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키 쇼> 제발 내 곁에 오지마, 베키!

위태한 관계라는 것은, 완전히 산산조각이 나기 전의 관계, 아직 '연(緣)'이라는 것이 맞닿아 있는 관계라는 뜻이기도 하다. 이렇게까지 오게 된 과정을 돌이킬 방법은 찾기 힘들고, 저 멀리 보이는 '나락'이라는 결말을 앞당겨 맞이하기엔 두려운 상태. 그런 위태함을 '안정'이라 자위하며 하루하루를 더해가는 사람들이 "별일 없이 산다"며 나른한 일상을 채워가는 보통의 사람들 아닐까.

그래서 베키는 가까이 하기엔 꺼림직한 존재이다. 그가 가족들과 연락이 끊기고 이성과의 사랑을 뜻대로 이뤄본 적 없으며 심지어 의료보험이 없어 병원에도 마음대로 못 가는, 이상한 옷차림의 여자여서가 아니다. 파멸의 경험이 안겨준 직감을 가지고 당신의 위태함을 정확하게 꼬집기 때문이다. "그렇죠? 그런거죠? 다 알아요."라고.

연극 <베키 쇼>의 첫 장면은 아버지 장례를 치른 6개월 후, 여전히 애도기간을 갖고 과거 속에 자신을 가두고 있는 수잔나(김도영 분)와 냉철한 이성과 상황 판단력으로 집안 대소사의 해결사로 나서지만 포르노를 보지 않고는 잠에 들지 못하는 맥스(신덕호 분)의 등장에서 시작된다. 아직 해결되지 않은 유산 정리를 의논하고, 죽은 남편은 일찌감치 과거의 일로 마침표를 찍고 다리가 아픈 자신을 돌봐줄 만한 애인을 옆에 들인 엄마에 대한 이들의 걱정은, 성년이 된 두 남매가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따뜻하게 보수하는 그림이 되기에 충분한 요소이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서로의 버팀목이 되어 주고 있는 남매라는 이름 뒤엔 부모로부터의 버림, 충격적인 아버지의 진실, 그리고 이성으로서의 사랑이 뒤엉켜 이들 스스로도 제 한 몸을 온전히 가늠하지 못할 상황이 숨어 있다. 억지로 외면하며 자신의 불안정성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베키는 당당하다. 비록 커튼 같아 보이는 이상한 드레스를 입고 등장하더라도 자신의 감정과 불안, 그리고 욕망에 솔직하고 충실하다. 비정상적으로 보이는 그녀의 모습은 오히려 정상의 '비정상성'을 날카롭게 꼬집고, 베키로 인해 자신들이 지켜 온 위태로운 정상의 삶이 깨질까 봐 이들은 혼란스럽고 불안하다. 과연 누가 현실과 대면할 용기를 낼 것인가. 누가 누구에게 온전한 사랑의 손을 내밀어줄 것인가.

올해 '불신시대'를 주제로 두산아트센터가 선보이는 첫 작품인 <베키 쇼>는 인간의 본성을 예리하게 파고드는 메시지로 짐짓 무거운 무대를 예상할 수도 있으나, 톡톡 튀는 대화, 불현듯 튀어나오는 예상치 못한 인물들의 행동과 상황들로 시종일관 웃음이 터지게 만든다. 무대 위 인물들이 베키 쇼의 등장으로 정신을 놓고 우왕좌왕하는 모습에 관객들은 실소와 함께 씁쓸한 뒷맛을 느낄 것이다. 맛깔진 대사들이 리드미컬하게 살아나는 것이 무엇보다 <베키 쇼>를 펼쳐 보이는 매력일진대 베키 쇼 역을 맡은 강지은만이 순발력과 특유의 센스로 그 맛을 십분 살려내고 있다. 수잔 슬레이터 역의 이연규는 모든 것을 통달한 듯한 모습으로 베키와 대칭 혹은 접점으로 자리해 무대 균형을 맞추고 있다. 오는 26일까지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

글: 황선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una1@interpark.com)
사진: 플레이디비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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