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의 전유물도 아닌 웨스트엔드
작성일2014.08.12
조회수10,802
요즘 런던에서 핫한 작품 하나를 꼽으라면 ‘영 빅 극장 (Young Vic)’의 연극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들 수 있겠다. 하지만 이렇게 인기 있는 작품의 문제는 늘 그렇듯 이미 전석 매진이라는 것. 당신이 신문에서 전문가 평점과 리뷰를 보고 예매를 시도해봤자 이미 티켓은 발 빠른 공연 마니아들의 손에 다 들어가 있다는 거다.
넋 놓고 있던 필자 역시 예매 기회를 놓치고 말았고, 데이 시트(Day Seat : 공연 당일에 현장에서 저렴하게 판매하는 소량의 좌석) 전쟁에 뛰어들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던 중, 동네 영화관에서 <NT Live :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상영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NT Live: 최신 인기 공연작을 전 세계 영화관에서
NT Live(National Theatre Live)란 영국 국립극장이 더 많은 관객을 만나겠다는 목적으로 시작한 프로젝트로, 무대 위 공연을 영화관 스크린에 위성으로 전달하여 상영하는 것을 말한다. 2009년 6월 헬렌 미렌 주연의 <페드르 (Phedre)>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약 스무 작품이 NT Live를 통해 영국 뿐이 아닌 전세계 500여 개 스크린에서 선보였다. 영국 국립극장에서 주관하는 프로젝트이기 때문에 국립극장 작품이 주가 되지만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의 경우처럼 외부 극장의 작품을 상영하기도 한다. NT Live라는 이름이 말해주듯 ‘실시간’ 상영을 원칙으로 하고 있으나 ‘앙코르’라는 말이 붙은 경우는 녹화분을 상영하는 것을 말한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의 NT LIve 포스터
비단 매진된 작품을 손쉽게 볼 수 있다는 점에서만 NT Live의 효용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다. 문화 시설이 대도시에 집중되어 있는 것은 영국도 예외는 아니어서, 런던의 경우 모든 공연작을 관람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 할 정도인 반면, 공연장 수가 적은 소도시에서는 선택의 폭이 좁을 수 밖에 없다. 전국 투어를 하는 작품도 있긴 하지만 런던에서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둔 일부 작품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다. 물론 원한다면 런던의 극장까지 찾아갈 수는 있다지만 안 그래도 교통비, 숙박비가 비싼 나라에서 그렇게 내키는 대로 시간과 비용을 투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 것인가. 바로 이 부분에서 NT Live의 진짜 가치가 빛난다. 국립극장 최고의 공연이 단지 런던에 거주하는 일부 공연팬들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것, 지방 영화관에서도 단돈 15파운드에 (약 2만 6천원) 웨스트엔드 최신 화제작을 볼 수 있다는 것 말이다.
하지만 공연 예술을 스크린으로 상영하는 것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배우와 관객이 같은 공간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것을 ‘공연물 (theatre)’이라고 볼 수 없다는 입장인 것. 하지만 직접 NT Live를 관람한 관객의 반응은 매우 긍정적이다. 티켓이 저렴할수록 시야에 방해를 받는 공연장 좌석과는 달리 NT Live의 경우 배우의 미세한 표정까지 볼 수 있기 때문에 오히려 작품에 더 몰입할 수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NT Live와 같은 ‘스크린 속 공연물’ 자체를 독립적인 영역으로 인정해줘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앞으로도 스크린으로 관객을 만나려는 영국 공연계의 노력은 계속 될 전망이다. 이미 ‘로열 오페라 하우스’의 오페라와 발레가 정기적으로 영화관에서 상영되고 있으며 로열 셰익스피어 컴퍼니와 셰익스피어 글로브 극장도 작년부터 각각 '라이브 프롬 스트랫포드 어폰 에이븐'(Live From Stratford-Upon-Avon)과 '글로브 온 스크린(Globe on Screen)'이라는 이름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또한 올해에는 에든버러 페스티벌 프린지 중 일부 작품이 영화관에서 상영된다고 해서 눈길을 끌었다. 여기에 웨스트엔드 뮤지컬로는 이례적으로 <빌리 엘리어트>가 오는 9월 28일에 영화관 상영을 앞두고 있다.
