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재일작가의 작품세계 돌아보다, 연극 <뜨거운 바다>
작성일2012.08.07
조회수12,768
재일작가이자 연출가인 故 츠카 코헤이(김봉웅)의 연극 <뜨거운 바다>(원제:아타미 살인사건)을 고선웅 연출과 국내 배우들이 27년 만에 다시 무대에 올렸다. 지난 4일 개막한 이 연극은 "일본 연극사는 '츠카 이전'과 '츠카 이후'로 나뉜다"는 츠카 코헤이의 명성을 충분히 짐작하게 했다.
기이하고 황당한 이야기 전개
그 속에서 마주하는 깊은 따스함
연극은 아타미 해변에서 일어난 한 살인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도쿄경시청에 파견된 구마다 형사가 기무라 덴베 부장형사와 만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이 수사실에 기무라 형사의 정부 미즈노, 살해사건의 용의자 오야마 긴타로가 차례로 등장하면서 살해사건을 둘러싼 기구한 사연과 각 인물들의 심리가 펼쳐진다.
그런데 이 이야기가 전개되는 방식이 황당하기 그지 없다. 기무라 부장형사는 범인의 행적을 추리하는 구마다의 말을 자꾸만 끊으며 다른 남자와의 결혼을 앞둔 정부에 대해 이야기한다. '미즈노는 그 약혼자와 잤을까?'라고 질투하며 소동을 피우는가 하면, 그녀와의 첫날 밤 배게 밑에 숨겨뒀던 콘돔에 대해 얘기하는 식이다. 사건과는 전혀 상관없는 뜬금없는 대화 속에서 배우들은 갑자기 춤을 추고, 천장에서 둥근 조명이 내려오자 무대는 가라오케가 된다.
기이하고 황당한 이야기 전개
그 속에서 마주하는 깊은 따스함
연극은 아타미 해변에서 일어난 한 살인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도쿄경시청에 파견된 구마다 형사가 기무라 덴베 부장형사와 만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이 수사실에 기무라 형사의 정부 미즈노, 살해사건의 용의자 오야마 긴타로가 차례로 등장하면서 살해사건을 둘러싼 기구한 사연과 각 인물들의 심리가 펼쳐진다.
그런데 이 이야기가 전개되는 방식이 황당하기 그지 없다. 기무라 부장형사는 범인의 행적을 추리하는 구마다의 말을 자꾸만 끊으며 다른 남자와의 결혼을 앞둔 정부에 대해 이야기한다. '미즈노는 그 약혼자와 잤을까?'라고 질투하며 소동을 피우는가 하면, 그녀와의 첫날 밤 배게 밑에 숨겨뒀던 콘돔에 대해 얘기하는 식이다. 사건과는 전혀 상관없는 뜬금없는 대화 속에서 배우들은 갑자기 춤을 추고, 천장에서 둥근 조명이 내려오자 무대는 가라오케가 된다.
사건 따위 안중에도 없는 듯한 기무라 형사부장과 미즈노
그런데 더욱 기이한 것은, 이렇게 맥락을 알 수 없는 소란이 이어지는 가운데 어느새 네 사람이 사건의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구마다는 창부인 어머니를 위해 호객행위를 해야 했던 어린 시절의 상처를 치유 받고, 기무라와 미즈노는 제법 진중한 태도로 이별을 맞이하게 된다.
압권은 오야마가 바닷가에서의 살해 사건을 재연하는 장면이다. 고향을 떠나 '공돌이'가 된 그는 어린 시절의 첫사랑 아이코를 만나 그녀에게 청혼한다. 그러나 매춘부가 된 아이코는 선뜻 그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도시에서의 삶은 그들을 이미 황폐하게 짓밟아 놓은 것이다. 차츰 절규로 변해가는 두 사람의 대화는 그들이 품은 뼈아픈 상실감을 드러낸다. "하늘, 끝없이 하얗고 / 바다, 끝없이 파랗고 / 사람들, 모여서 손을 잡고 돌아온 / 우리들을 따뜻하게 반겨주겠지" 졸업식에서 낭독했던 희망찬 송사는 역설적으로 가장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자의 아픔을 절절히 표현한다.
정신 없이 웃음을 터뜨리며 이야기를 쫓아가던 관객들은 그제야 작가가 펼쳐놓은 이야기의 큰 맥락을 조망해보게 된다. 독특하고 능청스러운 이야기 전개, 그리고 그 안에 스민 깊은 연민과 따스함. 츠카 코헤이의 이름 앞에 붙은 '천재 연출가'라는 수식이 무겁지 않다.
캐스팅과 연기도 탁월하다. 황당한 소리를 지껄이다가 각 인물들의 진심을 끄집어내는 기무라 부장형사는 <푸르른 날에><인 굿 컴퍼니>의 이명행이 연기하고, 살인 용의자 오야마 긴타로는 <인생><노부인의 방문>의 마광현 배우가 맡았다.
사건의 전모를 천착하던 와중에 창부였던 어머니의 사랑을 깨닫는 젊은 형사 구마다는 <햄릿>의 김동원이 맡아 열연하고, 영화 '러브픽션'의 이경미가 기무라 형사의 정부 미즈노 토모코와 살해된 매춘부 등 1인 2역으로 분한다. 120분 동안 이어지는 네 사람의 밀도 높은 연기는 찬사를 불러 일으킨다.
이번 <뜨거운 바다>는 27년 만에 같은 제목으로, 같은 장소에서 공연된다는 점에서 더욱 뜻 깊다. 츠카 코헤이는 지난 1985년 방한해 원작 <아타미 살인사건>을 <뜨거운 바다>라는 제목으로 바꿔 무대에 올린 바 있다. 당시 전무송·강태기·김지숙·최주봉 등 최고의 배우들이 함께했다. 츠카 코헤이의 타계 2주기를 맞아 기획된 이번 공연은 그의 작품세계를 돌아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뜨거운 바다>는 8월 19일까지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에서 볼 수 있다.
기무라 덴베 부장형사(이명행)
살해사건의 용의자 오야마 긴타로(마광현)
젊은 형사 구마다 토메키치(김동원)
기무라 덴베의 정부 미즈노 토모코(이경미)
글: 박인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iapark@interpark.com) 기무라 덴베의 정부 미즈노 토모코(이경미)
사진: 기준서(스튜디오춘 www.studiochoon.com)
[ⓒ플레이DB m.playdb.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