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캐릭터가 알려주는 ‘위기탈출 넘버원’
작성일2015.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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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잡아떼고 안되면 ‘감동’으로 사죄하라 <유도소년>
연극 <유도소년>의 주인공 경찬과 유도부 후배들이 교장선생님이 아끼는 강아지 ‘봉구’를 먹다 들켰을 때 첫 번째로 시도한 것은 다지선다형 대처법, 즉 아무거나 써보고 안 되면 다른 방법을 쓰는 ‘막가파식’ 대처다. 경찬과 후배들은 들통 옆에 놓인 강아지 목줄을 가리키며 “이거 우리 봉구 껀데?”라 묻는 교장에게 “아닌데, 아닌데요.”하며 손사래를 치다가 그 말이 먹히지 않자 “같이 드셔놓고 왜 그래요.”라며 물타기 작전을 쓰고, “그까짓 똥개가 우리보다 더 중하대요?”라며 감정에 호소하다 급기야는 “어쩔거여~!”하는 교장의 절규에 “어쩌긴 어쩐대요~”하며 뻔뻔히 응수한다. 또 한가지 이들이 발휘한 것은 유도로 단련한 민첩성과 순발력이다. 이들은 방망이를 휘두르며 무지막지하게 달려드는 교장을 피해 ‘위아래’의 EXID를 뺨칠 만큼 유연하게 허리를 돌리고, 앞구르기와 뒤구르기 등의 테크닉을 시전하며 응징을 피한다. 이리하여 경찬과 후배들은 무사히 사태를 벗어났다…면 애초에 <유도소년>의 이야기는 시작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앞서 언급한 방법으로 교장의 불 같은 화를 잠재우지 못한 경찬과 후배들은 최후의 방법으로 사태를 돌파한다. 바로 상대방을 감동시켜 마음을 돌리는 것. 경찬과 후배들은 교장의 용서를 얻기 위해 함께 전국체전에 출전하고, 비록 메달은 따지 못했어도 혼신을 다한 경기를 펼쳐 주위 사람들을 감동시킨다. 고로 <유도소년>의 경찬이 정치인들에게 알려주는 최후의 문제해결책은 ‘진심을 담은 노력으로 사람들을 감동시키라’는 것이다. 물론 먼저 당사자에게 그럴 의지가 있어야겠지만.

판타지의 세계로 달아나라 <쓰루더도어>
써지지 않는 소설, 바쁘기만 한 남편 때문에 괴로워하는 <쓰루더도어>의 주인공 샬롯. 그녀가 이 난관을 헤쳐나가는 방법은 바로 (하필이면 절묘한 순간 마법처럼 펼쳐진) 다용도실 너머의 환상세계로 달아나는 것이다. 이 곳에는 남편과는 정반대로 자상하고 사려 깊은 꽃미남 왕자님이 있는 데다, 급할 때는 화장실 핑계를 대고 얼른 집으로 돌아와버리면 되니 이보다 더 편리한 도피처는 없다. 현실과 환상을 오가는 이중생활에 죄책감이 들 때는 “소설 위한 과정일 뿐”이라며 자기합리화를 하면 된다. 단, 이 때 주의해야 할 점은 뒤를 밟히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안 그러면 샬롯의 남편 레니처럼 누군가 다용도실 문을 슬쩍 열고 당신의 뒤를 쫓아올 수 있으니 말이다. 충분히 조심했음에도 불구하고 누군가 기어코 쫓아와 잘못을 추궁한다면 샬롯처럼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내가 원한 건 무얼까.”라며 더할 나위 없이 괴롭고 미안한 표정으로 선수를 쳐서 상대의 말문을 막으면 된다. 보다 결정적인 조건은 집에 마법의 도피처가 있어야 한다는 것인데, 얼마 전 모 회장이 자신이 다니는 교회 책장 뒤에 밀실을 마련해두었다는 것이 밝혀진 것을 보면 이미 곳곳에서 <쓰루더도어>가 펼쳐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안 되면 어디 외딴 곳에 컨테이너라도 마련하자.
끝까지 뻔뻔하게 밀고 나가라 <경숙이, 경숙아버지>
“전쟁 끝날 때까지는 각자 알아서 살아 남는 기다. 알긋제?” 생사가 오가는 전쟁통에도 처자식을 저버리고 제 살길만 궁리하는 <경숙이, 경숙아버지>의 아버지가 자식의 원망에 맞서는 방법은 “나한텐 꿈이 있다!”며 끝까지 자신의 주장을 밀고 나가는 것이다. 그는 엄연히 처자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눈에 반한 여인을 집으로 당당히 데려올 만큼의 막강한 추진력과 뻔뻔함으로 주위 사람들을 아연케 하며 자신의 꿈을 착착 펼쳐나간다. 최근 정치판에서 중요시되는 ‘프레임 선점’의 선구자라 아니할 수 없다. 단, 이 때 중요한 것은 “꺽꺽이 아제가 아배였음 좋겠다.”며 아버지의 존재를 부정하는 딸에게 상처받지 않을 정도의 강심장과 온갖 ‘진상짓’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니 아배는 니 아밴기라.”라며 끝까지 자신을 두둔해주는 자기 편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 한 가지, 경숙아버지처럼 제 살길만 궁리하다 말년이 외로울까 걱정되는 사람이라면 참고할 만한 팁이 있다. 바로 ‘조촐한 선물로 상대방의 연민을 자아내기’인데, 경숙아버지는 딸의 졸업식에 찾아가 건넨 신발로 그간의 행동을 만회할 수 있었다.

