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유감'의 여전한 울림…서태지 컴백 콘서트 <크리스말로윈>

‘문화대통령’ 서태지가 돌아왔다. 지난 18일 서울 종합운동장 주경기장에서 열린 서태지 컴백 콘서트 <크리스말로윈>은 여전히 두터운 팬층을 거느린 그의 위상과 독보적인 음악세계를 다시금 확인할 수 있는 공연이었다.

애초 저녁 6시로 예정되어 있던 공연은 한 시간 늦게 시작됐다. 2009년 이후로 5년간 서태지를 만나보지 못한 팬들의 설렘과 기대감이 한껏 고조되었을 때쯤 서태지는 8집 수록곡 ‘모아이’를 부르며 등장했다. 관객들은 큰 환호로 그를 맞았고, 서태지는 이어서 9집 발표에 앞서 미리 공개한 ‘소격동’ ‘크리스말로윈’을 열창했다. ‘소격동’을 부를 때는 아이유가 함께 무대에 나와 선배 서태지와 함께 노래했는데, 두 사람의 미성이 생각보다 더 잘 조화를 이뤘다.

서태지는 ‘버뮤다 트라이앵글’까지 연이어 부른 후 팬들에게 “오랜만이죠”라고 인사를 건넸다. 만감이 교차하는 듯 잠시 공연장을 둘러본 후 그는 <응답하라 1994>에서 성시경이 리메이크했던 ‘너에게’를 오리지널 버전으로 불렀고, ‘널 지우려 해’도 들려줬다. 서태지 특유의 강렬하고도 감미로운 감성을 오랜만에 만끽할 수 있는 반가운 무대였다. 이어 서태지는 ‘나인틴스 아이콘’ ‘숲 속의 파이터’ 등 새로운 앨범에 수록된 신곡을 선보였다. 노래를 들려주며 스스로를 “한물간 가수”라고 말하거나 처음 접한 노래에 다소 미지근한 반응을 보이는 관객들에게 “생소해?”하고 묻는 모습이 새로웠다.

이어 그는 ‘시대유감’ ‘컴백 홈’ ‘하여가’ ‘교실이데아’ 등을 열창했고, 공연장에 모인 2만 5천여 명의 관객들은 제각기 1990년대 자신들의 청춘으로 돌아간 듯 열정적인 ‘떼창’으로 화답했다. ‘정직한 사람들의 시대는 갔어(시대유감)’ ‘보기 좋은 널 만들기 위해 우릴 대학이란 포장지로 멋지게 싸버리지(교실이데아)’ 등 신랄한 사회비판을 담은 가사는 발표된 지 20여년이 흐른 지금도 그때와 똑같은 울림을 줬다. ‘컴백 홈’ ‘교실 이데아’를 부를 때는 래퍼 스윙스와 바스코가 무대에 등장해 랩을 하며 무대에 열기를 더했다. ‘하여가’를 끝으로 무대 뒤로 사라진 서태지는 앵콜을 청하는 관객들의 요청에 다시 등장해 ‘테이크 파이브’를 부르며 콘서트를 마무리했다.


이날 공연장에서는 한껏 공들여 구상한 듯한 무대도 눈길을 끌었다. 할로윈 축제 때 쓰이는 호박 등 모양으로 만들어진 웅장한 무대는 팀 버튼 류의 잔혹동화를 연상케 했다. ‘크리스말로윈’을 부를 때는 공중에서 산타와 사슴들이 썰매를 타고 공연장을 가로지르기도 했다. 다만 일부 곡에서 너무 큰 전자음에 서태지의 목소리가 묻힌 것은 아쉬웠다.

공연 초반, “왜 다 남탕이야? 난 남자들 되게 싫어하는데”라는 서태지의 말에 객석에 있던 한 관객이 농담조로 응수했다. “안 그래도 서태지가 여자 좋아하는 거 이제 다 알아요!”라고. 이제 우리는 그가 뮤지션인 동시에 동년배의 여느 남자들과 다름 없는 가장이자 아버지라는 것을 알고 있다. 지금은 누구도 그를 베일에 싸인 신비한 존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의 신비주의가 사라진 지금도 서태지의 음악은 변함 없이 우리에게 큰 울림을 준다. 공연이 끝난 뒤에도 공연장을 떠나지 않은 채 한참이나 그의 이름을 연호하며 벅찬 표정으로 무대를 바라보던 관객들의 모습이 그것을 말해주었다.

글: 박인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iapark@interpark.com)
사진: 서태지컴퍼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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