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연극, 서커스까지.. 유럽 페스티벌의 최고봉 글라스톤베리 페스티벌을 가다

올 듯 오지 않을 봄이 찬 바람을 이기며 영국에 다시 찾아왔다. 바야흐로 페스티벌의 계절, 페스티벌의 봄이 시작되었다. 지하철을 비롯, 런던 곳곳에 페스티벌을 홍보하는 포스터가 4월 이후부터 붙었다. 6월부터 9월까지, 가지각색의 포스터에는 가수들의 이름들이 큰 글씨로 인쇄되었다. 영국 뿐 아니라 다른 유럽 국가에서도 록 페스티벌을 비롯한 음악페스티벌, 그리고 연극 페스티벌 등이 봇물처럼 쏟아지는 시기다.

5월부터 9월은 유럽 페스티벌의 절정기

영국에서의 페스티벌은 1970년대부터 시작된 영국 남부의 서머셋(Somerset)에서 열리는 글라스톤베리 페스티벌 오브 컨템포러리 퍼포밍 아트(Glastonbury Festival of Contemporary arts, 이하 '글라스톤베리 페스티벌')나 아일 오브 와이트에서 열리는 지미 헨드릭스의 마지막 무대가 있었던 아일 오브 와이트 페스티벌(Isle of Wight Festival)과 같은 유서 깊은 페스티벌이 현재까지도 건재하며 6월부터 그 시즌을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영국 뿐 아니라 유럽 전역에서 5월 말과 6월을 시작으로 가을이 되는 9월까지 페스티벌의 시즌이 지속된다. 음악을 비롯하여 연극, 뮤지컬, 오페라 등의 각기 다른 장르의 예술을 집대성한 페스티벌이 종류별로 개최된다는 것도 큰 매력이다.

유럽 페스티벌의 시작을 알렸던, 5월 30일부터 6월 5일까지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개최된 프리마베라 사운드(Primavera Sound)는 라디오 헤드(Radiohead), 시규어 로스(Sigur ros), 피제이 하비(PJ Harvey) 등의 출연과 더불어 엄청난 수의 아티스트와 규모로 공연이 진행되었다. 심지어 라디오 헤드는 ‘크립(Creep)’을 8년 만에 라이브로 불러 화제가 되기도 했다.


7월에는 오스트리아 브레겐츠에서 진행되는 클래식 페스티벌인 브레겐츠 페스티벌(Bregenz Festival), 이탈리아 베로나에서는 베로나 오페라 페스티벌(Verona Opera Festival), 런던 하이드파크(Hyde Park)에서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 및 플로렌스 앤더 머신(Florence + The Machine), 퍼렐 윌리암스(Pharrell Williams), 테이크 댓 (Take That) 등이 출연하는 브리티쉬 섬머타임(British Summertime)이, 8월에는 에딘버러 프린지 페스티벌(Edinburgh Fringe Festival), 런던 로열 알버트홀을 중심으로 클래식 시리즈 공연이 진행되는 프롬스(Proms)가 예정되어 있다.

잠 잘 시간보다 놀 시간이 더 많아!
최정상 아티스트들, 연극 서커스 영화까지 함께- 글라스톤베리 페스티벌


영국에서는 아일 오브 와이트에서 개최되는 아일 오브 와이트 페스티벌과 브라이튼에서 하는 와일드 라이프 페스티벌(Wild Life Festival)의 시작으로, 페스티벌 시즌이 개막되었다.

그 중에서도 단연 글라스톤베리 페스티벌이 가장 주목할만하다. 라인업이 공개되지 않은 상태로 전년도 10월에 티켓을 판매하지만, 티켓 오픈 30분 만에 23만 장의 티켓이 모두 매진되는 엄청난 규모의 글라스톤베리 페스티벌은 올해 2016년 6월 22일부터 26일까지 진행되었다.


실제 공연은 3일간 진행되며, 올해는 뮤즈(Muse), 아델(Adele), 콜드플레이(Coldplay)의 세 헤드라이너를 발표하며 화제가 되었고, 페스티벌 일정이 브렉시트(BREXIT)를 결정짓는 투표일과도 겹쳐 페스티벌 내에 기표소를 설치하는 등 페스티벌고어(festival-goer)의 투표 참여가 이후 영국의 운명을 결정하는 데에 영향이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그 규모를 설명할 수 있다. 페스티벌 장소의 크기나 참여 인원의 숫자로 설명하지 않더라도, 글라스톤베리는 70년대부터 그 명맥을 이어오고 음악 공연 및 서커스, 연극과 코미디 등이 한 데에 어우러진 영국 최대의 페스티벌이다.

데이빗 보위를 추모하며...
뮤즈, 시규어 로스, 아델 등 최정상 아티스트들의 환상무대

올해 음악계에서 중요한 인물 중 두 사람인 데이빗 보위와 프린스가 세상을 떠나며 음악계에서도 큰 파장이 있었는데, 데이빗 보위의 죽음은 영국 음악과 패션계 내에서도 엄청난 이슈가 되었다. 올해 글라스톤베리의 상징과도 같은 메인 스테이지인 피라미드 스테이지(Pyramid Stage)의 가운데는 보위의 눈과 번개모양을 장식하여 추모의 의미를 더했다.


