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을 껴안고 희망으로 나아가는 법, <달빛요정과 소녀>

연봉 1200만원을 벌지 못하면 음악을 그만두겠다던 남자가 있었다. 그는 음악으로 먹고 살기 위해 ‘가내수공업’으로 계속해서 앨범을 만들었고, 음원 수익을 사이버머니로 지급하는 기업을 향해 “주려면 좀 많이 주던가, 팔아서 고기반찬 해 먹게(도토리)”라고 일갈했다. 치킨배달을 하다 옛 여자친구를 마주치고는 “내 인생의 영토는 여기까지, 주공 1단지, 그대의 치킨런(치킨런)”이라며 자조 섞인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그 남자는 원맨밴드로 활약했던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본명 이진원, 이하 달빛요정)이다. 그는 돈이 안되면 그만두겠다던 음악을 끝까지 하다가 지난 2010년 38세의 나이에 뇌출혈로 숨을 거뒀다. 생전 대중적인 성공을 거두진 못했지만, 많은 이들이 삶의 애환을 진솔하게 노래했던 그를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뒤늦게 그의 노래를 접한 <슬픈 연극><바람난 삼대>의 민복기 연출이 달빛요정의 노래를 뮤지컬로 엮었다.

지난 20일 개막한 뮤지컬 <달빛요정과 소녀>에는 달빛요정(박훈)과 그의 노래를 소개하는 라디오 DJ캐준(박해준), 동시에 다른 공간에서 캐준의 방송을 듣고 있는 소녀(김소정)와 ‘SOS 생명의 전화’ 상담원 이은주(김소진)가 등장한다. 아파트 옥상에서 뛰어내리려던 소녀는 자살 직전 이은주와 통화를 하고, 두 사람의 절박한 외침과 생전 절망에 지지 않고 분투했던 달빛요정의 노래들이 교차되며 펼쳐진다. 그리고 소녀가 끝내 삶을 마감하려는 순간, 그녀의 눈앞에 달빛요정이 나타난다.


극단 차이무의 첫 번째 뮤지컬인 이 작품은 다소 거칠고 투박하다. 등장인물들은 위태롭게 기울어진 빌딩 벽면 위에서 서로 소통하는데, 각자의 이야기가 뒤섞이고 겹치다 보니 종종 몇몇 대사가 묻히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형식은 마치 무릎을 모으고 모여 앉아 라디오의 사연을 듣거나, 혹은 소극장에서 인디밴드의 라이브공연을 보는 듯한 색다른 정취를 준다.

여러 청취자들의 사연을 소개하는 라디오 DJ와 자살하려는 소녀, 생명의 전화 상담원을 등장시킨 설정도 주효했다. 관객들은 이들을 통해 그다지 잘나지 못해 괴로운, 0승 42패의 취업전력을 기록한, 자살한 가족들에 대한 아픈 기억을 품은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달빛요정이 그랬듯 처량하고 애달픈 삶의 모든 면면을 껴안아 “덤벼라 세상아(나의 노래)”라고 외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배우들은 그야말로 목청껏 노래하며 무대와 객석을 가득 메웠다. 특히 <유도소년> 연습과 병행하느라 고된 일정을 소화하고 있을 박훈은 몸을 사리지 않고 노래를 하는데, 실제 달빛요정과 목소리도 비슷해 원곡이 지닌 통쾌하면서도 따스한 감성을 잘 전달한다. 신예 김소정의 시원시원하고 허스키한 목소리도 매력적이다.

극중 길고 끝없는 터널을 지나던 소녀는 옥상 난간에서 발을 뗀 후 “한때야, 이제 얼마 남지 않았어. 아직 난 모든 걸 다 용서 못했지만 괜찮아. 그건 내가 이미 푸른 하늘의, 찬란히 빛나는 햇살의 아름다움을 알고 있기 때문이야(칩거)”라고 노래한다. <달빛요정과 소녀>는 이 아름다운 노래를 재조명함과 동시에 하루 평균 39명이 자살하는 우리 사회 곳곳에 숨겨진 아픔을 위로한다. 지독한 절망을 한 가득 외치고 토해내며 터뜨리는 방법으로. 공연은 2월 8일까지 충무아트홀 소극장 블루에서 볼 수 있다.

글: 박인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iapark@interpark.com)
사진: 차이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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