무대 앞에서 모든 관객은 평등하다
더 많은 관객에게 다가가려는 영국 극장들의 노력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영국이 장애인을 위한 인프라가 비교적 잘 마련되어 있는 나라라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지만, 그래도 ‘청각 장애를 가진 사람이 뮤지컬을 관람한다’고 하면 의아하게 생각할 사람이 많을 듯 하다. 하지만 정말 영국에서라면 청각 장애인도 공연을 관람할 수 있다! 바로 공연장에 장애인을 위한 보조 장치가 잘 정착되어 있는 덕분인데, 현재 가장 보편화된 시스템으로는 ‘자막 공연(Captioned Performance)’을 들 수 있다. 배우의 대사를 LED 스크린에 동시에 띄우는 것으로, 청각 장애인 뿐 아니라 난청이 있는 어르신 관객,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외국인 관객에게도 환영 받고 있다.
<오즈의 마법사> 자막 공연
(사진: The Wizard of Oz, The Lowry. Photo: Ben Blackall)
작품별로 기본 1회씩은 자막 공연을 편성하는 것이 일반적일 정도로 자막 공연은 이미 영국 공연계에 상당히 널리 정착되어 있다. 또한, 자막보다는 덜 보편적이지만 수화 통역사가 무대 한 켠에서 직접 대사를 전달해주는 ‘수화 공연 (Sign Language Interpreted Performance)’도 종종 찾아볼 수 있다. 수화 공연은 문자를 읽지 못하거나 자막보다 수화를 선호하는 청각 장애인에게 도움이 되는데, 런던에서는 <워 호스>,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등 약 스물 다섯 편의 작품이 올 여름 시즌에 수화로 공연되었다.
그렇다면 시각 장애인의 경우는 어떨까? 마찬가지로 많은 극장에서 ‘음성 서술 공연 (Audio-Described Performance)’을 최소 작품당 1회씩 편성하고 있다. 음성 서술이란, 작품을 이해하는 데에 꼭 필요한 시각적 정보를 개인 헤드폰을 통해 대사 사이사이에 전달해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인물의 생김새, 옷차림, 움직임, 표정에서부터 무대 디자인 등이 시각적인 정보에 포함된다.
몇몇 공연장은 음성 서술 공연 전에 시각 장애인 관객의 이해를 돕기 위해 ‘터치투어 (Touch Tour)’라는 것을 진행하기도 하는데, 터치 투어를 통해 무대 곳곳을 손으로 만져보며 무대 디자인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 영국 국립극장, 알메이다 극장, 올드빅, 셰익스피어 글로브 등의 공연장에서 정기적으로 터치투어를 시행하고 있다.
알마에다 극장의 '터치 투어' (사진: Robin Fisher)
한편 <라이온 킹> <마틸다> <워 호스>등의 작품과 몇몇 어린이 전용 극장의 경우 자폐증이 있거나 지적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편한 분위기에서 공연을 관람할 수 있도록 하는 '릴렉스 공연 (Relaxed Performance)'을 기획하기도 한다. 릴렉스 공연 중에는 긴 시간 집중이 어려운 장애 아동이 자리에서 벗어나 돌아다니거나 시끄럽게 하더라 도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에 남의 눈치를 전혀 보지 않고 공연을 관람 할 수 있다. 또한 자폐 아동이 조명과 큰 소리에 민감하다는 점을 감안해 평소보다 음향은 낮추고 현란한 조명은 배제하는 등의 세심한 노력도 기울인다. 덕분에 평소에 공연 관람을 하기 어려웠던 장애어린이의 부모들에게 릴랙스 공연은 엄청난 호응을 얻고 있다.
