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의 힘을 믿다, 마크 로스코

미국 워싱턴국립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던 마크 로스코 그림 50점이 지난달 23일부터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전시되고 있다. 그에게는 세계에서 작품이 가장 비싼 화가, 추상 표현주의 거장, 스티브 잡스가 사랑한 화가 등 화려한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또한 공연을 즐겨보는 관객들이라면 그의 작업실을 배경으로 한 연극 <레드>의 실제 주인공으로 마크 로스코를 기억할 것이다. 캔버스 한가득 색으로 채운 마크 로스코의 작품과 평생 예술혼을 불살랐던 그의 삶을 살펴보자.

유대인 가정에 태어나···21살에 미술 공부 시작

본명 마르쿠스 로트코비치 (Marcus Rothkowitz). 1903년 러시아 드빈스크의 유대인 가정에서 네 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마크 로스코는 1913년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떠난다. 하지만 그의 어린 시절은 갑작스런 아버지의 죽음으로 어렵게 시작된다. 모든 가족들이 생활 전선으로 뛰어 들었고, 로스코 또한 학교 수업을 마치면 신문을 돌리곤 했다.

영어를 한 마디도 못했던 유대인 소년 마르쿠스 로트코비치는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 내는 무기로 공부를 택했다. 그는 월반을 거듭하여 19살에 미국 아이비리그에 속하는 예일 대학교에 장학생으로 합격하지만 장학금이 취소되어 2년 만에 학업을 그만둔다. 당시 그의 전공은 미술이 아닌 인문학이었고, 대학 초기 그의 꿈은 엔지니어나 변호사였다.

대학을 중퇴한 후 마크 로스코는 자신이 몸담아야 할 곳을 찾아 헤맸다. 고향으로 돌아가 지역 극단에서 연극에 잠깐 몸을 담기도 했으며, 학교에서 가까웠던 뉴욕으로 건너가 도시에 넘쳐나던 예술적 분위기에 젖어 지내기도 했다. 정치·사회·경제·예술의 도시 뉴욕에서 그는 자유로움을 맛보다가 친구를 만나러 우연히 방문한 뉴욕의 아트스튜던츠리그라는 미술학원에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미술계에 입문한 초창기, 마크 로스코는 니체 철학과 그리스 신화와 비극에 심취했고,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미술을 가르치기도 했다. 이후 그는 화가로서 자신만의 스타일을 찾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이어가다 마흔이 넘어 특유의 색으로만 가득한 자신만의 그림을 완성하게 된다. 마크 로스코는 1960년대 후반부터 연극 <레드>의 배경이 되는 시그램 빌딩 레스토랑 벽화 사건, 하버드 대학교 벽화, 로스코 채플 벽화 등 공공미술의 형태인 벽화 작업에 몰두했다. 하지만 그는 작품의 가격이 치솟고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떨치던 1970년 뉴욕의 작업실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왼쪽) Untitled/1949년/캔버스에 오일
ⓒ 1998 Kate Rothko Prizel and Christopher Rothko / ARS, NY / SACK, Seoul

마크 로스코의 마지막 작품
(오른쪽) Untitled/1970년/캔버스에 아크릴
ⓒ 1998 Kate Rothko Prizel and Christopher Rothko / ARS, NY / SACK, Seoul

보는 이를 끌어당기는 불가사의한 힘
노랑·빨강·보라·검정 등의 색채로 사각형 캔버스를 가득 채운 마크 로스코의 그림은 언뜻 보기에는 단순하고 심심해 보이지만 그의 작품을 보는 관람자들은 보는 이를 삼켜버릴 듯한 거대한 사이즈와 색채에서 나오는 단순하지만 강렬한 힘에 이끌려 마음을 연다. 실제로 마크 로스코의 작품 앞에서 감동받아 눈물을 흘리는 관람객들도 많다.

이런 단순함의 미학에 스티브 잡스도 빠져들었다. 애플의 창시자 스티브 잡스는 죽기 전 마지막 해에 마크 로스코에 관한 책을 꼼꼼히 읽으며 그의 작품에 매료되었다. 미래의 애플 직원들에게 영감을 줄 방법을 찾기 위해서다. 애플 아이폰이 사각 안에 과거와 현재, 미래, 동서양 등 모든 것이 펼쳐지는 것처럼, 마크 로스코의 그림 또한 사각으로 구성된 그림 안에 수많은 이야기와 수많은 시공간이 함축되어 있다.


로스코 채플 내부

마크 로스코의 영혼이 담긴 공간. 로스코 채플

미국 텍사스 휴스턴에는 2001년 내셔널지오그래픽사가 세계에서 가장 평화로운 장소로 선정한 로스코 채플이 있다. 팔각형 구조의 벽돌 건물에 들어서면 벽면을 가득 메운 검은 그림들이 시선을 압도하는 로스코 채플은 1971년 석유재벌 출신 자선사업가인 존 드 메닐 부부가 자신의 로망인 예배당을 건립하기 위해 당시 뉴욕에서 제일 잘 나가는 마크 로스코에게 그림을 의뢰해서 탄생한 곳이다. 원래는 로마 가톨릭 예배당으로 설계됐던 건물이지만 마크 로스코가 방문객들이 자신의 그림을 보며 명상할 수 있는 공간이 되길 원해 종파를 초월한 모두를 위한 공간으로 탄생되었다.

“나는 색채나 형태에는 관심이 없다. 내 관심은 오로지 비극, 황홀경, 파멸 등 인간의 기본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다. 내 그림 앞에서 우는 사람은 내가 그것을 그릴 때 가진 것과 똑같은 종교적 경험을 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생전에 마크 로스코가 말한 바 있다. 관람객들이 작품과 진정한 교감하기 바랬던 마크 로스코는 그의 그림을 통해 지금도 여전히 우리에게 말을 건네고 있다.

글: 강진이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jini21@interpark.com)
사진: 코바나컨텐츠 제공, 로스코 채플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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