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루미데이> 이것은 단순한 정사(情死)가 아니다

신선하고 매끄럽다. 근래 보기 드문 잘 다듬어진 창작극임이 분명하다. 미스터리와 멜로가 이질감 없이 어우러진 극, 뮤지컬 <글루미데이>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무대에 오르는 이유는 많다.

우리나라 최초의 소프라노로 기록되고 있는 윤심덕과 극작가 김우진을 주인공으로, 1926년 8월 이들이 '부산과 일본 시모노세키를 오가는 관부연락선에서 동반 투신 자살했다'는 사건에서 <글루미데이>의 이야기는 출발한다. 이들이 왜 생의 범위에서 스스로 벗어났는지, 어찌하여 그러한 선택에 이르게 되었는지, 이 사건은 부농의 아들이자 처자식을 거느린 유부남과 여전히 보수적인 사회 속에서 끊이지 않고 구설수가 따랐던 매력적인 신여성의 단순한 정사(情死)에서 그치는 일이 아닐 것이라며 또 다른 이야기의 출구를 열어놓는 것, 그것이 <글루미데이> 이다.

그 또 다른 출구의 열쇠는 '사내'이다. 어디에서 왔으며 어떠한 목적을 지닌 사람인지 알 수 없는 가상의 인물인 사내는 김우진과 윤심덕 주변을 맴돈다. 두 인물을 만나게 하고 또 헤어지게도 하며 예기치 않은 사건들을 만들고 그 안에 이들을 끌어드리는 베일에 싸인 존재. 사내라는 단 한 명의 인물로 대단히 세련된 상상의 결을 만들어 내고 있음이 놀랍다. 단지 이 사내가 실존 인물인지 아닌지 헛갈리게 만드는 모호한 후반부의 정리가 관객들에게 호기심과 혼란을 모두 가져오게 만든다는 아쉬움은 있다.


크기에 욕심을 내지 않고 중심의 밀도를 높인 것이 무엇보다 이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는 요인이다. 김우진과 윤심덕이 동반자살하기 5시간 전부터의 모습을 시간의 역순으로 펼쳐내는 정확하고 밀도 높은 설정을 바탕으로, 이들의 더 먼 과거와 현재가 오가는 영리한 변주가 오로지 하나의 무대 세트에서 펼쳐진다. 요란한 무대 변환과 현란한 조명 대신 관부연락선으로 차려진 세트의 앞과 뒤, 1층과 2층을 균형 있게 쓰고 있으며, 시종일관 어두운 기운을 바탕으로 빛의 조도만을 조정한 조명은 작품의 분위기를 '글루미'하게 통일시키는데 집중하고 있다.

또한 실제로 윤심덕이 부른 노래 '사의 찬미'는 가사의 내용이 작품과 잘 맞아 떨어짐과 동시에 매끄럽게 편곡되어 <글루미데이>의 테마곡으로 자리를 잘 잡고 있다. '됴쿄찬가', '이 세상엔 없는 곳' 등의 넘버들은 한번 들으면 리듬을 흥얼거리게 하는 맛이 있으며 극의 상황, 인물의 캐릭터를 잘 드러냄과 더불어 극의 분위기를 십분 살리며 뮤지컬 넘버로서의 기능도 충실히 수행하는 모습이다.

남자 캐릭터가 점령한 요즘의 공연 무대에서 매력적인 여자 캐릭터를 만날 수 있다는 것도 공연을 많이 접한 애호가들에겐 새롭고도 반가운 일일 것이다. 지난해부터 <글루미데이>에 출연 중인 곽선영은 자유와 사랑, 그리고 자신의 꿈을 마음껏 펼칠 세상을 갈망하는 윤심덕의 매력을 독특한 억양과 맛깔진 호흡의 노래로 제대로 발산 중이다. 역시 함께 호흡을 맞춰 온 김우진 역의 김경수도 안정적인 성량과 연기력을 지닌, 주목할 만한 젊은 배우 중 한 명으로 꼽기에 주저하지 않겠다.

자극적인 것이 모두 다 강렬한 것은 아니다. 강렬한 것이 모두 다 깊은 인상과 여운을 심어주는 것도 아니다. <글루미데이>는 적어도 깊은 인상과 여운을 남기는 강렬한 자극임이 분명하다.

글: 황선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una1@interpark.com)
사진: 플레이디비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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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1

  • mhy10** 2014.03.12

    글루미데이는 뭔가 마성의 매력을 가진 작품입니다. 어둡고 소름끼치는 분위기가 계속되지만 한 번빠지면 헤어나올 수 없는 무언가가 있죠. 저는 요즈음 사내에 푹 빠져있답니다. 누군지 알 수 없지만 참으로 매혹적인 인물이지요. 심덕과 우진을 마리오네뜨 부리듯이 부리는, 제게는 극을 이끌어가는 존재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