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행주역 <암살>&<아리랑>] ② 암살 VS 아리랑 캐릭터 대전

'난세가 영웅을 만든다'는 말이 있다. 정치, 경제, 문화 등 모든 면에서 격변의 바람이 몰아쳤던 일제강점기 한반도에는 목숨을 바쳐 항일투쟁에 나섰던 걸출한 인물들이 무수히 나타났다 사라졌고, 그들의 기막힌 삶과 운명은 그간 수많은 소설과 영화, 드라마에서 다뤄져 왔다. 당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 <암살>과 뮤지컬 <아리랑>에도 우열을 가리기 힘들만큼 강렬한 카리스마와 매력, 개성을 갖춘 인물들이 등장한다. 서로 닮은 듯 하면서도 제각기 다른 매력을 지닌 이 캐릭터들을 만나보자.


비중은 크지 않지만, 영화 <암살>에서 조승우가 연기한 의열단 단원 김원봉은 안옥윤 일행의 암살 작전을 배후에서 지시하는 중요인물이다. 김원봉은 실제로 김구와 함께 당대 해외 독립투사들의 무장투쟁을 이끌었던 인물로, 조승우는 영화에서 짧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묵직한 존재감으로 강한 인상을 남긴다. <아리랑>의 주인공인 송수익은 <암살>의 김원봉 못지 않은 카리스마와 지도력을 가진 캐릭터로, 죽산면 일대에 살았던 독립군을 이끌고 만주로 건너가 항일투쟁을 진두지휘한다. 두 사람 모두 겉으로는 어떤 상황에서도 냉정과 침착을 잃지 않는 카리스마 넘치는 지도자이지만, 독립운동과정에서 수없이 죽어나간 투사들을 떠올리며 “잊혀지겠죠. 미안합니다…”라고 애도하거나(김원봉) 옥중에서 사랑하는 여인을 떠올리며 눈물짓는(송수익) 모습은 그 안에 감춰둔 깊은 속정을 짐작하게 한다.


이청천 한군독립군 제3지대 저격수인 안옥윤은 친일파인 자신의 아버지를 죽여야 하는 비극적인 운명에도 불구하고 독립운동을 향한 굳은 의지를 굽히지 않는 여성이다. 목표물을 정확히 조준해 먼 거리에서도 암살 대상을 저격하는 솜씨나 해방을 기다리며 고난의 세월을 버텨온 고향사람들을 기억하는 따스한 마음은 그녀를 멋진 히로인으로 만들기에 부족함이 없다. <아리랑>의 방수국은 비록 안옥윤과 같은 사격능력은 없지만, 아름답고 다정한 모습 뒤에 죽은 어머니의 원수를 갚기 위해 칼을 들고 나서는 결기를 지녔다는 데서 안옥윤 못지 않게 매력적인 여성캐릭터다.


태생도 성격도 다르지만, 여주인공을 가장 가까이에서 보호하는 듬직한 남성미로 매력대결에 나선 인물들이다. 속을 알 수 없는 청부살인업자 하와이피스톨은 상해의 한 커피숍에서 우연히 만난 안옥윤의 목에 스카프를 둘러주고 헤어진 후 염석진으로부터 그녀를 죽여달라는 의뢰를 받는다. 삼백 불만 주면 아무나 죽여준다는 무시무시한 소문의 주인공이었던 그는 안옥윤을 쫓으며 알게 된 그녀의 비극적인 운명에 묘한 동질감을 느끼고, 그녀를 일본군인들로부터 보호하며 겉으론 차갑지만 내 여자에겐 따뜻한 ‘츤데레’의 매력을 십분 발산한다. <아리랑>의 첫 장면에서부터 순박한 얼굴로 “나는 수국이 사랑허제”라고 노래하던 차득보 역시 순결을 유린당한 수국의 곁을 떠나지 않고 그녀를 위해 복수를 감행하며 보는 이로 하여금 애잔한 마음을 불러일으킨다.



날카로운 눈빛과 날렵한 몸, ‘어쩔 때는 선비 같고 어쩔 때는 깡패 같은’ 묘한 존재감을 가진 <암살>의 염석진은 한때 친일파 기업인 강인국의 암살작전을 최전방에서 수행하던 독립군이었으나, 지금은 독립군 행세를 하면서 뒤로는 일본군에게 정보를 팔아 넘기는 밀정이다. <아리랑>의 양치성 역시 만주까지 송수익을 따라가 방물장사를 하면서 독립군을 추적하는 일제의 앞잡이다. 이들은 자신의 앞길을 방해하는 사람이라면 수년간 알고 지냈던 이웃이나 동료들까지도 서슴없이 죽이는 잔혹성에 있어서도 서로 뒤지지 않는 캐릭터다. 그러나 모진 고문 끝에 일본 경찰 앞에 무릎을 꿇는 염석진의 모습과 자신의 비천한 출생을 저주하는 양치성의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분노와 함께 묘한 측은지심을 느끼게 한다.


글 : 박인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iapark@interpark.com)
사진: 플레이디비DB, 신시컴퍼니, 쇼박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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