넋 놓고 있던 필자 역시 예매 기회를 놓치고 말았고, 데이 시트(Day Seat : 공연 당일에 현장에서 저렴하게 판매하는 소량의 좌석) 전쟁에 뛰어들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던 중, 동네 영화관에서 <NT Live :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NT Live: 최신 인기 공연작을 전 세계 영화관에서
NT Live(National Theatre Live)란 영국 국립극장이 더 많은 관객을 만나겠다는 목적으로 시작한 프로젝트로, 무대 위 공연을 영화관 스크린에 위성으로 전달하여 상영하는 것을 말한다. 2009년 6월 헬렌 미렌 주연의 <페드르 (Phedre)>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약 스무 작품이 NT Live를 통해 영국 뿐이 아닌 전세계 500여 개 스크린에서 선보였다. 영국 국립극장에서 주관하는 프로젝트이기 때문에 국립극장 작품이 주가 되지만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의 경우처럼 외부 극장의 작품을 상영하기도 한다. NT Live라는 이름이 말해주듯 ‘실시간’ 상영을 원칙으로 하고 있으나 ‘앙코르’라는 말이 붙은 경우는 녹화분을 상영하는 것을 말한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의 NT LIve 포스터
비단 매진된 작품을 손쉽게 볼 수 있다는 점에서만 NT Live의 효용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다. 문화 시설이 대도시에 집중되어 있는 것은 영국도 예외는 아니어서, 런던의 경우 모든 공연작을 관람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 할 정도인 반면, 공연장 수가 적은 소도시에서는 선택의 폭이 좁을 수 밖에 없다. 전국 투어를 하는 작품도 있긴 하지만 런던에서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둔 일부 작품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다. 물론 원한다면 런던의 극장까지 찾아갈 수는 있다지만 안 그래도 교통비, 숙박비가 비싼 나라에서 그렇게 내키는 대로 시간과 비용을 투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 것인가. 바로 이 부분에서 NT Live의 진짜 가치가 빛난다. 국립극장 최고의 공연이 단지 런던에 거주하는 일부 공연팬들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것, 지방 영화관에서도 단돈 15파운드에 (약 2만 6천원) 웨스트엔드 최신 화제작을 볼 수 있다는 것 말이다.
하지만 공연 예술을 스크린으로 상영하는 것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배우와 관객이 같은 공간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것을 ‘공연물 (theatre)’이라고 볼 수 없다는 입장인 것. 하지만 직접 NT Live를 관람한 관객의 반응은 매우 긍정적이다. 티켓이 저렴할수록 시야에 방해를 받는 공연장 좌석과는 달리 NT Live의 경우 배우의 미세한 표정까지 볼 수 있기 때문에 오히려 작품에 더 몰입할 수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NT Live와 같은 ‘스크린 속 공연물’ 자체를 독립적인 영역으로 인정해줘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앞으로도 스크린으로 관객을 만나려는 영국 공연계의 노력은 계속 될 전망이다. 이미 ‘로열 오페라 하우스’의 오페라와 발레가 정기적으로 영화관에서 상영되고 있으며 로열 셰익스피어 컴퍼니와 셰익스피어 글로브 극장도 작년부터 각각 '라이브 프롬 스트랫포드 어폰 에이븐'(Live From Stratford-Upon-Avon)과 '글로브 온 스크린(Globe on Screen)'이라는 이름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또한 올해에는 에든버러 페스티벌 프린지 중 일부 작품이 영화관에서 상영된다고 해서 눈길을 끌었다. 여기에 웨스트엔드 뮤지컬로는 이례적으로 <빌리 엘리어트>가 오는 9월 28일에 영화관 상영을 앞두고 있다.
<빌리 엘리어트 라이브> 트레일러
무대 앞에서 모든 관객은 평등하다
더 많은 관객에게 다가가려는 영국 극장들의 노력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영국이 장애인을 위한 인프라가 비교적 잘 마련되어 있는 나라라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지만, 그래도 ‘청각 장애를 가진 사람이 뮤지컬을 관람한다’고 하면 의아하게 생각할 사람이 많을 듯 하다. 하지만 정말 영국에서라면 청각 장애인도 공연을 관람할 수 있다! 바로 공연장에 장애인을 위한 보조 장치가 잘 정착되어 있는 덕분인데, 현재 가장 보편화된 시스템으로는 ‘자막 공연(Captioned Performance)’을 들 수 있다. 배우의 대사를 LED 스크린에 동시에 띄우는 것으로, 청각 장애인 뿐 아니라 난청이 있는 어르신 관객,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외국인 관객에게도 환영 받고 있다.
