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한 후에 - 행진! 와이키키 브라더스 중에서

사랑한 후에

‘사랑한 후에’라는 곡을 접했었던 기억이 언제였던가? 그 당시에는 번안된 곡으로 들국화 해체 이후 전인권이 독집앨범을 내었을 때 들어가 있던 곡 중에 하나였다. 전인권 1집 파랑새 중 네 번째 곡 ‘사랑한 후에’.

[행진! 와이키키 브라더스]에서는 방송국 오디션을 보던 중에 강수가 쓰러지게 되고 오디션은 엉망이 되어 버렸다. 기회를 놓치게 된 ‘와이키키 브라더스’ 드러머인 강수는 팀을 떠나게 된다.
비가 내리고 우산을 쓴 사람들이 거리를 걷는다. 그 사이에 강수가 보이고, 강수는 우산도 없이 커다란 가방 하나 들고 행인들 사이를 뚫고 무대 중앙으로 나온다. 일정한 패턴의 우산 쓴 사람들의 움직임 그리고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떠나는 강수의 처진 어깨가 대비되어 움직인다. 강수가 노래를 시작할 때면 비는 그치고 서쪽 하늘이 빨갛게 물든다. 기적 소리는 들려오고 강수가 떠날 때가 되었다는 듯 발길을 재촉한다.

긴 하루 지나고 언덕 저 편에
빨간 석양이 물들어 가면
놀던 아이들은 아무 걱정 없이
집으로 하나 둘씩 돌아가는데
나는 왜 여기 서 있나
저 석양은 나를 깨우고
밤이 내 앞에 다시 다가 오는데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리더인 성우는 강수의 소식을 접하고 강수에게 뛰어간다. 차마 잡지 못하는 성우에게 강수는 이별을 말하고, 성우는 안타까움에 강수의 손에 돈을 쥐어 준다. 강수는 역 쪽으로 뛰어가고 기적 소리가 한 번 더 울린다. 성우는 강수를 잡지 못하는 안타까움에 노래 한다.

이젠 잊어야만 하는 내 아픈 기억이
별이 되어 반짝이며 나를 흔드네
저기 철길 위를 달리는 기차의
커다란 울음으로도 달랠 수 없어
나는 왜 여기 서 있나
오늘 밤엔 수많은 별이 기억들이
내 앞에 다시 춤을 추는데

가사들이 가슴에 절절히 내리친다. 내게는 아름답던 기억이 있다. 그리 아름답다고까지 할 기억이라고는 생각하지는 않지만 아픈 기억과 아름답던 기억이 동시에 공존할 수 있다는 것이 새로울 뿐이다. 89년 전인권의 1집 ‘파랑새’가 나올 때에는 군대에 있을 때였다. 군에서 상병 말년에 있었던 일이다. 유격훈련 중 발목 부상으로 장기간 군 병원에서 다섯 차례의 수술과 치료를 할 때였다. 두 번째 수술 이후 휠체어를 타고 움직일 만 할 때 군 병원에서 민간인이 운영하던 작은 도서관이 있었다. 그 도서관에서는 환자들을 위해 책을 대여해 주기도 하고 영화 상영도 했었다. 작은 도서관의 실장님이었던 여자 분이 계셨는데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게 되어 친하게 지내는 사이가 되었던 기억이 있다. 때로는 동생같이 아들같이 대하여 주시던 실장님께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았던 것이 ‘전인권 1집’이었다. 이 앨범을 들을 수 있었던 군 병원의 유일한 장소는 시청각실이 아니면 실장님 방이었다. 실장님 방에서 인생에 대한 이야기와 신앙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언제나 듣던 앨범이었기 때문에 전인권 1집 앨범은 거의 외우다시피 하게 되었던 것이다.

병 치료 중이어서 아팠던 기억으로 남아 있는 군 생활과 그 와중에도 정신적으로 많은 도움을 주셨던 실장님의 모습을 떠올릴 때면 참 아름다웠던 순간이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그래서인지 이 곡을 듣게 되면 서러움에 복받쳐 끌어 올리는 눈물이 아닌 괜시리 눈물 짓게 되는 상황을 자주 연출해 내곤 한다. 아름다웠던 기억을 떠올리지만 자상하셨던 실장님을 뵐 수 없다는 것이 마음 한 편에 또 다른 아픔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겠다 싶다.

그래서 이 노래는 내게 개인적으로 아프고도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아 있다. 마음 속 한 켠을 차지했던 그리움들이 하나 둘씩 숫자도 셀 수 없이 뽑아져 나오게 된다.
[행진!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보는 다른 사람들도 이 노래에 담겨져 있는 사연이 어떤 것인지는 몰라도 1년 동안의 긴 기억들을 주마등처럼 지나가게 해주고 있는 것을 보면 사랑한 후에라는 곡은 시간을 초월하여 생각의 저편에 있던 신기루와 같은 존재를 펼쳐 내는 마력을 지니고 있는 것 같다. [행진! 와이키키 브라더스]에서는 이 곡 말고도 ‘세상만사’, ‘행진’, ‘불놀이야’ 등 귀에 익은 곡들이 많다. 송골매에 미쳐 있었을 나이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가슴 한 켠에 아픈 기억과 즐거웠던 기억을 떠올리며 가슴 한 편이 아련하게도 느낄 수 있기도 할 것이고, 꿈 많았던 시절들을 떠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추억을 가지고 싶다면 [행진!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좋은 무대라고 할 수 있다. 극장을 나서며 그리움과 벅찬 느낌을 고이 접어 다시 추억의 한 페이지를 만들어 놓았다. 이제 기억의 파편들을 한 곳으로 모았으니 자주 들춰 볼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지지 않았나 생각한다.

난 아직도 강수의 뒷모습을 잊을 수 없다. 그 뒷모습에서 잊혀졌던 기억들을 한꺼번에 다 찾아 버렸기 때문에 잊을 수 없나 보다. 비 오는 플랫폼과 친구를 잡지 못하고 떠나 보내는 성우의 애절함이 그대로 담겨져 있다. 그 노래가 ‘사랑한 후에’이다.

사랑한 후에 - 전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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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준한 (엔터테인먼트부문 공연사업부 allan@interpar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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