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을 뚫는 남자> 화려한 대작 속에서 조용히 빛나다

‘화려하거나, 이미 유명하거나’.
연말 뮤지컬 홍수 속에서 작품이 눈에 띌 수 있는 전략 중, 뮤지컬 <벽을 뚫는 남자>가 해당되는 사항은 없을지 모른다. 하다못해 자극적이지도 않다. 그런데 이 작품, 은근한 힘으로 연말 뮤지컬 시장에서 빛나고 있다.

어느 날 갑자기 ‘벽을 통과하는 능력’을 가지게 된 남자, 듀티율이 영웅이 되어 사랑을 찾는다는 이야기가 이 작품의 줄기. 듀티율이란 남자, ‘5시 칼퇴근’, ‘민원처리는 대충’인 우체국 직원들 분위기에서 혼자 눈치 없이 성실한 우체국 공무원이다. 퇴근 후엔 소박하게 꽃에 물을 주는 평범한 일상에 이유도 모른 채 (극중 의사가 자신감 부족으로 인한 세포 물렁증이라 언급하지만) 벽을 통과하게 되면서 그의 세상은 180도 바뀐다. ‘뚜네뚜네’란 영웅이 돼 어려운 사람을 몰래 도와주고 권력자의 비리를 폭로하는데다, 사랑하는 여인의 눈에 띄기 위해 용기를 낸다.

<벽을 뚫는 남자>에 스펙타클한 무대 장치는 없다. 듀티율이 벽을 통과하는 장면은 조명과 세트를 사용해 소박하게 표현할 뿐이다. 화려한 ‘칼군무’나 대규모 오케스트라도 없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 작품은 벽뿐 아니라 관객의 마음도 말랑거리게 한다. 쉽게 잊혀지지 않는 듀티율의 동화같은 로맨스도 큰 비중을 차지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에 대한 시선이 따뜻하고 정감있다. 몽마르뜨 언덕에 사는 퇴물 매춘부, 술에 의지해 사는 의사, 화가와 신문팔이 소년, 얌체 같은 우체국 직원들, 경찰 등 작품이 그냥 지나치는 캐릭터는 없다. 화려함 대신 택한 웃음과 위트, 온기 있는 시선은 이 작품의 백미다.

 

프랑스 작가 마르셀 에메의 동명소설을 바탕으로 영화 <쉘부르의 우산> <007시리즈> 등의 음악을 만든 미셸르그랑이 작곡을 맡아 1996년 프랑스에서 초연했다. 덕분에 <노트르담 드 파리>와는 또 다른 매력을 지닌 넘버에선 프랑스의 정서를 듬뿍 느낄 수 있다. 4인의 연주자들이 전하는 피아노, 건반, 플루트, 클라리넷 등 라이브 연주도 풍미.

지난 공연에 이어 다시 작품에 출연하는 이종혁을 비롯해 마이클리, 김동완이 ‘벽을 뚫는 남자 듀티율’로 분했다. 특히 올해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노트르담 드 파리>로 큰 주목을 받은 배우 마이클리는 엄청난 가사를 소화해야 하는 이번 작품에서 어색하지 않은 한국어 실력으로 극 속에 녹아 들었다. 지금까지 맡은 역할 중 가장 소박하고 소시민적인 캐릭터를 소화해 향후 그가 보여줄 활약도 기대케 한다. 고창석과 임철형은 극중 의사, 형무소장, 경찰 등 코믹한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한다. 올해 <헤드윅>으로 주목 받은 손승원은 신문팔이 소년 역이다. 지난 2006년엔 조정석이 맡기도 했다.

2006년 국내 초연해 2007, 2012년에 이어 이번이 네 번째 무대로 오는 2014년 1월 26일까지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에서 만날 수 있다.

글: 송지혜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ong@interpar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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