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처럼 반짝이는 상상력으로 풀어낸 사랑 이야기, <별무리>

‘별처럼 무수히 많은 우리 사랑의 가능성’ 연극 <별무리>는 이 홍보문구 그대로 광막한 우주에서 펼쳐질 수 있는 무수한 사랑의 가능성을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바로 이 우주 외에도 무수히 많은 우주가 동시에 존재한다는 평행우주이론을 한 남녀의 연애에 대입해서 풀어낸 이 연극은 참신한 형식으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팔꿈치 핥아 봤어요?” 천체물리학을 공부하는 마리안이 양봉업자 롤란드에게 가볍게 말을 걸며 연극은 시작된다. 바비큐 파티에서 우연히 이뤄진 두 사람의 만남은 이 순간을 기점으로 무수한 갈래로 뻗어가기 시작한다. 엉뚱한 질문을 던지며 말을 건 마리안에게 롤란드는 “전 연애 중이거든요”라며 무심히 말을 끊지만, 잠깐의 암전 후 다시 불이 켜진 무대에서는 또 다른 상황이 전개된다.

“팔꿈치 핥아 봤어요?” 방금 전 마리안에게 조금도 관심을 보이지 않던 롤란드는 이번엔 좀 더 길게 그녀의 말을 들어준다. 이런 식으로 두 사람의 만남은 서로 다른 우주에서 조금씩 다르게 펼쳐지고, 첫 장면에서 마리안을 외면한 채 객석을 향해 서 있던 롤란드는 어느새 마리안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서서 그녀에게 호감 어린 미소를 짓는다.

이후에도 두 사람의 관계는 선택의 기로에서 매번 다른 갈래로 뻗어나가며 펼쳐진다. 당연히 <별무리>는 한 가지의 일관된 줄거리를 갖고 있지 않다. 그러나 동거를 하기도, 청혼을 했다가 거절당하기도, 바람을 피우기도, 병으로 죽음을 앞두기도 하는 그 무수한 가능성은 결국 하나로 수렴되는 것처럼 보인다. 마치 처음으로 돌아간 것처럼, 마지막 장면에서 롤란드는 쑥스러운 듯 망설이다 마리안에게 데이트를 신청한다. “만날 것들은 만나게 되리”라는 어느 노래 가사가 떠오르며 가슴이 뭉클해진다.


예술의전당이 국내에 처음 소개한 <별무리>는 닉 페인(Nick Payne)이 쓴 작품이다. <별무리>로 2012년 이브닝 스탠다드 어워드 최고 연극상과 제2회 헤롤드 핀터상을 수상한 그는 갓 서른을 넘긴 젊은 작가다. 그래서일까, “그녀는 진정한 파이터였습니다”와 같은 진부한 애도문구를 진저리 치게 싫어하는 젊은 세대의 섬세하고 톡톡 튀는 감수성이 작품 전체에 잘 묻어나 있다.

자갈로 둘러싸인 둥근 바닥과 몇 개의 조명으로 이루어진 단출한 무대는 마치 우주 한 가운데를 유영하고 있는 듯한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마리안 역의 주인영과 롤란드 역의 최광일은 암전이 될 때마다 조금씩 위치와 표정, 태도를 미세하게 바꿔 각기 다른 선택을 하면서 저마다의 우주를 살아가는 두 남녀를 노련하게 연기해냈다.

사랑에 관해 이야기하는 연극은 늘 차고 넘친다. 하지만 이처럼 따스하면서도 재치 있고 독창적인 작품을 만나기는 쉽지 않을 듯하다. 공연은 6월 1일까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볼 수 있다.

글: 박인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iapark@interpark.com)
사진: 플레이디비DB


[ⓒ플레이DB m.playdb.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