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불의 전차를> 역시 정의신! 열정과 희망 담은 불의 전차를 선사하다

드라마 ‘최고의 사랑’ 이후 대한민국 최고의 까칠하고 매력적이며 미워할 수 없는 남자가 된 차승원은 이후 연이은 광고 촬영과 활동 등으로 “내 자신이 많이 소진 된 느낌”이라고 했다. 배우마다 그릇이 있다면, 차승원은 그릇에 담긴 것만 퍼다 써서 이제는 가진 게 없다는 위험한 신호를 감지했다는 것. 원점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하고 싶었다는 그는 연극으로 향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자신의 첫 연극인 <나에게 불의 전차를>를 통해 그간 느꼈던 결핍의 불안감을 보기 좋게 ‘극복’ 해 내었다.

<야끼니꾸 드래곤> <봄의 노래는 바다에 흐르고> 등의 작품을 통해 한국과 일본인, 그리고 재일교포로 살아가며 혼란 속 삶의 끈을 놓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웃음과 감동으로 펼쳐낸 정의신이 신작 <나에게 불의 전차를>을 한국에 선보이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일제 말기 한국을 배경으로 한 <나에게 불의 전차를>은 한국 문화의 가치를 깨닫고 소중히 여기는 일본인 교사 나오키(쿠사나기 츠요시 분)와 이리저리 떠돌며 서민들의 애환을 달래주었던 남사당패 꼭두쇠 순우(차승원 분)의 국경을 초월한 우정을 담고 있다.

여기에 남사당패의 전 꼭두쇠와 고대석(김응수 분)과 잊지 못할 기억, 말 못한 비밀 속에 그와 손을 잡는 나이트클럽 오너 오오무라 키요히코(카가와 테루유키 분)의 관계 역시 시대의 아픔 속 몸부림 치며 서로를 보듬는 뜨거운 감동의 모습이다.

지난 해 11월부터 한 달간 동경 아카사카 ACT씨어터에서 초연했으며, 이후 우메다 예술극장에서도 4일간 공연을 이어갔다. 당시 전해진 전석 매진과 기립박수의 소식은 시대가 개인의 입을 막고 손을 묶는 상황에서 자신의 생각과 의지를 믿고 굽히지 않는 나오키의 모습과, 천대 속에 주어진 길을 숙명으로 여기며 기쁘고 감사하게 앞으로 걸어나가는 남사당패의 모습이 소박한 듯 하나 인생을 받아들이는 진정한 고수의 달관과 꺼지지 않는 불꽃 같은 의지가 느껴져서가 아닐까.


정의신이 쓰고 연출한 몇몇 작품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것과 같이 본 공연의 막이 오르기 전 배우들은 무대 위에 나와 무대 위를 일상의 모습으로 채우고 있다. 흥겨운 사물놀이와 접시, 상모 돌리기, 가슴 졸이게 하는 줄타기 등 한국 전통의 음악과 놀이의 맛과 재미도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 잡는다. 한 걸음엔 웃음을, 또 다른 한 걸음엔 진한 감동을 새겨 하나의 줄 위를 유연하게 걷고 있는 느낌이다.

불면증이 걸릴 정도로 낯선 땅 일본에서 낯선 연극 무대와 용어들, 문화에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차승원은 그간 성실하게 연습하고 임해왔다는 증거를 매끄러운 순우 역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국내 초난강의 이름으로도 유명하며 “한국 무대에 서는 게 나의 꿈이었다”고 말할 정도로 한국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는 쿠사나기 츠요시는 한국어와 일어를 번갈아 쓰며 열혈 교사 야나기하라 나오키 역에 집중하고 있으나 한국어 대사에는 어색함이 여전히 묻어나 집중을 덜하게 한다. 순우를 따르는 사당패들과 나이트클럽 접대부들의 야무지고 맛깔나는 연기는 보는 이의 넋을 놓게 만든다.

이 밖에 일본 대표 연기파 배우 카가와 테루유키의 강렬한 인상과 밀도 높은 연기를 직접 만나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며, 히로스에 료코의 밝고 귀여운 모습은 젊은 팬들의 마음을 더욱 사로잡을 것으로 보인다.

3시간 30분의 다소 긴 러닝타임이나 지루함을 느낄 틈은 없다. 일본 특유의 슬랩스틱이 소소한 웃음을 낳게 하며 그 밖의 인물들이 가진 아픔들이 희망의 이름으로 서로를 치유하는 모습은 저 멀리 어둠을 몰아내고 떠오르는 태양처럼 모두의 가슴에 불의 전차를 이끌어 오는 것과 같이 긍정의 기운을 심어준다. 우리는 정의신의 다음 작품도 고대하게 되었다.

글: 황선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una1@interpark.com)
사진: 우메다예술극장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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