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아를 보내주오" 그녀의 '아디오스'를 장식할 음악

어느 하나 흠잡을 데 없는 '클린'한 테크닉 뿐 아니라, 김연아의 무대가 다른 이들의 무대와 비교 불가능한 수준으로 꼽히는 또 한 가지 이유는 예술적으로도 높은 완성도를 자랑하는 프로그램의 안무와 음악 때문일 것이다. 가늘고 긴 팔과 다리, 풍부한 표정을 지닌 얼굴 등 태생적으로 기품 있고 우아한 그녀의 몸짓은 드라마틱하고도 매력 넘치는 음악과 만나 피겨 스케이트를 한 편의 뮤직드라마로 만들어 낸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해 12월 '골든 스핀 오브 자그레브'에서 처음 공개된 이후 폭발적인 관심과 사랑을 받는 두 음악 '샌드 인 더 클라운스'(Send in the Clowns) '아디오스 노니노'(Adios Nonino)는 현역 마지막으로 은반 위에 서는 김연아와 그녀를 지켜보는 우리의 마음과 닮아 더욱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그간 지원도, 훈련도 쉽지 않았던 여건 속에서 피나는 자기 관리와 연습을 통해 피겨 여왕으로 우뚝 선 김연아. 이제 우리의 몫은 '금메달'이 아닌 '아름다운 마지막 무대를 준비하는 한 사람'인 그녀와 그 무대를 바라봐 주는 것이다. '아디오스 김연아', 이제 우리는 선수 김연아를 보내주고 새로운 인생으로 그녀를 보내주어야 한다.

2014년 2월 20일 0시부터 쇼트프로그램
"어릿광대를 보내주오" (Send in the Clowns)

한 마리의 나비가 빙판 위를 부드럽게 유영하다 영롱한 날갯짓을 하는 듯한 모습이 연상되는 이번 시즌 김연아의 쇼트프로그램은 뮤지컬 <어 리틀 나잇 뮤직>(A Little Night Music)의 삽입곡 '샌드 인 더 클라운스'(Send in the Clowns)와 함께 한다.

<스위니 토드> <컴퍼니> <인투 더 우즈> <어쌔신> 등 수많은 공연의 작곡, 작사 작업을 통해 뮤지컬 뿐 아니라 문화계 전반에 신선하고도 놀라운 영감을 선사한 스티븐 손드하임은 84세인 올해에도 왕성한 활동을 펼치며 여전히 '가장 혁신적이고 뛰어난 예술가'로 존경받고 있다. 1973년 브로드웨이 마제스틱 극장에서 초연된 뮤지컬 <어 리틀 나잇 뮤직> 역시 전세계의 사랑을 받고 있는 그의 대표작 중 하나.

잉그마르 베르만 감독의 영화 <한 여름 밤의 미소>(Smile of a Summer Night)에서 영감을 받아 휴 휠러가 극작하고 스티븐 손드하임이 작곡한 <어 리틀 나잇 뮤직>은 20세기 초 스웨덴의 한 여름날을 배경으로, 18세의 어린 신부 앤과 결혼한 성공한 중년 변호사 프레드릭, 그의 옛 연인인 유명 여배우 데저래, 데저래의 현재 연인 말콤 백작과 프레드릭이 첫 번째 아내와 낳은 아들 핸릭 등 세 커플의 엇갈린 사랑이 흥미롭고도 달콤하게 펼쳐진다.


2009년 브로드웨이 리바이벌 공연된 <어 리틀 나잇 뮤직>에서
여배우 데저래 역을 소화해 이듬해 토니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캐서린 제타 존스

초연 당시 토니어워즈와 드라마데스크어워즈 최고 뮤지컬, 작사작곡, 극본, 여우주연, 여우조연상 등을 석권한 이 작품은 이후 영화, 오페라로 만들어졌으며 뮤지컬 리바이벌 공연도 이어졌는데, 특히 2009년 브로드웨이 리바이벌 공연은 <캣츠> <레미제라블> 등의 오리지널 연출가인 트래버 넌이 연출을 맡았으며 헐리우스 스타 캐서린 제타존스가 여배우 데저래로, 뮤지컬 <스위니 토드>의 파이집 여주인으로도 유명한 안젤라 랜스베리가 그녀의 엄마로 분해 폭발적인 흥행을 이끌기도 했다.