<오즈의 마법사> 자막 공연
(사진: The Wizard of Oz, The Lowry. Photo: Ben Blackall)
작품별로 기본 1회씩은 자막 공연을 편성하는 것이 일반적일 정도로 자막 공연은 이미 영국 공연계에 상당히 널리 정착되어 있다. 또한, 자막보다는 덜 보편적이지만 수화 통역사가 무대 한 켠에서 직접 대사를 전달해주는 ‘수화 공연 (Sign Language Interpreted Performance)’도 종종 찾아볼 수 있다. 수화 공연은 문자를 읽지 못하거나 자막보다 수화를 선호하는 청각 장애인에게 도움이 되는데, 런던에서는 <워 호스>,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등 약 스물 다섯 편의 작품이 올 여름 시즌에 수화로 공연되었다.
그렇다면 시각 장애인의 경우는 어떨까? 마찬가지로 많은 극장에서 ‘음성 서술 공연 (Audio-Described Performance)’을 최소 작품당 1회씩 편성하고 있다. 음성 서술이란, 작품을 이해하는 데에 꼭 필요한 시각적 정보를 개인 헤드폰을 통해 대사 사이사이에 전달해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인물의 생김새, 옷차림, 움직임, 표정에서부터 무대 디자인 등이 시각적인 정보에 포함된다.
몇몇 공연장은 음성 서술 공연 전에 시각 장애인 관객의 이해를 돕기 위해 ‘터치투어 (Touch Tour)’라는 것을 진행하기도 하는데, 터치 투어를 통해 무대 곳곳을 손으로 만져보며 무대 디자인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 영국 국립극장, 알메이다 극장, 올드빅, 셰익스피어 글로브 등의 공연장에서 정기적으로 터치투어를 시행하고 있다.
알마에다 극장의 '터치 투어' (사진: Robin Fisher)
한편 <라이온 킹> <마틸다> <워 호스>등의 작품과 몇몇 어린이 전용 극장의 경우 자폐증이 있거나 지적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편한 분위기에서 공연을 관람할 수 있도록 하는 '릴렉스 공연 (Relaxed Performance)'을 기획하기도 한다. 릴렉스 공연 중에는 긴 시간 집중이 어려운 장애 아동이 자리에서 벗어나 돌아다니거나 시끄럽게 하더라 도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에 남의 눈치를 전혀 보지 않고 공연을 관람 할 수 있다. 또한 자폐 아동이 조명과 큰 소리에 민감하다는 점을 감안해 평소보다 음향은 낮추고 현란한 조명은 배제하는 등의 세심한 노력도 기울인다. 덕분에 평소에 공연 관람을 하기 어려웠던 장애어린이의 부모들에게 릴랙스 공연은 엄청난 호응을 얻고 있다.
영국 국립극장 (www.nationaltheatre.org.uk/discover/backstage-tours)
매년 영국 최고의 작품이 만들어지는 국립극장의 이모저모를 둘러볼 수 있는 백스테이지 투어(£8.50), 의상 제작 과정을 볼 수 있는 코스튬 투어 (£12.50)가 있다.
셰익스피어 글로브 (www.shakespearesglobe.com/exhibition)
야외 극장의 특성상 4월 중순부터 10월 중순까지만 공연이 열리기 때문에 가을, 겨울에 런던을 방문하는 경우 ‘전시&투어’(£13.50)를 이용하면 글로브 극장을 구경할 수 있다.
로열 오페라 하우스 (www.roh.org.uk/tours)
제작 공간을 볼 수 있는 백스테이지 투어(£12.00)와 오디토리움의 건축, 역사에 대해 배울 수 있는 투어(£9.50)로 나누어진다.
씨어터랜드 워킹투어(Theatreland Walking Tour) (www.officiallondontheatre.co.uk/theatregoers-guide/walking-tours)
웨스트엔드의 역사에 대해 설명해주는 도보 투어(£10)
글/사진: 김나영
런던 거주 5년차인 공연 마니아 & 맛집 내비게이터. 골드스미스 대학교에서 예술경영(MA)을 전공했다.
런던 거주 5년차인 공연 마니아 & 맛집 내비게이터. 골드스미스 대학교에서 예술경영(MA)을 전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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