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감정 공식 - 아가씨와 건달들
작성일2005.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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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파 같은 배우 김장섭, 김선경
비가 갠 후 맞이하는 일요일 아침은 모든 것이 신비롭다. 잠이 덜 깨어 오늘 무엇을 해야 하나 생각해 보니 오후에 < 아가씨와 건달들 >을 보기로 한 것이 생각난다. ‘봐야지’ 하면서 못 보았던 작품을 보러 가는 것은 그 시작부터 설렘을 가지게 한다. 오후가 되어 팝콘홀로 향했다. 팝콘 홀에 도착하여 공연장에 들어 섰을 때 < 아가씨와 건달들 >은 이미 시작하고 있었다.
양편으로 더 늘린 무대와 규모 있게 짜여져 있는 세트들이 눈에 들어 온다. < 아가씨와 건달들 >을 본 게 어느 쩍이던가. 그 옛날 고리고리골짝에 보았던 뮤지컬 영화를 통해 본 기억이 있다. 그 후 민중, 대중, 광장의 합동공연으로 1983년에 시작해서 한국에 뮤지컬로 알려졌다. 국내에서도 최장기 공연 신기록을 수립했었던 < 아가씨와 건달들 >. 아직까지 나싼 역을 맡았던 프랭크 시나트라와 아들레이드 역을 맡은 비비안 블레인의 감칠맛 나는 연기와 노래가 인상 깊었었다. 주연 같은 조연 배우. 그들이 프랭크 시나트라와 비비안 블레인이었다. 물론 스카이 역을 맡았던 마론 브란도와 사라를 맡은 진 시몬스 또한 조연 같은 주연 배우로 우리의 심금을 울리기에 충분한 연기를 펼쳐 주었었다.
< 아가씨와 건달들 >은 고전에 속하는 작품이지만 옛스러움을 얼마나 잘 보여 주고 있는지 궁금한 게 사실이다. 복고풍. 왜 예전의 작품들을 다시 보고 싶을까? 그 이유는 나도 모르겠다. 나이가 들어 가면서 옛날 필름으로 보았던 작품을 무대에서 보게 된다는 또 다른 새로움일 것이다.
< 아가씨와 건달들 >은 ‘사랑’이라는 주제로 ‘사랑’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나싼은 나이크 클럽의 가수 아들레이드와 약혼한 사이지만 14년 이 지나도록 결혼을 하지 못하고 도박에만 몰두한다. 급기야 파산하기에 이른 나싼과 나싼만 사랑하는 귀엽고 앙증맞은 아들레이드. 지고지순한 사랑을 꿈꾸고 있는 구세군 아가씨 사라와 사라에게 내건 사랑의 도박에서 진실을 저버리지 않는 노름꾼 스카이. 이들의 모습에서 동화되어 가는 암흑가 보스 빅줄의 의리 등 각박한 세상살이에서 인생의 양면을 유머스럽게 조화시켜 인간미를 맛보게 한다. 한 편의 영화를 보듯이 흐르는 < 아가씨와 건달들 >은 변화가 빠른 무대장치, 화려한 춤과 음악으로 사람들을 매혹시키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나싼 역을 맡은 김장섭과 아들레이드의 김선경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아니 둘이 나오기만을 기다렸다고나 할까? 그렇다고 스카이 역을 맡은 김법래와 사라 역을 맡은 김소현이 잘 못하더라는 아니다. 김법래와 김소현의 애틋한 사랑 만들기는 정말 감동스럽기까지 하다. 김법래와 김소현이 보여주는 스카이와 사라의 사랑은 보는 관객들에게 찡한 사랑의 모습을 보여 주었고, 재치있고 위트있는 < 아가씨와 건달들 >을 보여주고 있었다.
다시 돌아와서 김장섭과 김선경을 이야기하자.
