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히 고통일 수밖에 없는 삶에 대하여, <프로즌>

연극 <프로즌(Frozen)>은 제목 그대로 차갑게 얼어붙은 마음을 가진, “어딘가 고장 난” 사람들의 이야기다. 지난 9일 국내 첫 무대에 올라 연일 매진을 이어가고 있는 이 연극은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한 남자와 그 피해자, 그리고 이들을 지켜보는 또 한 사람을 통해 죄와 용서, 고통에 대해 이야기한다.

<프로즌>은 극작가 브리오니 래버리의 대표작으로 1998년 영국 버밍엄 레퍼토리 씨어터에서 초연됐다. 한국에서는 극단 맨씨어터 제작, 김광보 연출의 참여로 올해 처음 관객들을 만났다.

무대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한 명의 남자와 두 명의 여자다. 남자 랄프는 연쇄살인범이자 소아성애자로, 어린 시절 아버지로부터 혹독한 학대를 받은 인물이다. 랄프가 죽인 소녀의 어머니 낸시는 딸이 살아있을 거라는 희망으로 20년에 가까운 긴 세월을 버티다 딸의 죽음을 알게 되고, 감옥에 있는 랄프를 직접 만나려 한다. 그 과정에서 낸시가 만난 아그네샤는 연쇄살인범들의 뇌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여성으로, 그녀 역시 자기만의 고통과 죄의식을 품고 있다.

세 남녀가 각기 지나온 과거를 보여주는 독백 장면으로 극은 시작된다. 낸시는 사라진 딸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에 또 다른 딸을 방치하다시피 하며 집착에 가까운 행동을 보이고, 무표정한 얼굴로 자신이 저지른 살인을 재연하는 랄프는 자신이 당한 폭력이 떠오를 때면 평정을 유지하지 못하고 발작을 일으킨다. 낸시 역의 우현주, 랄프로 분한 이석준의 연기는 지극히 억제된 듯 하면서도 금세라도 폭발할 듯한 아슬아슬한 에너지로 객석을 메우고, 자신의 상처를 감당하지 못해 타인에게 분노를 터뜨리는 이들의 모습은 삶에서 일어나는 고통과 폭력의 악순환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딸이 죽었다는 것을 알게 된 낸시가 정신과의사인 아그네샤를 찾아가 랄프를 만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하면서 세 남녀를 둘러싼 긴장감은 더욱 첨예해진다. 아그네샤는 낸시의 부탁을 거절하지만, 낸시는 기어코 랄프를 찾아가 그를 용서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낸시의 용서는 랄프에게 위안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그가 자신의 죄와 고통을 직시하게 만든다. 극한의 고통과 마주한 랄프가 내리는 마지막 선택은 여러 해석의 여지와 섬뜩함을 동시에 남긴다. 마음이 얼어붙은 사람들, 고통과 함께 살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소리 없이 치열한 각축전은 저마다의 삶 속에서 크고 작은 상처를 품을 수 밖에 없는 관객에게 묘한 위로를 전하기도 한다.

무대는 작은 식탁과 세 개의 의자, 그 뒤를 둘러싼 모빌 형태의 소품으로 구성돼 있다. 낸시의 딸이 갖고 놀던 인형과 장난감을 비롯한 여러 물건들이 형체를 정확히 알아볼 수 없도록 비닐에 쌓여 매달려 있는 모습은 시체, 암매장 등의 이미지를 연상시키며 둔중하고 서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 서늘한 기운과 대조를 이루며 무대를 넘칠 만큼 가득 채우는 것은 배우들의 열연이다. 지난 18일 공연에서는 낸시 역의 우현주, 아그네샤 역의 정수영, 그리고 박호산과 번갈아 랄프로 분하는 이석준이 연기를 펼쳤다. 집착과 광기, 치밀한 계산을 오가는 우현주도, 자신만의 지옥 속에 사는 연쇄살인범으로 분한 이석준도, 냉철한 모습 뒤에 혼란을 감춘 정수영도 더할 나위 없이 강한 존재감으로 객석을 압도했다.

당초 7월 5일 막을 내릴 예정이었던 <프로즌>의 제작사는 관객들의 호응에 부응해 연장공연을 결정했다. 7월 5일까지는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에서, 7월 10일부터 26일까지는 아트원씨어터 3관에서 공연을 볼 수 있다.

글: 박인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iapark@interpark.com)
사진: 드림컴퍼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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