2막에 등장하는 '샌드 인 더 클라운스'에서는 젊은 아내와 결혼한 옛 연인 프레드릭을 그리워 하는 데저래의 처연한 모습을 만날 수 있다. 15년 전 프레드릭의 청혼을 거절한 데저래는 자신이 그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음을 깨닫고 그에게 손을 내밀었으나 아내가 있는 프레드릭은 이를 거절한다. 홀로 침대에 남겨진 데저래는 과거 자신의 선택에 후회하지만 모두 부질없음을 깨닫는다.

배우인 데저래의 직업에 빗대여 여러 상징을 띈 가사가 특히 인상적이다. '광대'는 공연의 막 사이나 돌발 상황에 무대 위에 등장해 관객들의 관심을 끄는 존재로, 사랑하는 이와 맺어질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어찌할 도리가 없이 '어서 광대를 불러줘요'라며 자조하는 데저래의 대사가 더욱 가슴 저리게 다가온다. 그러나 너무 슬퍼 마시길, 데저래와 프레드릭 뿐 아니라 <어 리틀 나잇 뮤직>의 남녀들은 결국 진실한 사랑의 결실을 맺게 되나니.


2014년 2월 21일 0시부터 프리스케이팅
"안녕, 노니노" (Adios Nonino)

김연아가 4분 10초 내외로 펼칠 프리스케이팅 프로그램의 배경음악은 탱고음악의 거장이자 혁신으로 불리는 아스트로 피아졸라의 '아디오스 노니노'(Adios Nonino)이다

우리말로 '안녕, 노니노'라는 뜻의 '아디오스 노니노'는 피아졸라가 1959년 서른 여덟 살이 되던 해 자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슬픔에 가득차 한 시간 만에 만든 음악이다. '노니노'는 그의 아버지 비센테 피아졸라를 부르는 가족들의 애칭으로 어머니 아순타 마네티를 '노니나'라 불렀다고 한다.

아버지 사망 당시 피아졸라를 지켜봤던 그의 부인이 "한숨 소리는 끔찍했다. 그가 그렇게 우는 건 처음 봤고, 사실 우는 것 자체를 처음 보았다"고 증언할 정도로 아버지는 피아졸라의 일생을 관통하는 커다란 존재였다. 여덟 살 난 피아졸라에게 반도네온을 사주며 그를 음악의 길로 이끌었던 사람이 바로 아버지였던 것.

오른쪽에 38개, 왼쪽에 33개의 단추 모양의 건반이 있고 그 사이 주름 상자를 조절하며 건반을 눌러 소리를 내는 반도네온은 아르헨티나 탱고를 대표하는 악기이다. 어렸을 때 "그저 노인네의 기분을 맞추기 위해 연주하는 척 했다"고 회고할 정도로 탱고보다는 클래식 음악이나 재즈에 더 관심이 많았던 피아졸라는 10대 초반 클럽 연주를 시작하며 급속도로 탱고의 매력으로 빠져든다.


반도네온과 함께 있는 아스트로 피아졸라

특히 그는 기존의 탱고 문법을 답습하는 것을 강하게 거부하며 자유로운 편곡, 미묘한 음색 변화, 엇박자 도입 등을 통해 새로운 탱고, '아방가르드 탱고'를 선보이며 탱고의 혁신을 불러일으킨 것으로 유명하며, 실제로 탱고의 질을 높임과 동시에 끊임없이 더 많은 대중들과 탱고를 나눌 수 있는 방법을 모색했다.

그의 이러한 활동은 어린 시절 다양한 문화가 공존한 뉴욕에서 생활한 것에 더하여 아버지의 영향이 크다. 선천적으로 오른쪽 다리가 뒤틀려 여러 차례 수술을 받았던 피아졸라에게 그의 아버지는 언제나 "대단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고 전해진다. "아버지는 금지된 것을 모두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결함이 있는 외로운 사람이 아니라 앞장서서 나가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는 피아졸라의 기억 속 아버지는, 자유분방한 상상력과 비범함을 지닌 뮤지션으로서 피아졸라가 성장하는데 밑바탕이 되었을 것이다.

탱고 애호가들을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으며 불후의 명곡이라 불리는 '아디오스 노니노'는 피아졸라 스스로도 으뜸의 곡으로 꼽았다. 생전에 그는 "아마도 나는 천사들에 둘러싸였던 것 같다. 나는 최고의 곡을 작곡할 수 있었고 앞으로도 이보다 더 잘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아마 못할 것 같다"고 밝혀 이 곡에 대한 남다른 애착을 숨기지 않았다.

글: 황선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una1@interpark.com)



[ⓒ플레이DB m.playdb.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