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칼렛 핌퍼넬> 가장 로맨틱한 영웅의 탄생

공포정치가 장악한 18세기 프랑스. 단두대에서 무고한 사람이 목숨을 잃는 흉흉한 세상에서 이들을 구출하는 정체 모를 인물이 등장한다. 현장에 붉은 꽃(스칼렛 핌퍼넬) 문양의 노트를 남겨 ‘스칼렛 핌퍼넬’이라 불리는 인물. 이 영웅의 사랑과 모험을 그린 활극 로맨스 <스칼렛 핌퍼넬>이 개막했다.

바로네스 오르치의 고전소설을 원작으로 지난 1997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한 뮤지컬 <스칼렛 핌퍼넬>이 16년 만에 국내 관객과 만나고 있다. 의상을 탐닉하는 철없는 영국 귀족이 사실은 프랑스의 참혹한 살상에 저항하는 정의의 수호자였다는, 여러 ‘맨’들과 맥락과 같이하는 낯익은 영웅 이야기다.

하지만 영웅의 원조라고는 하나 발음조차 쉽지 않은 <스칼렛 핌퍼넬>이 관객에게 어필하는 포인트는 지금까지의 영웅과 달라 보인다. ‘배트맨’ ‘아이언맨’ 처럼 첨단 기술들이 동원되거나, 뮤지컬 <조로>처럼 와이어 액션을 선보이지 않는 이 작품엔 대신 로맨스가 강하게 자리잡고 있다. 

걱정 없이 잘 나가는 영국 귀족이 갑자기 비밀 결사대를 만들어 프랑스의 영웅을 자처한 것도, 정체를 숨기기 위해 사치스럽고 생각 없는 한량 노릇을 한 것도, 그로 인해 목숨이 위험해진 것도, 그의 부인 마그리트 때문이었다. 프랑스 배우 출신의 마그리트는  과거 비밀을 간직한 매력적인 여인. 퍼시(스칼렛 핌퍼넬)는 그녀가 정치적 밀고자일지 모른다는 의심에 갑자기 차갑게 대하고, 그녀의 진실을 알고 절절하게 ‘she was there’을 부른다.  영국과 프랑스를 오가며 참혹한 세상에 맞서는 그의 머릿 속엔 악당 쇼블랑이 아닌 온통 마그리트만 있는 것 같다. 악당과 싸우면서 로맨스는 양념처럼 곁들어진 지금까지 여러 영웅들과는 확실히 다르다.



이 점은 특히 여성 관객들에게 어필한다. 부유하고 잘생긴 남자의 일편단심 사랑이란 시공을 초월해 언제나 통하기 마련. 스칼렛 핌퍼넬을 열연하는 박건형은 고뇌하는 남자와 수다스럽고 사치스러운 귀족을 오가며 알찬 매력을 보여준다. 애드립인지 대사인지 구분이 가지 않게 쏟아내는 대사는 수시로 객석을 웃게 만들고 우수꽝스럽도록 화려하게 치장한 그는 한심해 보이지만, 관객은 안다. 그가 멋진 영웅인 것을. 질리도록 보아온 패턴이지만 여전히 흥미로운 설정이다. 그의 연적이자 프랑스 공포정치의 손발 역할을 한 ‘쇼블랑’의 활약도 놓칠 수 없다. 정치적 신념이 아집이 된 쇼블랑의 비뚤어진 사랑도 이 작품의 한 축이다.

하지만 3시간 안에 캐릭터 설명과 영웅담을 다 담기엔 무리였던지 1막 초반에는 퍼시의 매력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는 산만한 스토리 진행이 몰입을 방해한다. 영국 귀족이 (아무리 부인과 이웃나라의 참혹한 상황 때문이라지만)왜 프랑스 공포정치 속의 영웅이 되려 했는지에 대한 부분도 공감하기 힘들다. 그저 친구들에게 “우리가 나서자”고 외칠 뿐이다. 

그러나 새로운 영웅 , 더구나 무척이나 로맨틱한 영웅의 탄생은 반갑다.  그 당시 무거운 정치상황은 퍼시와 친구들의 활약을 보여주기 위한 장치 정도로만 쓰이지만 오히려 덕분에 가볍게 이들의 사랑 이야기를 즐길 수 있다. <지킬앤하이드> <몬테크리스토> 등으로 우리나라에서 특히 사랑을 받는 작곡가 프랭크 와일드 혼의 초기 작품 넘버를 감상할 수 있다는 점도 놓칠 수 없다.  

퍼시 역에 박건형, 박광현, 한지상, 마그리트 역에 김선영, 바다, 쇼블랑 역에 양준모, 에녹 등이 개성강한 연기를 펼치는 이번 작품은 오는 9월 8일까지 LG아트센터에서 만날 수 있다.

글: 송지혜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ong@interpar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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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2

  • natural13** 2013.07.21

    바다씨보러 갑니다~ㅋㅋ 최성희 파이팅!!

  • 77o** 2013.07.11

    처음에 제목만 듣고는 마냥 무거운 극일꺼라 생각했는데.. 재미도 함께있는 극이라서 참 좋았어요. 재미뿐만이 아니라 넘버 하나하나가 너무 좋아 찾아듣게되는 공연이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