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비하인드' <차이메리카>에 대한 이야기다.
작성일2015.04.23
조회수7,845
고공 성장에 불안해진 경제 안정을 호소하고 민주주의를 외치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인 천안문 광장. 그곳을 진압하기 위해 진격하던 탱크 앞에 검은 봉지 두 개를 양 손에 쥔 사내가 선다. 당시 소련(현 러시아)의 최고 지도자였던 고르바초프의 방문으로 각국 취재진이 중국에 몰려온 상태. 뜻하지 않게 벌어진 천안문 사태에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상황에서 사내가 막아선 탱크는 앞으로 나아가지도, 뒤로 물러서지도 못한다. 이 모습을 목격한 사진 기자 조 스코필드도 빠르게 셔터를 눌러댔다.
<차이메리카>는 천안문 사태를 기록한 다양한 영상, 사진들 중 가장 유명한, 일명 '탱크맨' 사진으로부터 시작된다. 사진 속 남자는 누구이며, 사건 후 그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가 들고 있던 봉투 안에는 무엇이 들어있었을까를 궁금해하는 미국 사진 기자 조 스코필드의 탱크맨 추적 과정을, 작품은 따라가고 있다.
제목 '차이메리카'는 중국(차이나)과 미국(아메리카)의 합성어로, 중국과 미국이 상호 협력과 의존 관계를 통해 현재 세계에 막강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존재임을 가리키며 2007년 국제 경제 정책 학술지에 등장한 단어이다. 이를 공연명으로 했으니, 작품은 천안문 사태가 일어난 1989년부터 20여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중국의 눈부신 성장과정을 한 남자의 역사를 통해 밝히는 것이 아닐까, 추측하게 한다.
하지만 오히려 그 반대다. 호기심 뿐 아니라 언론인으로서의 성공에도 뜻을 더해 시작한 조 스코필드의 추적 과정에서 우리는 경제 성장을 위해 무참히 희생된 중국인들, 자본과 권력의 노예가 된 언론인들, 중국과 미국의 정치 헤게모니 싸움 등 '차이메리카'의 어두운 이면과 마주하게 된다.
특히 조 스코필드와 오랜 우정을 나누는 중국인 지식인 장린은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바로 관객들을 이끄는 핵심 견인차다. 뜨거운 교육열을 보이고 세계의 공장을 자처하며 경제 대국으로 솟아오르려는 중국의 실상이 곧 장린임과 동시에 그는 감시와 검열, 소외와 희생의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장린의 모습이 현재 우리나라의 면면들과 자연스럽게 오버랩되는 것 역시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작품은 이렇게 그늘진 모습을 드러내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자본주의 극치의 기업으로부터 돈을 받고 일하면서도 2011년 일어난 월스트리트 시위에 참가하는 심리 분석가 테사 켄드릭을 통해 작가는 일말의 희망을 남겨두고자 한다.
시공간을 폭넓고도 밀도 높게 아우르는 거대한 스케일의 작품이다. 작가 루시 커크우드는 7년 간의 준비 끝에 이 작품을 쓴 것으로 알려진다. 스쳐 지나가는 한 장면, 대사 한 마디에 시류와 관점들이 촘촘히 녹아 있어 집중을 잃지 않고 곱씹으면 관극의 묘미가 더욱 커진다. 지적인 작품이지만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비유와 블랙 유머들을 국내 관객들이 쉽게 느낄 수 없다는 건 아쉬운 지점이다. 다행히 작품은 2시간 40분의 러닝타임 동안 막힘 없는 빠른 전개로 관객들을 무대 위로 빨아들이고 있다.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이 넓게 활용되는 것도 새로운 모습이다. 웨스트엔드 공연에선 극중 시공간을 사각 회전 무대로 분리했지만 한국에서는 무대 위에 넓게 펼쳐내어 미국과 중국, 과거와 현재의 공간으로 구분해 전개한다. 공간 활용이 익숙해지기 전까지 극 초반 관객의 시선이 분산되고 집중력을 흐릴 수도 있겠다.
