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아닌데> 타인의 삶을 정의하지 말지어니

어떠한 일에 대한 자의적 확신은 통찰력의 가면을 쓰고 있지만, 누군가의 진실과 사실, 행복과 고통을 무참히 왜곡할 수 있는 위험이 언제나 동반된다. 불통(不通)은 나에 대한 이야기가 절대 아니고, 너에 대한 이야기라고 확신하는 것이 평범한 인간들의 공통점이며 세상을 굴곡지게 만드는 근원 아니겠는가.

연극 <그게 아닌데>에서 코끼리 조련사는 묻는 말에 “그게 아닌데…”만을 반복한다. 동물원에 있던 코끼리들이 왜 갑자기 우리를 벗어나 선거 유세장으로 달려갔는가. 조련사는 숙련된 조련법으로 그 녀석들을 쉽게 진압할 수 있었는데 왜 가만히 보고 있었는가. 정치적 계략인가, 왜곡된 심리의 도발인가. 아니면 어렸을 때부터 누군가를 풀어주어야만 했던 조련사 본연의 습성이었나.

형사, 정신과 의사, 그리고 조련사의 어머니 등이 쏟아내는 사건에 대한 질문은 그들의 입으로 나오는 순간 가설이자 답이 되어 조련사에게 쏟아진다. ‘그게 아니’지만 ‘분명 그럴 것’이라는 타자의 확신에 구석으로 몰리는 조련사는 결국 실존을 거부하고 환상의 세계로 도피할 수 밖에 없다.

극단 청우의 <그게 아닌데>는 자신만의 세계를 확신하는 현대인들이 얼마나 위험하게 사회를 인식하는지 보여주는 작품이다. 세계 70억 명의 70억 개의 우주는 저마다 부딪히며 ‘그게 아닌데’라는 파열음을 내지만, 그 어디로 관통하거나 흡수되지 못하고, 억압된 욕망은 뒤틀린 모습으로의 수순을 밟는다.

65분의 길지 않은 시간 동안 단 5명의 번갈아 등장하며 하는 일상의 말은, 농밀하고도 강압적이지 않게 이야기를 구성하는 놀라운 힘을 발휘한다. 형사와 정신과 의사가 지닌 전형성과 조련사와 조련사 어머니가 가진 개성이 낯설지만 오묘한 분위기를 연출해 내고, 소통 불능의 장면에서 때때로 실소를 자아내게 만들며 불필요한 무게를 내려 놓는다. 사실과 환상이 만나는 극의 미학이 군더더기 없이 세련된 작은 무대에서 만끽할 수 있다.

지난 해 초연 후 동아연극상 작품상, 연출상, 대한민국 연극대상 대상, 연출상을 수상했으며 연기상은 모두 윤상화에게 돌아갔다. 160cm 안팍의 작은 키와 체구, 어느 지역 사투리인지 쉽게 가늠할 수 없는 독특한 말투의 그는 젊은 시절 <에쿠우스>의 알런이었고, 지금은 존재로서 무대를 지탱하는 믿을 수 있는 배우로 관객 앞에 서고 있다.

글: 황선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una1@interpark.com)
사진: 코르코르디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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