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엔드도 별 수 없게 만드는 국경의 색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웨스트엔드 공연들 중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작품들을 어떻게 간추릴 수 있을까? 개인적인 기호에 따라 공연에 기대하는 바가 다르겠지만, 대형극장이라고 해서 공연의 질이 좋다는 보장을 할 수 없을 뿐더러, 100석 정도인 작은 프린지 극장에서의 공연도 평가가 좋을 경우 티켓이 일찌감치 매진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좋은 공연에 대한 정보 찾기는 런던 시어터고어(Theatregoer)들에게 매우 중요한 일들 중 하나이다.

최근에는 여러 개인 인터넷 블로거들이 웨스트엔드에 대한 공연 정보를 발 빠르게 제공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웨스트엔드를 자주 찾는 시어터고어들은 각 신문사 및 관련 잡지에 실리는 평론가들의 리뷰를 보고 작품의 질을 가늠해 보고 공연을 보러 갈지 결정하는 것 같다. 이말은, 평론가들의 오랜 경험과 풍부한 배경 지식을 바탕으로 쓰여진 리뷰가 관객들에게 신뢰를 얻고 있다는 뜻이고, 다른 의미에선 웨스트엔드만큼 리뷰에 의해 공연의 성공 여부가 좌지우지되는 시장도 없다고 풀이할 수 있겠다.

하지만 필자의 경험에 비춰볼 때, 웨스트엔드의 평론가들 리뷰에 충분히 공감하는 면도 있지만, 언제나 그들 의견에 동의하게 되지는 않는다. 아무래도 동양의 정서와 문화 속에서 자란 필자에게는, 서양의 문화와 역사를 이해하는 것은 삶의 경험에서 축적된 것이 아닌 학습의 결과물일 뿐이기에, 공연을 바라보는 또 다른 시선이 생겨나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최근 개막한 <컴 댄싱>, 반응은 '글쎄'

최근 시어터 로열, 스트랏포드 이스트(Theatre Royal, Stratford East)에서 초연된 신작 뮤지컬 <컴 댄싱, Come Dancing>의 경우도 문화적 배경이 다른 관객들이 보기엔 그리 공감가지 않는 부분이 많았던 공연이었다. 60년대 영국의 록큰롤 그룹 킨크스(Kinks)의 멤버 레이 데이비스(Ray Davies)와 1950년대 영국의 일포드 팰레(Ilford Palais)라는 댄스 홀에 대한 향수로부터 만들어진 이 뮤지컬은 거의 대부분의 평론가들이 좋은 평가를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동시대를 경험하지 못했던 나와 같은 관객들에겐 그리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키진 못하리라 생각해 본다.

웨스트엔드를 비롯해 전세계적으로 사랑 받는 뮤지컬들이 보편적 주제를 가지고 여러 다양한 관객들을 만족시키는 것과는 달리, (다른 공연 예술 장르에도 해당 되겠지만) 뮤지컬도 나라에 따라 또는 관객들의 문화적 배경에 따라 선호하는 공연 형태가 조금씩 다른 것은 분명한 일이다.

프랑스 뮤지컬, 웨스트엔드와 또다른 색

<노트르담 드 파리, Notre Dame de Paris>와 <로미오와 줄리엣, Romeo and Juliet: the Musical>으로 대변되는 프랑스 뮤지컬의 경우는 국적과 문화적 배경에 따라서 관객들의 선호도가 극명하게 엇갈리는 좋은 예이다.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는 1998년 파리 팔레 데 콩그레 (Palais des Congres) 극장 초연 이후 2005년까지 프랑스 전국 순회 공연으로 약 400만 명의 관객을 끌어 모았다. 전 세계적으로 14개국에서 2700여 회의 공연으로 800만 명의 관객을 끌어 모은 이 작품은, 특히 한국에서도 커다란 성공을 거둔 작품으로 기억되고 있다.

우선 작품이 프랑스 및 한국에서 크게 사랑 받은 이유는 무엇보다 음악과 시각적인 요소를 중요시하는 관객들의 선호도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당시 프랑스 캐스트도 뮤지컬 배우들 보다는 유명 가수들이 주요 배역으로 출연하였는데, 갈라 콘서트를 연상케 하는 큰 무대를 씀으로써, 관객들의 집중을 요하는 배우들의 연기력보다는 공연장의 크기에 비례한 큰 성량의 뛰어난 노래 실력을 가진 가수들을 필요로 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반복적으로 쉽게 귀에 들어오는 대부분의 곡들은, 극의 플롯과 캐릭터의 구체적인 설명 및 발전이 아닌, 스토리에서 영감을 얻은 관념적이고도 추상적인 극적 이미지를 한껏 부각시키는 데 일조하는 면이 컸다. 또한 주요 배역과 분리된 무용수들의 서커스 곡예와 같은 안무와 여러 무대 장치로 극대화된 시각적 효과가 우리 나라 관객들뿐 아니라, 자국의 관객들에게 호소하는 면이 큰 부분을 차지한 것으로 보인다.

반면에 이 작품은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축소된 작품으로 올려진 적은 있으나 아직 브로드웨이에서는 공연된 적이 없고, 웨스트엔드에선 2000년 런던 도미니언 극장(Dominion Theatre)에서 17개월간 공연되었지만 대체적으로 좋은 평가는 얻지 못했다. 이유는 작품이 영미권 관객들의 기호와 쉽사리 맞아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인데, 당시 웨스트엔드의 여러 평론가들도 언급했지만, 작품의 음악과 가사, 안무, 시각 효과 등이 논리적이고 유기적인 연결을 중요시하는 영미권 뮤지컬 스타일과는 상반된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브로드웨이나 웨스트엔드의 뮤지컬들은 전통적으로 음악을 통한 작품의 스토리텔링의 역할을 중시하는데, 이를 테면 아무리 음악이 아름답다고 해도 곡이 스토리와 캐릭터의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하면 작품에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반면에 우리나라와 프랑스의 경우 음악이 스토리텔링에 커다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전체적으로 작품을 이해하는데 크게 문제가 없다면 음악이 주는 느낌 또한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는 편이라 볼 수 있다.