'예외'를 주제로 두산아트센터가 선보인 작품이나, 지금의 우리나라의 모습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 우리 역시 여전히 '예외'의 존재라는 것에 씁쓸한 여운이 제법 오래 간다. 공연은 오는 5월 16일까지.
글: 황선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una1@interpark.com)
사진: 플레이디비DB
<차이메리카>는 천안문 사태를 기록한 다양한 영상, 사진들 중 가장 유명한, 일명 '탱크맨' 사진으로부터 시작된다. 사진 속 남자는 누구이며, 사건 후 그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가 들고 있던 봉투 안에는 무엇이 들어있었을까를 궁금해하는 미국 사진 기자 조 스코필드의 탱크맨 추적 과정을, 작품은 따라가고 있다.
제목 '차이메리카'는 중국(차이나)과 미국(아메리카)의 합성어로, 중국과 미국이 상호 협력과 의존 관계를 통해 현재 세계에 막강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존재임을 가리키며 2007년 국제 경제 정책 학술지에 등장한 단어이다. 이를 공연명으로 했으니, 작품은 천안문 사태가 일어난 1989년부터 20여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중국의 눈부신 성장과정을 한 남자의 역사를 통해 밝히는 것이 아닐까, 추측하게 한다.
하지만 오히려 그 반대다. 호기심 뿐 아니라 언론인으로서의 성공에도 뜻을 더해 시작한 조 스코필드의 추적 과정에서 우리는 경제 성장을 위해 무참히 희생된 중국인들, 자본과 권력의 노예가 된 언론인들, 중국과 미국의 정치 헤게모니 싸움 등 '차이메리카'의 어두운 이면과 마주하게 된다.
특히 조 스코필드와 오랜 우정을 나누는 중국인 지식인 장린은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바로 관객들을 이끄는 핵심 견인차다. 뜨거운 교육열을 보이고 세계의 공장을 자처하며 경제 대국으로 솟아오르려는 중국의 실상이 곧 장린임과 동시에 그는 감시와 검열, 소외와 희생의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장린의 모습이 현재 우리나라의 면면들과 자연스럽게 오버랩되는 것 역시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작품은 이렇게 그늘진 모습을 드러내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자본주의 극치의 기업으로부터 돈을 받고 일하면서도 2011년 일어난 월스트리트 시위에 참가하는 심리 분석가 테사 켄드릭을 통해 작가는 일말의 희망을 남겨두고자 한다.
시공간을 폭넓고도 밀도 높게 아우르는 거대한 스케일의 작품이다. 작가 루시 커크우드는 7년 간의 준비 끝에 이 작품을 쓴 것으로 알려진다. 스쳐 지나가는 한 장면, 대사 한 마디에 시류와 관점들이 촘촘히 녹아 있어 집중을 잃지 않고 곱씹으면 관극의 묘미가 더욱 커진다. 지적인 작품이지만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비유와 블랙 유머들을 국내 관객들이 쉽게 느낄 수 없다는 건 아쉬운 지점이다. 다행히 작품은 2시간 40분의 러닝타임 동안 막힘 없는 빠른 전개로 관객들을 무대 위로 빨아들이고 있다.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이 넓게 활용되는 것도 새로운 모습이다. 웨스트엔드 공연에선 극중 시공간을 사각 회전 무대로 분리했지만 한국에서는 무대 위에 넓게 펼쳐내어 미국과 중국, 과거와 현재의 공간으로 구분해 전개한다. 공간 활용이 익숙해지기 전까지 극 초반 관객의 시선이 분산되고 집중력을 흐릴 수도 있겠다.
'예외'를 주제로 두산아트센터가 선보인 작품이나, 지금의 우리나라의 모습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 우리 역시 여전히 '예외'의 존재라는 것에 씁쓸한 여운이 제법 오래 간다. 공연은 오는 5월 16일까지.
글: 황선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una1@interpark.com)
사진: 플레이디비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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