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분위기로 가득한 런던 공연가

경제 침체기에 있는 영국에서는 이미 10월부터 연말 특수를 노리는 상점들이 마케팅에 박차를 가하며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조성 중이다. 그렇다면 영국의 최대 명절인 크리스마스를 단 열흘 앞두고 있는 지금 런던의 연말 공연가는 어떤 풍경일까. 이번 기사에서는 올 연말 주목받는 대표 공연작을 몇 가지 소개한다.

<마더 구스(Mother Goose)>


영국 연말 공연가에 매년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장르가 있다. 바로 ‘팬터마임’이라는 연극인데,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무언극 팬터마임과는 전혀 다른 것으로, 흔히 줄여서 판토(panto)라고 부른다.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각 도시마다 판토 공연을 하나씩은 찾아볼 수 있을 정도로 영국에서는 굉장히 대중적인 문화이다.

판토란 한마디로 ‘크리스마스때 공연하는 음악, 무용, 코미디가 혼합된 동화연극’이라고 정의되는데 <알라딘> <신데렐라> <잭과 콩나무> <피터팬> <위대한 모험가 위팅턴> 등의 작품이 대표적이다. 동화 연극이라고 하면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공연이라고 오해하기 쉽지만, 판토는 어른들에게도 인기 있는 장르다. 실제로 필자가 <마더 구스> 공연장을 찾았을 때 객석의 약 70%가 성인 관객으로 채워져 있었고, 흥미롭게도 회사에서 단체관람을 온 케이스도 여럿 볼 수 있었다.


관객들로 붐비는 <마더 구스> 공연장 앞

판토에는 반드시 빠지지 않는 몇 가지 요소가 있다. 첫째는 ‘데임 (Dame)’이라고 하는 여성 캐릭터인데, 주로 남자 주인공의 어머니를 가리킨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여성 캐릭터를 중년의 남자 배우가 맡는다는 점. 남자 배우가 여장을 하고 연기하여 웃음을 유발하게 된다. 둘째는 성적인 언어 유희인데, 어린이 관객이 들으면 평범한 대사지만 곱씹어 들으면 성인 관객만이 알아들을 수 있는19금 농담이 판토에서는 필수 요소다. ‘딕(Dick)’이라는 이름이 속어로는 남자의 성기를 뜻하는 점을 이용해 ‘We want Dick! We want Dick!’이라고 관객들이 소리치게 만드는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판토의 핵심은 관객 참여라고 할 수 있다. 일반 공연에서처럼 의자에 가만히 앉아 조용히 관람하는 것은 판토 공연에서는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악당이 등장하면 마치 프로레슬링을 관람하듯 엄지 손가락을 아래로 하며 ‘Boo’하고 야유를 보내고, 주인공이 위험에 처할 순간이 오면 목청껏 소리를 질러 조심하라고 알려주는 것은 판토 관객의 의무와도 같다. 자리에서 일어나 다같이 합창하며 춤을 추기도 한다. 이렇다 보니 공연이 끝나면 관객은 마치 콘서트라도 다녀온 듯 목이 쉬어서 극장을 나서게 된다.

올해 런던 내에서만 크고 작은 판토 작품이 스무 편이 넘게 무대에 오르는데, 전통적으로 판토에 강세를 보이는 해크니 엠파이어의 <마더 구스>를 대표로 소개한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 ‘프리실라’와 ‘마더 구스’를 중심으로 선악의 대립과 공주의 사랑 이야기를 소재로 하지만, 사실 판토에서 줄거리는 거들뿐, 중요한 것은 신나는 춤과 노래, 유머, 그리고 관객 참여다. <마더 구스>에서는 오리지널 넘버와 함께 ‘렛잇고’, ‘해피’ 등 올 해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았던 음악을 들을 수 있다. 여기에 스코틀랜드 독립투표, 아이스버킷 챌린지 등 올해의 이슈들이 유머로 버무려진다.

데임에 해당하는 ‘마더 구스’ 역을 맡은 클라이브 로우의 연기가 볼만한데, 로우는 이 작품으로 2009년 올리비에 어워즈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목청껏 소리지르며 스트레스도 풀고 크리스마스 분위기도 느끼고 싶다면 판토 관람을 강력 추천한다.

공연일정: ~2015년 1월 4일
장소: 해크니 엠파이어
홈페이지: www.hackneyempire.co.uk/3463/shows/mother-goose.html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Alice's Adventures in Wonderland)>


‘크리스마스 발레=호두까기 인형’이라는 공식을 깨고 올해 로열 오페라 하우스의 크리스마스 발레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낙점됐다. 2011년 초연되어 이미 호평을 받았던 작품으로, 안무가 크리스토퍼 윌든은 다시금 동화적 상상력을 환상적인 무대로 연출해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로열 발레단에서 퍼스트 솔로이스트로 활약하고 있는 재일교포 발레리나 최유희도 출연이 예정되어 있는데, 가장 좋아하는 역할로 ‘앨리스’를 꼽기도 했던 그녀가 이번에는 어떤 ‘앨리스’로 변신해서 돌아왔을지 매우 궁금해진다.

이미 전회 매진을 기록했지만 데이 티켓이나 ‘라이브 인 시네마’ 라는 방법이 남아있으므로 아직 실망하긴 이르다. 그간 <호두까기 인형>에 물렸던 발레 팬들에게는 신선한 재미를 줄 듯.

공연일정: ~2015년 1월 16일
장소: 로열 오페라 하우스
홈페이지: www.roh.org.uk/productions/alices-adventures-in-wonderland-by-christopher-wheeldon

<매튜본의 가위손 (Edward Scissorhands)>


2006년 한국을 찾았던 매튜본의 댄스뮤지컬 <가위손>이 올 겨울 다시금 영국 투어를 시작했다. 이번 공연에서는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의 원조 빌리 네 명 중의 하나인 리암 모우어가 에드워드 역으로 더블 캐스팅 되어 많은 빌리 엘리어트 팬들에게는 더욱 반가운 소식이 될 것 같다. 매튜본의 단골 협력자인 레즈 브라더스튼의 무대와 의상 디자인은 많은 비평가들이 입을 모아 칭찬한 바 있으며, 디자인만 즐겨도 티켓 값이 아깝지 않다는 말이 나올 정도라고. 하얀 눈발이 날리는 하이라이트 장면이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켜줄 작품이다.

공연일정: ~2015년 1월 11일
장소: 새들러스 웰즈
홈페이지: http://new-adventures.net/edward-scissorhands

* 사우스뱅크센터 크리스마스 마켓


사우스뱅크센터, 영국국립극장, BFI 등의 문화공간이 위치해 있는 템즈 강변의 사우스뱅크는 지금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한창이다. 바로 사우스뱅크센터에서 주최하는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렸기 때문인데, 이곳의 크리스마스 마켓은 여타 크리스마스 마켓에 비하면 아주 작은 규모이지만 빅벤, 런던아이, 템즈강 등 런던의 손꼽히는 야경을 함께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약 50여 개의 우든 샬레에서는 다양한 길거리 음식과 함께 각종 핸드메이드 장식품을 판매한다. 크리스마스 마켓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음식인 독일식 핫도그와 따스한 멀드와인 한 잔이면 런던의 12월 강추위도 잠시 잊을 수 있을 것이다.

일정: ~2015년 1월 4일
장소: 사우스뱅크센터

글/사진: 김나영
런던 거주 5년차인 공연 마니아. 골드스미스 대학교에서 예술경영(MA)을 전공했으며 평범한 관객의 시선으로 영국 공연계의 소식과 함께 런던의 즐길거리를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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