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무대이기에 느낄 수 있는 감동, <아리랑>

뮤지컬 <아리랑>의 프리뷰공연 마지막 날이었던 지난 15일, 객석 여기저기에 코를 훌쩍이거나 눈물을 닦는 관객들이 보였다. 커튼콜에선 자리에서 일어난 관객들이 배우들과 함께 ‘아리랑’을 부르는 광경도 펼쳐졌다. 조정래 대하소설의 뮤지컬화, 50억의 제작비 등의 이슈로 개막 전부터 공연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아리랑>이 관객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은 셈이다.

장장 12권에 달하는 대하소설을 원작으로 탄생된 뮤지컬 <아리랑>은 한일합방 직전, 빚 때문에 단돈 20원을 받고 맏아들을 하와이로 떠나 보낸 감골댁 가족과 독립운동에 나선 양반 송수익 등의 이야기를 담았다. 1부에선 친일세력의 폭압으로 삶도 사랑도 무참히 짓이겨진 주인공들이 고향 땅을 뒤로 하고 만주로 떠나기까지의 과정이 그려진다. 원작에서는 30여년에 걸친 본격적인 항일투쟁이 막 펼쳐질 무렵, 서곡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2막에서는 먼 타국에서 관동군의 탄압에 쫓기면서도 끈질기게 투쟁을 이어가는 이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전북 김제에서 출발해 하와이와 만주, 일본과 러시아 등 드넓은 공간을 배경으로 500여명이 넘는 인물들이 등장하는 원작을 두 시간 반 가량의 뮤지컬로 각색하는 일은 매우 막막한 작업이었을 것이다. 그 부담감을 내려놓기가 가장 힘들었다는 고선웅 연출은 그러나 소설 <아리랑>을 고선웅 특유의 감칠맛이 살아 있는 뮤지컬로 무리 없이 재탄생시켰다. 압축과 재편성을 거친 이야기 속에는 일제의 탄압에 짓밟힌 우리 민족의 순수와 사랑, 일제의 비정과 폭력, 지난한 독립운동의 과정이 모두 담겼다.

프리뷰공연 초반에 다소 과하다는 지적을 받았던 LEC 스크린은 그새 강약을 조절했는지 튀는 부분 없이 극의 진행을 도왔다. 미선소에서 일하던 수국이 유린당하는 장면에서는 쌀가마니가 터지고 수국 꽃잎이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영상이 슬픔을 더했고, 모든 등장인물이 만주로 떠나는 1막 마지막 장면에서는 천장에서 내려오는 선로와 스크린에 휘날리는 눈발, 객석 한쪽 벽을 가르듯 질러오는 조명이 어우러져 고향을 등진 주인공들의 비통한 심정과 굳은 결의를 극대화했다.

극의 흐름이 빠른데다 담긴 이야기가 많아 일부 관객들에게는 다소 복잡하고 산만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이를 상쇄하는 것은 그 자체로 깊고 진한 정서를 담은 음악이다. 첫 곡 ‘진달래와 사랑’을 시작으로 ‘탁탁’ ‘어떻게든’ ‘풀이 눕는다’ 등 여러 곡이 공연이 끝난 뒤에도 오랜 여운을 남긴다. 이육사, 김수영의 시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넘버와 옥비 역을 맡은 국립창극단원 이소연이 선사하는 ‘사철가’등은 라이선스 뮤지컬에서는 결코 만날 수 없는 감동이다.

배우들은 누구 하나 기울지 않는 연기를 펼쳤다. 특히 머슴이라는 출신에 한을 품고 밀정이 된 양치성 역으로 분한 김우형의 존재감이 강렬했다. 탄탄한 기량의 배우들로 꾸려진 앙상블의 활약도 빼놓을 수 없다.

<아리랑>은 9월 5일까지 LG아트센터에서 이어진다.

글: 박인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iapark@interpark.com)
사진: 플레이디비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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