을 통해 스스로 말하길 ‘잠재된 쌈마이’ 기질을 발휘 중인 서주희와 박지일은 결코 놓쳐서는 안 될 기가 막힌 모습이다.
공연장은 작품에 비해 크기가 커 무대로의 집중을 떨어뜨린다. 수시로 전복되는 상황들을 내달리며 주고 받아야 할 때, 쉼 없는 대사와 입에 잘 붙지 않는 어휘들이 다소 어색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아직 십분 발휘되지 못한 텍스트와 무대의 매력을 뛰어난 배우들의 연기력이 채워주고 있는 건 다행이다. 결코 지적이지 않은 <대학살의 신>이 주는 지적이고 통쾌한 웃음에 감염되어, 극장을 나서며 가려워 지는 내 뒤통수를 긁지 않는 관객은 별로 없을 것이다.
글: 황선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una1@interpar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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