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키드> 웰메이드 블록버스터의 진수

‘Over the rainbow’를 잔잔하게 부르던 도로시를 기억 하는가. 파랑새가 날아다니는 꿈같은 세상을 그리던 이 소녀는 어느 날 회오리 바람에 휩쓸려 진짜 환상의 세계에 떨어진다. 그리고 허수아비, 양철나무꾼, 겁쟁이 사자를 만나 놀라운 여행을 시작한다. 아직까지 전세계 아이들, 심지어 어른들에게도 사랑 받는 동화 ‘오즈의 마법사’다. 그리고 ‘오즈의 마법사’의 또 다른 이면이 뮤지컬 <위키드>에서 펼쳐진다. 도로시가 물을 뿌려 사라지게 한 사악한 초록마녀가 사실은 정의감에 불타는 마법사였고 착한 마녀와는 친구였다는 유쾌한 반전을 품고. 세상의 지독한 편견, 선택, 우정과 사랑이라는 주제가 원작에 못지 않게 선명하고 매력적이다. 불 같은 성격에 초록색 피부 때문에 왕따 신세이지만 사실은 똑똑하고 정의로운 엘파바와 아름다운 외모와 애교로 누구에게나 주목을 받지만 허영심 가득한 글린다는 학교 룸메이트로 만나 친해진다. 처음엔 서로를 무척이나 싫어한다. 서로를 ‘비호감’으로 표현하는 부분은 웃음을 이끄는 부분. 각자의 집에 룸메이트를 묘사할 때 글린다는 “이상하게도…뭐라고 묘사하기 힘든데..특이하게도…”라며 적대심과 혼란스러움을 나타낸다면, 엘파바는 “금발이야” 한 마디로 정의하며 폭소를 이끈다. <위키드>는 이처럼 서로 다른 이들이 친구가 되고 성장하는 과정을 담는다. 이 과정에서 드러나는 편견, 권력, 진실과 허상은 우리에게도 참 따끔하다. 대중이 원하는 것이 '진실'을 아님을 단적으로 보여주며 엘파바와 글린다가 선택하는 길은 씁쓸하기도 하다. 그래서 사랑과 명예, 정의와 명분이라는 각자의 길을 선택한 두 사람이 전하는 메시지는 꽤나 묵직하다. 여기에 '오즈의 마법사' 인물들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더해져 의미와 흥미라는 두가지 토끼를 잡는다. 이 기발한 이야기를 감싸 안은 건 완벽한 화려함이다. 이 작품이 2003년 초연 이후 9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브로드웨이를 장악할 수 있었던 또 하나의 이유이기도 하다. 54번이나 일어나는 무대 전환은 빠르고 매끄러운데다 350벌의 화려한 의상, 조명, 그리고 웅장한 오케스트라 음악은 무대 매커니즘의 절정을 보여준다. 1막에서 ‘에머랄드 시티’의 형형색색 화려함을 노래하는 ‘One Short Day(원 쇼트 데이)’는 이 작품 특유의 화려함을, 엘파바가 정의를 위해 싸우기로 다짐하는 노래 ‘디파잉 그래비티(Defying Gravity)’는 절묘한 조명과 무대기술, 배우의 폭발적인 가창력을 볼 수 있다. 내한 배우 잼마 릭스(엘파바 역)와 수지 매더스(글린다 역)의 활약도 즐겁다. 호주 공연 초연부터 함께 해온 이들의 가창력과 안정된 연기력이 탄탄하게 극을 이끌어 간다. 모든 사람의 취향에 맞는 작품이 매력적인 경우가 별로 없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위키드>는 분명히 눈에 띄는 작품이다. 탄탄한 이야기와 화려하고 능숙한 무대 매커니즘은 웰메이드 블록버스터로서 손색 없다. 3시간의 공연 끝에 쏟아지는 기립박수는 뮤지컬이 종합예술임을 새삼 보여준 무대에 대한 예찬일 것이다. 글: 송지혜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ong@interpar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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