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아, 우리가 이 지경까지 왔구나’

끔찍했다. 오싹했다. 우리가 이 지경까지 왔구나. 부인할 수 없는 깨달음에 소름이 돋았다. 최근 우리가 사는 '지금'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작품이 많이 등장했지만, 무대 위 광경에 대한 객석의 파장이 아마도 가장 큰 작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연극 <게임>을 마주한 후다.

연극 <게임>은 <러브, 러브, 러브> <수탉들의 싸움_쿡> 등으로 국내 관객들과도 안면이 있는 영국 30대 중반 젊은 극작가 마이크 바틀렛의 2015년 신작이다.

다양한 사회적 이슈를 작품을 통해 비춰내고 있는 이 작가가 <게임>에서는 '하우스 푸어' 이야기를 한다. 치솟을 대로 치솟은 전세가, 저금리로 자가 매매를 유도하던 불과 몇 개월 전의 부동산 정책의 균열 등으로 현재 '내 집인데 내 집 아닌' '은행의 집'에 기약 없이 살거나, 혹은 월세 제하면 남는 것 없는 월급봉투에 좌절하는, 수많은 하우스 푸어들이 살고 있는 한국의 상황과도 딱 맞는다.

'럭셔리한 살 집'과 맞바꾼 '우리의 사생활'
극중 신혼부부인 애슐리와 칼리는 변변한 직장도, 살 집도 없다. 이때 등장한 달콤한 유혹. 엔터테인먼트 사업가가 제공하는 '력셔리한 집'에 살며 월급도 받을 수 있는 기회. 치열한 경쟁을 뚫고 그 기회를 잡은 이들은 마냥 즐겁다.

대신 이들은 집에서 사는 모습을 불특정 다수에게 전면 공개해야 한다. 실내 곳곳에 설치된 카메라는 부부의 사생활을 가감 없이 촬영하고, 돈을 내고 입장한 관광객들은 집 밖 모니터를 통해 부부가 사는 모습을 보다가 두 사람 중 한 명을 마취총으로 쏴 맞추는 '게임'을 즐긴다.


총을 맞아도 잠시 기절했다 다시 일어나니,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는 부부도, 아이를 갖고 싶지만 무작정 날아온 총알에 놀라 불임이 계속되자 점차 생각이 바뀐다. 아이를 위한 '관계의 그날'을 위해 남편은 자신들을 24시간 지켜보며 관광객에게 게임을 안내하는 가이드에게 '잠시라도 자신들을 보지 말아줄 것'을 부탁할 정도다. 그렇게 힘겹게 얻은 아이도 관광객들의 '과녁'에서 제외되진 않는다.

누군가의 삶이 돈 내고 볼 수 있는 '구경거리'로 전락해버렸다
현재 우리에게도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익숙하다. 물론 몰래카메라 형식은 아니지만, 누군가의 '집 안팎' 삶이 그대로 촬영되고, 사람들은 그 모습을 즐긴다. 노출과 관음이 이색적인 한 쌍이 되어 엔터테인먼트의 인기 장르로 자리했다. 누구에게 잘잘못을 묻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욕망을 제대로 건드린 이 관계에 '돈'과 '산업'이 자리하고 있음이 아찔할 뿐.

결국 이 작품은 '하우스 푸어'에서 시작되지만 '살기 위해 삶을 버린',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스스로 내던진 '디그니티 푸어'(dignity poor), 우리에 대한 반사경일지도 모르겠다. 인간과 동물이 다른 점은 양육강식의 논리로만 종족이 번식하지 않는다는 것일테다. 암전 때마다 등장하는 여우 사냥 광경은 그래서 더욱 지켜보기 괴롭다. 공연은 5월 15일까지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 111에서.

글: 황선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una1@interpark.com)
사진: 배경훈(Mr.Hodol@Mr-Hod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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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1

  • pym52** 2016.05.11

    흥미롭게 잘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