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또 한번 만나고 싶은 그녀들 <헤비메탈 걸스>

끄으윽, 거의 신음에 가까운 웃음소리가 객석 여기저기서 새어 나왔다. 낮에는 일, 저녁에는 회식, 16년간 같은 자리를 지키며 회사 밖 세상은 꿈도 꾸지 않았던 마흔 살 여자들이 난데없이 헤비메탈을 배우느라 목에 핏대를 세우는 모습이 말할 수 없이 우습다가도 다음 순간 짠한 감정이 몰려오고, 또 다음 순간에는 통쾌해진다. 지난 1일 막을 내린 연극 <헤비메탈 걸스> 이야기다.

<내 심장의 전성기>의 최원종이 작/연출한 <헤비메탈 걸스>는 2013년 초연 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2014 공연예술 창작산실 지원사업 우수작품' 재공연 지원에 선정돼 약 1년 반 만에 다시 관객들을 찾았다. 김동현, 김결, 최현숙 등 초연멤버 외에 김나미, 박지아, 이봉련이 새로 합류해 지난달 13일부터 보름간 공연을 선보였다.

이 연극의 주인공은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중소기업 식품개발부에 입사해 16년간 일해온 마흔 살 주영, 은주, 정민과 이름처럼 뭐든 뒤쳐지는 인생 탓에 뒤늦게 회사생활 8년차에 접어든 서른 여섯 살 부진이다. 회사에 몸담은 긴 세월 동안 임산부가 되기도, 기러기 엄마가 되기도, 노처녀가 되기도 한 이들은 회식 자리에서 여느 때처럼 몸바쳐 가무를 펼치다 믿기 힘든 소식을 듣는다. 인원감축 대상이 되었다는 소식이다.

이후 이들이 새로 부임할 사장님이 좋아한다는 헤비메탈을 배우기 위해 ‘승범웅기 음악학원’에 등록하면서부터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퇴직 이후의 삶을 상상할 수 없는 네 여성은 뱃속부터 분노를 끌어 모아 ‘퍽(Fuck)’을 외치라거나 동물처럼 걷다가 헤드뱅잉을 하라는 강사의 말에 열성적으로 따르고, 마흔 살 직장여성과 헤비메탈이라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을 법한 두 가지의 만남은 끊임없이 폭소를 자아낸다. 난생 처음 들어보는 헤비메탈을 익히기 위해 그토록 노력을 기울인 주인공들은 과연 인원감축 명단에서 제외될 수 있었을까?

그 결말은 지극히 현실적이라는 것만 이야기하도록 하겠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헤비메탈을 알게 된 그녀들에게 더 이상 ‘퇴사’라는 사건이 예전과 같은 절망과 당혹감을 가져다 주지는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나오지 않는 소리를 질러대기 위해 술을 마시고, 30분 마다 ‘퍽’을 내뱉던 그녀들은 어느새 불확실한 삶 앞에서 ‘올 테면 와봐라!’라고 외칠 수 있는 깡과 여유를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헤비메탈을 듣고부터 나를 좋아하게 됐어. 헤비메탈은 날 평가하지 않아.”라는 승범의 말처럼.

약 두 시간 동안 펼쳐진 연극은 후반부로 접어들면서부터 웃음기 빠진 진지한 분위기로 접어든다. 살짝 지루하기도 한 부분이다. 그러나 어딘지 달라진 네 여자의 모습과 또 다른 공간에서 자기만의 인생을 헤쳐나가는 승범, 웅기의 모습은 후반부에서도 여전히 질깃한 힘으로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관객들의 공감을 자아낸다.

이야기의 힘이 원체 크지만, 정민 역의 박지아, 은주 역의 최현숙, 주영 역의 김나미, 부진 역의 이봉련 등 배우들의 열연이 웃음을 더한 것도 물론이다. 특히 능청스러운 얼굴로 꼭 어딘가에 정말 존재할 것만 같은 무명의 록커를 연기한 김동현이 빛났다. 다음 기회에 이들을 또 한번 무대에서 만나볼 수 있길 바라본다.

글: 박인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iapark@interpark.com)
사진: 극단 명작옥수수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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