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창녕군 길곡면> 유쾌하게 풀어내는 비정한 현실

굳이 경남 창녕군 길곡면이 아니어도 된다. 서울이어도 되고, 제주도도 괜찮다. 제목과 작품이 큰 관계가 없는 동시에 대단히 밀접한 건, 연극 <경남 창녕군 길곡면>이 우리 사는 지구면 다 통하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대형 마트 운전 배달수인 남편 종철(이주원 분)과 같은 곳에서 계산원으로 일하는 선미(김선영 분)는 결혼 3년 차 부부이다. 무한도전의 유재석을 좋아하고, TV에 나오는 싱가포르 한번 가 보면 좋겠다, 생각하다가 맘에 드는 앤틱 서랍을 할부로 용기 내여 사기도 하는 평범한 오늘의 남편과 아내이다. 170만원의 월급, 집에서 별식 스테이크를 만들어 먹을 때 아스파라거스 대신 ‘돈도 안 들고 맛도 비슷한’ 파를 곁들이는 것, 그리고 저축해 둔 120만원이 있어 뭐든 짐짓 여유를 부릴 수 모습 등을 보니 이들의 살림이 그리 넉넉하지 않은 것 같지만, 애교 만점의 아내와 무뚝뚝한 남편은 쿵짝이 아주 잘 맞는다. 하지만 상황은 아내의 임신 이후 엇나가기 시작한다. 모성이 현실을 앞서기 시작한 부인과 부성이 현실을 뒤덮지 못하는 남편. 아이를 낳고 키우는 데 돈이 필요하고, 그들에게 그만큼의 돈이 있는지 의문에서 이야기가 내달린다. 도시 하층민들의 리얼한 일상을 통해 현실이 내포한 무서운 극단성을 이야기 해 온 독일 작가 프란츠 크사버 크뢰츠의 작품이다. 독일의 작은 도시명 ‘오버외스터라이히’가 원제로, 번안작이라고 도저히 믿을 수 없을 만큼 삶의 모습과 주고 받는 대사가 관객들에게 착착 달라 붙는다. 억센 경상도 사투리로 끊이지 않고 주고 받는 대사들, 그 사이의 잠깐의 정적, 그리고 시작되는 구시렁거림 모두가 아무것도 아닌 듯하게 개개의 의미로 극장을 가득 채운다. 잘 짜여진 작품의 모습은 이러하다. 2007년 초연 때부터 함께 해 온 이주원, 김선영 두 배우는 보물 중의 보물이다. 아내 역의 김선영은 실제로도 생명을 품고 있는 중이라니, 배역과 배우의 접점을 또 하나 가진 셈이다. 웃다 보니 눈물이 난다. 결혼을 하지 않았어도, 아이를 다 키웠어도 간접적이든 직접적이든 공감에 이르고야 말 것이다. 코리아나, 헤라 같은데 안 가고도 아무 립스틱 하나 바르면 처녀 같단 소릴 듣는 선미와 소리는 잘 안 나지만 색소폰 부는 멋있는 아빠는 드물거라며 씨익 웃는 종철의 모습이 오랫동안 그리워진다. 글: 황선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una1@interpark.com)

[ⓒ플레이DB m.playdb.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