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엄마 김붙들,
아빠 이출식 그리고,
선호 그 녀석을 만나러 갑니다.

<눈먼 아비에게 길을 묻다>는 경주 시골마을에 사는 팔푼이 엄마 붙들이와 칠뜨기 아빠 출식이 그리고, 소아암에 걸린 아들 선호 가족의 이야기다.

이 공연의 줄거리는 이렇다.

소박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경주 강동면 유금4리, 소아암을 앓고 있는 12살의 선호는 모자라지만, 순박한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다. 같은 마을에 사는 큰아버지와 도시에 사는 이모가 선호네를 돌보지만 선호의 병은 계속 악화된다. 결국 그들은 선호를 포기하고 각자의 사정으로 뿔뿔이 떠나게 된다. 그러던 중, 선호와 어머니는 큰 수술을 받으러 시골에서 도시로 향하고, 고향에 남는 아버지는 어떤 결심을 하게 되는데...

<눈먼 아비에게 길을 묻다>는 웃음 뒤에 삶의 절박함과 비극이 뒤따르면서도 그 소박한 사랑으로 다시 감동을 주는 연극이다. 희극의 옷을 입힌 눈물 나는 이야기는 슬픔과 기쁨의 폭만큼이나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경주의 구수한 사투리와 국악인 정마리가 들려주는 독특한 음색의 소박하고 정겨운 우리 노래가 함께 어우러져 있다.
<눈먼 아비에게 길을 묻다>에 나오는 가족은 불행한 가족이다. 정신지체 아버지, 신체장애 어머니, 소아암을 앓는 아들 선호. 이들이 풀어놓는 남다른 가족애는 눈물겹다. 그래서 자칫 신파로 느껴질 수 있으나 연극은 관객들을 계속 울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 징글징글한 이야기들을 유쾌함과 폭소로 감싸면서 사이두기, 거리두기를 해서 이야기 자체에 메이지 않고, 그 이상의 울림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소리죽여 울다가도 관객들은 함께 박장대소를 한다. ‘붙들이’라는 우스꽝스런 엄마 이름의 유래를 아들에게 이야기하는 대목처럼 아픔을 토해내는 장면도 ‘삶’의 고단함을 잊은 천진함으로 마무리된다. 손수건을 준비해야겠지만 한바탕 배꼽잡고 웃을 각오도 단단히 해야 한다.

<눈먼 아비에게 길을 묻다>는 눈먼 아비라도 붙들고, 길을 물을 수 밖에 없는 한 가족의 안타까움과 절절함을 담고 있는 연극이다. 하지만 동시에 맹목적이고 바보스러운 희망을 역설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연극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마음을 겹겹이 닫아두었던 우리에게 삶의 밑바탕 진실들을 보게 한다. 피하고 싶었던 내 안의 설움, 추억, 아련하고도 뭉칙한 무언가가 한꺼번에 터져 나올 때 우리는 완벽한 공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희극의 옷을 입힌 비극적인 연극, 단순하고 명확한 이야기의 구조가 관객들에게 여백의 공간을 활용하게 만든다. 또한 향토적인 정서의 민요가 함께 한다. 녹음된 음악 보다는 민요와 구음 그리고 사설로 음향음악의 대부분을 대처한다. 등장하는 각각의 인물들은 지방색이 강하고 특이한 삶을 살고 있다. 이런 모든 것이 사실적인 인물을 그려내고 있다. 이 모든 것들이 어우러져 소박하고 정겨우며 여백을 가진 친근하면서 깊은 사색의 이야기가 있는 민화를 보는 느낌의 한 편의 드라마가 된다.