2002년 웨스트엔드의 피카딜리 극장(Piccadilly Theatre)에서 단 4개월 간의 짧은 기간 동안 선보이는데 그쳐야 했던 뮤지컬 <로미오와 줄리엣>의 경우도 위의 <노트르담 드 파리>의 경우와 크게 다르지 않은 예이다. 

영국에서 더 사랑받는 스티븐 손드하임

이와는 반대로 우리 나라에서는 아직 대중적이지 않은 미국의 뮤지컬 작사, 작곡가 스티븐 손드하임(Stephen Sondheim)의 작품들은 미국에서 만큼이나, 아니 어쩌면 미국에서보다도 영국에서 더 사랑 받는 모습이다.

그의 주요 작품들이 기존의 익숙한 뮤지컬 진행 양식과는 전혀 다른, 조금은 귀에 낯선 곡들 이기에 일반 뮤지컬 팬들이 어려워 하는 면도 있지만, 실험적이고 위트 있는 음악과 가사의 조합이 극의 진행에 있어서, 직,간접적으로 유기적인 인과관계를 만들어내는 양상을 좋아하는 많은 영국 팬들은 그의 작품에 언제나 커다란 관심과 환호를 보낸다.

런던의 대표적 프린지 극장인 메니에 쵸콜릿 팩토리(Menier Chocolate Factory)에서 제작한 손드하임의 <선데이 인 더 파크 위드 조지, Sunday in the Park with George>의 커다란 성공은 이러한 설명을 잘 대변하는 대표적 예일 것이다. 2005-06년 크리스마스 시즌에 공연된 이 손드하임의 명작은 웨스트 엔드 평론가들의 찬사를 받으며 2006년 5월 웨스트엔드의 윈덤 극장(Wyndham’s Theatre)으로 확대 이전하였으며, 2007년 로렌스 올리비에상 5개 부문을 휩쓸며 작품에 대한 영국 관객들의 사랑을 과시하기도 하였다. 또한 이 작품은 역으로 올 해 브로드웨이에 건너가 라운드어바웃 시어터 컴퍼니의 스튜디오 54에서 5개월간 공연되며 좋은 반응을 얻기도 했다.

오는 2008년 11월에 메니에 쵸콜릿 팩토리에서 시작하는 손드하임의 <어 리틀 나잇 뮤직, A Little Night Music>도 현재 웨스트엔드 크리스마스 시즌에 커다란 기대를 받고 있는 작품들 중 하나이다. 전의 <선데이…>가 웨스트 엔드와 브로드웨이에서 성공한 경험이 있기에, 처음으로 손드하임의 작품을 연출하는 트레버 넌(Trevor Nunn)의 연출력과 최근 확정된 캐스팅이 함께 얼마나 시너지 효과를 발하게 될지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웨스트엔드에서 대접 못 받는 <지킬 앤 하이드>

<지킬 앤 하이드, Jekyll & Hyde>는 우리나라에서 커다란 성공을 거둔 뮤지컬인데 반해 웨스트엔드에서는 크게 대접을 받지 못하는 예 중 하나일 것 같다.

우리나라의 경우 주인공 역할을 맡은 남자 배우의 인기가 공연 성공에 큰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작품의 음악도 관객들에게 크게 작용하는 부분임이 확실하다. 하지만 아이러니한 사실은 작품의 배경이 런던인 이 브로드웨이 뮤지컬이 2004-05년 영국 지방 투어 공연을 한 적은 있지만, 아직 웨스트엔드에서 정식으로는 공연된 적이 없는 관심 밖의 작품이라는 것이다.

대체적으로 영국의 평론가들이 내놓는 작품의 문제점은 작품 자체가 여러 인물들이 등장함에도 원맨쇼에 가까운 지킬/하이드의 캐릭터에만 플롯의 전개가 집중되어 있다는 것과(다르게 말하면 다른 배역들은 작품에서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각 장면의 곡들이 스토리 전개에 커다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 전체적인 작품의 구성이 치밀하지 못하다는 점 등을 들 수 있겠다.

그렇다면, 무엇이 좋은 공연?

결국에는 작품들이 만들어진 배경과 의도가 모두 다르기 때문에, 작품 주제가 이러한 이질감을 극복할 정도로 보편적인 것이라면 어느 누구에게나 좋은 공연으로 다가올 수 있겠지만, 특정 관객층을 노린 작품이라면 다른 분류의 관객들에겐 2시간 반의 공연 시간과 공연을 보기 위해 들인 노력은 완벽한 낭비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30대 중반의 한 웨스트엔드의 평론가가 지난 여름 시즌 동안 청소년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얻은 디즈니의 <하이 스쿨 뮤지컬, High School Musical>을 보러 갔다가 왜 자기가 이 공연을 봐야하는지 모르겠다며 자신의 직업이 때로는 잔인하다고 애교섞인 하소연을 하는 글을 본 기억이 난다. 결국엔 정말로 좋은 공연은, 남들이 이야기하고 칭하는 떠들석한 작품이 아닌, 내가 즐기고 좋아할 수 있는 공연, 그것이야말로 정말로 좋은 공연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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