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산 막장드라마가 터뜨리는 폭소, <웨딩스캔들>

“미안해”
“흥, 뭐가 미안한지는 알아?”
“내가 앞으로 잘할게”
“……” (포옹하는 두 사람)

대사만 들으면 딱, 연인들이나 주고받을 법한 대사다. 그런데 이 대화를 이성애자 남자와, 늘어진 추리닝을 입고 다리를 긁적이며 온라인게임에 빠져 사는 그의 십년지기가 주고받는다면?

연극 <게이 결혼식>은 크게 두 가지 재미를 축으로 돌아간다. 한 가지는 여자라면 맥을 못 추는 멀쩡한 이성애자 남자들이 어쩌다 보니 '밀당'을 하며 신혼부부처럼 달콤한 애정표현을 하게 되는 상황이다. 그 경위는 이렇다. 돌아가신 고모로부터 막대한 유산을 물려받게 된 앙리. 그런데 유상 상속에는 조건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결혼을 해서 1년간 혼인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 여자에게 얽매이는 것을 끔찍이 싫어하는 바람둥이 앙리는 친구 노베르의 조언에 따라 게임중독자이자 극작가인 친구 도도와 '게이 결혼식'을 치른다. 처음에는 마지못해 부부행세를 하던 두 사람은 어느새 다림질이나 음식쓰레기 처분을 두고 말다툼을 하고, 홧김에 짐을 싸기도 하면서 묘하게 진짜 부부를 닮아간다.


또 한가지 재미는 한국형 막장드라마는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얽히고 설킨 관계다. 앙리의 여자친구 엘자, 아버지 에드몽이 등장하면서 상황이 복잡해진 것. 앙리는 난감한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도도를 지적장애를 가진 남동생으로 만드는가 하면, 자신을 게이라고 믿게 된 아버지에게는 엘자를 노베르의 아내라고 소개한다. 황당한 상황 속에서 등장인물들이 주고받는 우스꽝스런 대사는 쉴새 없이 관객들의 웃음을 자아낸다.

특히 빛나는 것은 도도 역을 맡은 개그맨 김늘메의 연기다. 김늘메는 무표정한 얼굴로 능청스럽게 코믹한 대사를 던지고, 다른 배우들의 대사에 찰진 추임새를 넣으며 폭소를 이끌어낸다. 빠른 속도로 말할 때는 발음이 부정확하지만, 관객들은 그의 천연덕스런 연기에 마냥 웃기 바쁘다. <개그콘서트>를 볼 때 아무도 발음 따위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드라마 <난폭한 로맨스>에 '고기자'로 등장했던 앙리 역의 이희준도 감칠맛 나는 연기를 펼친다. 에드몽 역의 남문철, 노베르 역의 우지순, 엘자 역의 박민정 등의 연기도 마찬가지로 꼬집을 데가 없다. 만약 흠이 있다면, 프랑스 원작을 번역해 들여오면서 군데군데 어색해진 대본의 탓일 것이다.

사실 <게이 결혼식>의 내용 중에는 납득할 수 없는 부분도 있다. 게이 결혼식을 감행할 정도로 한 여자와의 정착을 거부했던 앙리가 갑자기 엘자를 사랑하게 된 것과, 독실한 신자인 그의 아버지가 알고 보니 게이라는 설정이 조금은 억지스럽다. 하지만 만사 제쳐두고 웃고 싶은 사람, 유머 코드가 평균치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 사람에게는 더없이 좋은 작품이다. 100분 동안 실컷 웃을 수 있을 테니.



글: 박인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iapark@interpark.com)
사진: 학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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