서로 다른 증언으로 사태를 교란해라 <나생문>
한 가지 사건, 그리고 네 가지 증언. 의혹에 휘말린 사람에게 <나생문>이 알려주는 대처법은 바로 갖가지 다른 증언으로 사태를 교란하는 것이다. 나생문 앞에서 벌어진 괴이한 살인사건에 연루된 이 연극의 등장인물들은 서로 전혀 다른 말로 사건을 설명하며 보는 이를 혼란스럽게 만든다. 특이할 점은 이들이 남에게 죄를 덮어씌우는 것이 아니라 저마다 자신이 잘못했다고 말한다는 것이다. 유력한 용의자인 산적은 자신이 죽은 피해자의 부인을 겁탈했다고 고백하고, 그 부인은 자신이 남편을 죽였다고 말하며, 죽은 사무라이는 무당의 입을 빌려 자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주장한다. 무조건 죄가 없다면 의심이라도 해볼 텐데 “어차피 죽은 목숨, 이 마당에 무슨 거짓인들 소용 있겠소.”라며 모든 것을 다 내려놓은 듯한 모습을 보이거나 “난 어떡하죠.”하며 참회의 눈물을 지으니 이쯤 되면 듣는 사람도 아리송해질 수 밖에 없다. 최소 세 네 명의 증인을 확보해야 하기는 하지만, 잘만 하면 진실을 안개 속으로 몰아넣은 채 유유히 빠져나갈 수 있는 방법이다.
사건을 드라마틱하게 떠벌려 스타가 되라 <시카고>
<시카고>의 록시는 경숙아버지를 능가하는 패기와 당당함을 자랑하는 인물이다. 살인을 저지르고 감옥에 들어온 그녀는 죄를 뉘우치기는커녕 정부를 총으로 쏴 죽인 일을 드라마틱하게 포장해 매스컴의 주목을 받는 유명인사가 된다. 비록 변호사 빌리의 도움을 받긴 했지만, 언론의 플래시 세례에도 당황하지 않고 “싸인도 연습했지.” 또는 “우리 모두가 서로를 사랑해요. 이게 바로 쇼비즈니스라는 거에요!”라는 말로 준비된 스타성을 드러내는 그녀다. 게다가 불리할 때는 ‘멍청한 정비공’이라 비웃던 남편에게 도움을 청하고, 기자들의 관심이 다른 쪽으로 쏠리자 뱃속에 아기가 있다는 말로 다시 주목을 받는 것을 보면 록시는 분명 국면전환의 귀재다.
사실 첨예한 논쟁거리를 활용해 끊임없이 화제를 일으켜 세인의 관심을 끄는 것은 정치인들이 종종 쓰는 방법이다. 다만 이 때 중요한 것은 평소 ‘아군’관리를 잘 해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시카고>의 변호사 빌리가 그랬듯 내 편인 줄 알았던 사람이 돌연 뒤통수를 칠지도 모른다.
내면의 또 다른 자아에게 덮어씌워라 <지킬앤하이드>
<지킬앤하이드>에서 배울 수 있는 위기 돌파의 방법은 어느 방법보다도 더 섬세한 연기력을 요구한다. 그 방법은 바로 내면의 또 다른 자아가 한 짓이라며 의혹을 떠넘기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1977년 소위 ‘다중인격’이라 불리는 ‘해리성 정체감 장애’를 이유로 살인 및 강도행각을 벌인 용의자가 무죄 판결을 받은 사례가 있으며, 한국 형법도 제10조에서 ‘심신장애로 인하여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 없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없는 자의 행위는 벌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니 잘만 하면 법적으로도 깔끔하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다.
다만 심리전문가로부터 심신장애를 진단받아야 하는 만큼, 그 과정이 결코 녹록하지만은 않다. 위 사례의 주인공은 고등학교 중퇴자임에도 불구하고 인격에 따라 수개 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며 전문가 수준의 수학, 물리학, 의학 지식을 뽐내 해리성 정체감 장애를 인정받았다고 하다. 그 정도는 아니라도 “넌 절대 날 죽여 없앨 수 없어. 날마다 넌 나를 숭배해 / 맹세코 결단코 그렇지 않아. 난 너를 경멸해 저주해”라 절규하는 지킬과 하이드에 버금가는 분열 양상을 보여야 주위의 의심을 사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하긴 선거 전후로 급격히 달라지는 몇몇 정치인들의 행태를 보면 그들은 이미 타고난 연기자, 타고난 ‘지킬앤하이드’인지도.
글: 박인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iapark@interpark.com)
사진: 플레이디비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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