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론> 일일드라마 '대한민국'을 HD로 비추는 무대

희소성이 무척이나 높은 작품이다. 실제로 연극 무대에서 자주 접할 수 없는 실제 거대 기업의 파산 과정을 소재로 했다는 것 뿐 아니라 파산 과정에서 일어나는 끝도 없는 비리들의 면면을 독특한 무대 언어를 통해 한편의 완성도 높은 극으로 펼쳐내고 있기 때문이다. 연극은 현실을 비추는 거울이라는 말도 있지만, 특히나 지금 한국에서 <엔론>은 마치 일일드라마 '대한민국'을 HD화면으로 보는 것과 같아 더욱 아찔하다.

영국 작가 루시 프레블이 써 2009년 런던에서 초연한 <엔론>은 세계 경제의 중심이라는 미국에서 2001년 일어난 거대 에너지 기업 엔론의 파산 과정을 담고 있다. 글로벌 컨설팅 그룹 맥킨지의 임원이었던 제프리 스킬링(김영필 분)이 엔론 회장 켄 레이(유연수 분)의 제안으로 엔론에 합류하면서 극은 시작된다. 실제로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 지원 당시 '나는 엄청 똑똑하다'라고 말했다는 일화도 있듯이, 세상 두려울 것 없이 자신감 넘쳤던 제프리 스킬링은 해외 부문 사업 담당 클로디아 로를 제치고 CEO 자리에 올라 엔론을 '가장 혁신적인 기업'으로 꼽히게 만든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그는 기업의 부실을 떠넘기기 위해 특수목적 법인을 설립했으며 분식회계, 정경유착 등 온간 방법을 통해 엔론의 주가를 높게 조작하는데 총력을 기울였다. 결국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난 부채와 시장 분석가들의 의구심 등으로 엔론의 적나라한 실체는 세상에 폭로된다.

무엇보다 겉으로 화려하고 탄탄대로를 달리고 있는 것 같이 보이는 기업과 한때 '신 경영의 아이콘'으로 추앙받기까지 한 기업가의 이면이 끝을 알 수 없는 비리로 가득했다는 사실이, 이들이 얼마나 추악하게 '돈'을 목표로 질주했는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사실 <엔론>은 미국 이야기만이 아니고, 옛날 이야기도 아님을 우리 모두 알고 있다. 최근 발생한 세월호 참사를 통해서 온 국민이 목격하고 있듯, 돈을 향한 인간의 이기심은 그 끝을 가늠하기 두려울 정도이다. 특히 그 결과가 낳은 눈물과 고통의 무게가 더더욱 타인의 몫으로 돌아가는 상황에 분노와 안타까움을 쉽게 금할 수는 없으리라.

금융 사건이라는 다소 딱딱하고 어려울 법한 내용을 담고 있지만 <엔론>의 이야기 서술 방식은 활기차다. 때때로 춤과 노래로 묘사되는 상황들과 쥐, 악어떼 등으로 등장해 조롱 받는 어리석은 무리들, '리먼 브라더스'를 배우와 손가락 인형으로 동시에 표현하는 등 곳곳에 유머와 재치가 넘친다. 장면에 따라 객석에 불이 갑자기 켜지거나 서서히 어두워지곤 할 때, 우리는 무대 위 이야기인지, 지금 우리의 이야기인지, 너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모습들에 당황하게 될 수도 있다. 사실 나열에 급급하지 않고 연극의 언어와 매력을 십분 살려내는 모습이다. 유연수, 김영필, 양종욱, 박윤정 등 배우들은 탄탄하고 유려하게 무대 위를 종횡무진 한다. 자본주의가 문제는 아니다. 왜 우리는 자본주의를 지속하고 있는가, 과연 어떻게 자본주의를 지속해야 하는가, <엔론>이 던지는 질문은 그것일 것이다.

글: 황선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una1@interpark.com)
사진: 플레이디비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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