양파 같은 남자 김장섭. < 그리스 >, < 남자 넌센스 >, < Jesus Christ Superstar >, < 오페라의 유령 >, < The Play >, < 사랑은 비를 타고 >, <풀몬티 >, < 크레이지 포유> < 파우스트 >등에 출연하였고, 9회 뮤지컬대상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을 받기도 한 배우이다. 주연배우의 카리스마적인 모습을 보일 때에는 그에게 반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고, 여자역으로 때로는 게이의 역할을 맡았을 때에도 그의 특유의 사랑스러움과 애절함을 보여주어 많은 이들에게 박수를 받았었다. 그.런.데. 그랬던 그가 정신 하나 없고 14년 동안 약혼만 하고 사랑한다는 말만 하고 책임있는 행동을 보여주지 못하는 못난 남자의 역할을 한다. 아주 잘 한다. 그리고 어울리기까지 한다. 감초 같은 조연에 탁월한 면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혀를 내두를 정도의 푼수 같은 역할을 하며 종횡무진 무대를 뛰어 다닌다. 물론 상대역에 따라 다르겠지만 김선경과 호흡을 하나로. 여하튼 정말 재미있다. 온갖 폼은 다 잡는다. 한 마디 아무 의미 없이 내뱉는다. 관객들은 뒤집어진다. 극에서 나쁜 일을 하고 있다. 하지만 김장섭이라는 배우가 보여주는 못된 일에 귀엽기도 하고 애처롭기도 하고 여자의 모성애를 자극하고 있다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 없다. 변신의 변신을 거듭하는 김장섭. 그는 배우로서 양파 같은 배우이다. 절제되어 있는 그의 말솜씨와 애드립. 관객에게 여과 없이 소통하며 먹히고 있다.
양파 같은 여자 김선경. < 록키 호러쇼 >, <틱,틱..붐! >, <캬바레 >, < 갬블러 >, < 라이프 >, < 로마의 휴일 >, <시카고 >, < 킹앤아이>, < 몽유도원도 >, < 투맨 >, < 맘마미아 >, < 넌센스 잼브로 >, , 브로드웨이 42번가 >, < 크레이지 포 유 >등의 뮤지컬에 출연하였고, 8,9,10회 뮤지컬대상시상식에서 인기상을 받았다. 180도 변하는 여자인지는 익히 안다. 가정교사로, 백작부인으로, 수녀로, 마담으로, 김밥장사로, 공주로. 그녀는 끊임없이 변화하면서 그녀의 매력을 발산하고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또 다르다. 그녀의 변화가 어디까지일까 하는 의문부호가 붙을 정도로 아들레이드 역에 너무도 적합한 인물이었던 것이다. 역대 아들레이드 중 제일 적합한 아들레이드가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이다. 깜찍하다. 귀엽다. 안아주고 싶다. < 아가씨와 건달들 >에서 보여주는 그녀만의 매력을 한껏 발산하고 있었다. 진짜의 모습이 아닐까? 할 정도로 변신한 모습의 그녀. 한 남자만을 지독히 사랑하는 아들레이드. 헤어질 것도 생각 못하는 바보 같은 아들레이드. 그래서 사랑스러운 아들레이드를 그녀는 완벽하게 소화해 내고 있었다. 소신있는 아들레이드와 그녀는 많이 닮아 있었고, 맹하면서도 사랑할 수 밖에 없는 그녀가 서로 닮아 있었다. 14년을 기다리다 지치고 지쳐서 만성 독감에 걸려 버린 그녀. 언제나 배우이길 원하고 배우였던 그녀는 < 아가씨와 건달들 >에서 아들레이드로 다시 태어나 우리에게 재미를 주고 즐거움도 준다. 때로는 그녀가 측은하기도 하고 사랑의 마음을 보내고 싶을 때도 있게 하는 그녀의 모습은 이번에도 실망하지 못하게 하는 마력으로 무대를 주름잡고 있었다.
‘내 사랑 아들레이드’를 부르는 나싼과 ‘탄식의 노래’를 부르는 아들레이드. 아름다운 한 쌍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양파 같은 김장섭과 김선경을 다시 무대에서 만나러 공연 끝나기 전에 한 번 더 방문하리라 생각했다. 그 둘을 보면 즐겁다. 기운이 난다. 엔도르핀이 계속 생성되고 있다.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무언가가 가슴을 뜨겁고 뭉클하게 만든다. 그래서 나싼과 아들레이드를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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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준한 (인터파크 공연팀 allan@interpar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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