< 눈먼 아비에게 길을 묻다 >의 작, 연출을 맡은 손기호는
“아들놈이 4살이 되도록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간혹 자폐 같은 증세로 병원을 다닐 때, 한 방송 다큐멘터리 사연을 보면서 내가 이렇게 가슴 아파하는 내 자식놈은 과연 누구며 어디서 와서 왜 나랑 이런 인연이 되었을까 생각하게 되었죠. 늘 궁색한 변명처럼 들렸던 ‘냉중에 니도 자식 낳아서 키워봐라’라는 부모님의 말씀을 생각하면서 아비가 아비를 낳고 그 아비가 또 아비를 낳는, 끊임없이 이어오는 핏줄, 나와 내 피붙이 속에 있는 뭔가를 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하나 있는 아들 개가 불알을 먹어서 잃어버리고 실성했다는 어릴 때 들은 붙들이 이야기와 그 다큐멘터리가 모티브가 되어 아비에게 아비로 끊임없이 이어오는 핏줄, 그 속에 숨어 있는 생명의 근원에 질문을 하기 시작했죠.” <눈먼 아비에게 길을 묻다>는 이렇게 탄생하여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는 작품으로 거듭나게 된다.

<눈먼 아비에게 길을 묻다>의 배경 경주시 강동면 유금 4리 마을 주민을 소개한다.

아빠 이출식
“호야.. 밥 묵자.. 소,손톱 깍자… 니 업어줄까? 음… 그라면 니 바 발톱 깍자…”

아빠 이출식은 늘 배경처럼 서 있고 말을 어쩌다 하려면 말을 더듬는다. 어릴적 사고로 정신지체를 갖고 있다. 하지만 술을 한 잔 마시고 명한 눈길로 허공을 주시할 때에는 누군가에 대한 강렬한 그리움이 묻어 있다. 아들 선호에게 하는 말이 밥 묵자, 손톱 깍자, 업어줄까 라는 말이 거의 전부다. 못나고, 아둔한 몸짓으로 아들에게 자신의 마음을 표현한다.

엄마 김붙들
“니가 와 죽노..!!! 또 어떤 대가리 소 똥도 안 벗겨진 것들이 그래 쳐 죽기노… 이 망할 놈에 새끼를 오늘 확 다 잡아뿌까!”

엄마 김붙들은 무식하고, 몸 불편하고, 걸진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지독스럽게 사나운 팔자를 떠들어대지만 동네 대소사에 안 빠지는 소식통이다. 죽은 딸의 사진을 감춰두고 몰래 볼 때는 아빠 눈치를 보지만 세상의 눈치라고 모르는 엄마다.

아들 김선호
12살 선호는 항암(소아암) 치료로 늘 모자를 쓰고 있다. 머리카락은 없지만 이모가 사준 헤어스프레이를 엄마가 에프킬라인줄 알고 다 써버리자 울음을 터뜨리는 천진난만한 아이다. 부모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으며 착하다. 가족을 도와주는 이모와 주위 어른들에게 감사함을 아는 의젓함을 가졌다.



강동초등학교 5학년 2반 선호의 일기
2005년 4월 15일(금) 날씨 : 비 오다가 맑음

나는 오늘 변비 때문에 똥구멍 파임을 당했다. 울 엄마가 동네 소문 낼까봐 가슴이 콩닥콩닥 한다. 아빠가 매일 먹는 막걸리를 몰래 먹어봤다. 우엑… 아빠는 오늘도 내 손톱을 깍는다. 솔직히 귀찮다. 이장님은 동네 마이커만 들면 국회의원 이야길 한다. 친한가 보다. 우리 아빠 이름은 이출식. 큰 아빠는 이상식. 식자가 똑같다. 내 이름은 이선호, 누나는 이선향, 큰집 형은 이선욱. 선자가 똑같다. 근데 울 엄마는 그런게 없다. 그냥 김붙들이다. 대영이가 맨날 놀린다. 선생님이 이 사실을 알았으면 좋겠다. 나는 축구선수가 꿈이다. CF도 찍고 외국도 갈 것이다. 가을이 되면 하늘나라에 간 누나가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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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준한(인터파크 공연팀 allan@interpar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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