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제대로 살아가는 지혜, <해롤드&모드>가 알려주는 것들

“이제 나가서 사랑해줘. 이 세상을.” 생의 마지막 순간 여든 살의 할머니가 열 아홉 살의 소년에게 유언을 남긴다. 소년은 그 말을 귀담아 들을 새도 없이 눈물을 흘리며 그녀에게 떠나지 말라고 애원한다. 얼굴에 주름이 자글자글한 이 할머니는 소년이 설레는 마음으로 약혼반지를 선물한 첫사랑이기 때문이다. 여든 살의 할머니는 어떻게 열 아홉 소년의 첫사랑이 되었을까.

연극 <해롤드&모드>에 등장하는 할머니 모드는 무척 매력적인 인물이다. 그녀는 자신이 쓰던 은식기를 선뜻 남에게 주기도 하고, 죽어가는 나무나 동물을 살리기 위해서라면 남의 트럭을 훔쳐 타는 것도 거리끼지 않는다. 네 것, 내 것을 가리는 소유의 개념 자체가 없는 것이다. 그녀에게 의미있는 것은 오직 살아있는 생명을 가꾸고 소중히 여기는 것, 매일매일 새로운 것을 경험하고 생을 온전히 누리는 것이다.

과거의 상처로 인해 “죽음을 즐기기로” 결심하고 하루하루 죽음을 향해 뒷걸음질치던 소년은 우연히 만난 이 엉뚱한 할머니를 보며 비로소 자기 안에서 꿈틀대는 생명력을 깨닫는다. 몸은 늙었어도 여전히 씩씩하게 삶을 향해 전진하는 모드의 모습이 소년의 마음을 흔든 것이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건 인간이 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거야.” ”사람은 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거야.” 등 모드가 해롤드에게 건네는 말들은 갓 돋아난 싹 위로 내리는 시원한 빗줄기와 같다. 그러니 어찌 그녀와 사랑에 빠지지 않을 수 있을까. 해롤드는 모드와의 결혼을 꿈꾸고, 황홀한 표정으로 그녀에게 키스한다. 그러나 이미 삶과 작별할 채비를 마친 모드는 따스한 미소로 화답하며 마지막 당부의 말을 전한다. 가서 삶과 세상을 사랑하라고.

이 아름다운 이야기는 원래 <19 그리고 80>이라는 제목으로 2003년부터 연극·뮤지컬 무대에 오르다 올해 원제목 그대로의 연극으로 다시 관객들을 찾았다. 모드 역의 박정자와 최근 드라마 <미생>을 통해 스타로 급부상한 강하늘이 호흡을 맞춘다는 소식에 개막 전부터 뜨거운 관심을 받은 바 있다.

지난 다섯 차례 공연에서 빠짐없이 모드를 연기해온 박정자는 속삭이는 대사를 할 때조차도 분명한 발성으로 귀를 잡아 끌었다. 52년간 쌓아온 연기 내공을 140여분간의 공연 내내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강하늘은 열 아홉 소년의 생기와 발랄함, 슬픔과 외로움을 부족함 없이 잘 표현해냈다. 여기에 멀티녀를 맡은 이화정 등이 코믹한 연기로 웃음을 자아냈고, 저물녘 호젓한 바닷가를 담은 영상과 파도소리, 잔잔한 음악은 작품의 메시지와 어울려 마음에 두터운 온기를 전했다. 삶에 대한 소중한 통찰을 담은 이 연극은 3월 1일까지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볼 수 있다.

글: 박인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iapark@interpark.com)
사진: 플레이디비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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