'글라스톤베리의 시즌이 왔다'고 말할 정도로 페스티벌 기간이 다가오면서 날씨가 험상궂어졌는데 비로 인한 페스티벌 장소는 잔디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전부 진흙탕이 되어 있었고, 공연이 진행되는 3일간 비가 오락가락했다. 본격적인 공연이 시작되는 첫 날, 공교롭게도 영국의 새 역사가 쓰여진 날이기도 해서인지 사람들에게도 들뜬 모습이 역력했다. 라디오에서는 연신 브렉시트에 대한 이야기가 흘러나왔고, 사람들은 독립된 영국에 대한 자유와 EU에서 탈퇴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나 실망감 등을 보이는 등 동시에 상반된 반응을 보였다.

첫 날, 피라미드 스테이지에서는 뮤즈가, 아더 스테이지(Other stage)에서는 디스클로저(Disclosure), 존 필 스테이지(John Peel stage)에는 시규어 로스(Sigur ros)가 헤드라이너로 섰다. 같은 시간대의 세 굵직한 아티스트를 배치하는 것으로 글라스톤베리의 라인업 규모를 대략 짐작해볼 수 있겠지만, 공연을 보는 입장에서는 어떤 라인업을 골라 공연을 봐야할 지를 고민해야 하는 순간이다.

뮤즈는 뛰어난 연주로 글라스톤베리 피라미드 스테이지를 열광의 도가니로 만들었고, 둘째 날의 헤드라이너였던 아델은 "7살 때 가족들과 여기에 와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공연을 보면서 언젠가 저기서 공연을 하면 멋지겠다 생각했었는데, 오늘 그 꿈이 이루어졌다."고 말하며 사람들의 호응을 받았다. ‘헬로(Hello)’와 '롤링 인 더 딥(Rolling in the Deep)’의 떼창은 피라미드 스테이지를 가득 채웠다.


대부분의 아티스트에게는 꿈의 스테이지인 글라스톤베리 페스티벌은 무대에 서는 사람과 관객을 하나로 묶고 서로 포용할 수 있는 정신을 기반으로 한다. 마지막 날의 헤드라이너를 장식한 콜드플레이는 최근 발표한 앨범의 신곡을 비롯하여 비지스(Bee Gees)와 콜라보레이션을 하며 ‘스테이 얼라이브(Stay Alive)’를 부르는 등 피라미드 스테이지를 거대한 디스코장으로 만들기도 했다. 같은 시간에 웨스트 홀트 스테이지(West Holt Stage)에서 공연을 한 얼스 윈드 앤 파이어(Earth, Wind, and Fire)도 스테이지에 모인 관객들을 들썩거리게 하며 화려한 연주로 공연을 마무리했다.

글라스톤베리 페스티벌의 이름에 담겨있듯 연극이나 서커스를 공연하고 영화를 상영하는 스테이지 또한 운영된다. 특히 연극 및 서커스 필드(Theatre & Circus Field)에 가면 특이한 분장을 한 사람들과 거리에서 공연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아이들을 위한 키즈 필드(KIZ Field) 및 그린 키즈 필드(Green Kids Field)에서는 워크숍 등 아이들이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이 다양하게 진행되었다. 여러 스피치와 공연이 동시에 진행되는 레프트 필드(Left Field) 스테이지에서는 아이들이 쓴 시와 글을 발표하는 시간을 가지며 사회와 교육 및 아이들의 미래에 대한 논의를 하기도 했다.


헤드라이너의 공연이 모두 끝나는 시간부터는 밤에 운영되는 아카디아(Arcadia), 블록9(Block 9), 더 커먼(The Common), 언페어그라운드(Unfairground), 샹그릴라(Shagri-la) 등의 스테이지에서 디제잉과 클러빙이 새벽 5시까지 진행되고, 올해 새로 생긴 스테이지인 글라스토 라티노(Glasto Latino)에서는 라틴댄스를 새벽까지 가르쳐주기도 한다. 사람들은 헤드라이너의 공연이 끝나면 앞뒤 다투어 무거운 장화를 끌고 각각의 스테이지로 향한다. 체력만 주어진다면 잠을 잘 시간보다 놀 시간이 더 많이 주어지는 곳이다. 그리고 페스티벌을 함께 하는 친구들, 가족들과 모닥불을 피우고 촛불을 켜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스톤 서클(Stone Circle)에서 여기 저기에서 들리는 음악을 들으며 하루를 마무리하면 이보다 좋을 수 있을까.


음악만이 아닌 공연 및 서커스, 영화, 그리고 프로그램 참여 등으로 더 풍성한 글라스톤베리 페스티벌은 어린 아이부터 나이 지긋하신 어른들까지 누구나 편견 없이 공연을 즐길 수 있는 5일간의 다른 세계였다. 7월에서 9월 동안 펼쳐질 각국의 페스티벌 시즌 동안 어디서든 음악 및 연극, 클래식, 뮤지컬 등의 장르 융합의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길 바란다.

글/사진: 신지은
언론정보학, 공연영상학을 전공하고 뮤지컬/연극실기석사를 마친 후 공연계에서 일하던 중 갑자기 런던으로 향한 공연 여행자. 워킹홀리데이로 런던에 갔지만 한량으로 살면서 공연소식을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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