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한 공포와 유머, 눈길 사로잡는 연기력까지…<날 보러와요>

아악-외마디 비명소리 소리에 마음이 서늘해진다. 공연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갈 밤길이 은근 걱정되면서도, 어느새 키득키득 웃음이 터져 나온다. 연극 <날 보러와요>는 첫 무대에 오른 지 19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섬뜩한 공포와 웃음을 풍부히 선사한다.

<날 보러와요>는 1986년부터 1991년까지 화성군 일대에서 발생한 미해결 살인 사건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연극이다. 경찰과 기자들이 10여 차례에 이르는 강간 및 살인 사건을 추적하는 과정을 리얼하게 담아내 1996년 초연부터 큰 화제를 낳았다. 2003년에는 이 연극을 원작으로 한 영화 <살인의 추억>이 500만 관객을 불러들인 바 있다.

극은 이미 네 건의 연쇄살인사건이 발생한 후,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서울에서 발령받은 김반장이 등장하며 시작된다. 과학적 수사방식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김형사와 걸핏하면 용의자를 윽박지르는 조형사, 능글능글 유쾌한 만담꾼인 박형사가 등장해 김반장의 지시 하에 용의자를 추적해 나간다. 수사가 진행될수록 어두운 긴장감이 객석에 스민다.


이 연극이 시종일관 긴장감만 조성하는 것은 아니다. 형사들이 열악한 수사환경에서 고군분투하며 오판을 거듭하는 장면, 가지각색 다양한 용의자들이 잡혀와 취조 받는 장면에 유머가 가득하다. 용의자가 무모증일 것이라고 판단하고 하루에 10번씩 목욕탕을 들락거리며 무모증 환자를 찾는 형사, 살인현장 주변의 흙을 한 통 퍼와 현미경을 들이대고 체모를 찾는 형사들의 모습이 안쓰러운 웃음을 자아낸다.

사건이 연이어 발생하면서 좌절과 혼란에 빠지고 서로 대립하는 형사들의 심리도 섬세하게 그려진다. 의욕 넘치던 김반장도, 유머를 잃지 않던 박형사도, 가장 이성적이었던 김형사도 번번이 수사망을 빠져나가는 범인과 끔찍한 범죄현장 때문에 무너져 간다. 김형사가 마지막 용의자를 앞에 두고 흥분해 이성을 잃고 분노하는 장면에서 객석의 안타까움도 절정으로 치닫는다.

무엇보다 이 작품을 보는 가장 큰 즐거움은 배우들의 호연을 보는데 있다. 김형사 역을 맡은 김준원 등 주연배우들은 물론이고, 짧은 시간 등장하면서도 순식간에 눈길을 사로잡는 남씨부인 역의 이봉련, 멀티맨 역의 양승환의 연기는 감탄을 자아낸다. 관음증 환자를 비롯한 세 명의 용의자를 번갈아 연기한 김철진도 이에 못지 않은 연기력을 선보였다. 그가 다음 작품에서 보여줄 연기도 궁금해졌다. 공연은 내달 31일까지 아트센터K 세모극장에서 볼 수 있다.

글: 박인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iapark@interpar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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