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로열 발레(The Royal Ballet)의 기대주, 발레리나 최유희

런던에서만 즐길 수 있는 문화적 특별함 중의 하나는 코벤트 가든에 자리잡고 있는 로열 오페라 하우스(Royal Opera House)에서 세계적인 발레단인 영국 로열 발레단의 빼어난 작품들을 맛볼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다른 유수의 발레단에 비해 역사는 짧지만 쿠바, 이탈리아, 호주 등 세계 여러 나라에서 오로지 실력만 믿고 날아온 최고의 발레 댄서들이 만들어 내는 영국식 스타일의 독특한 조화로움이야말로 오늘날 로열 발레단이 세계적인 명성을 가질 수 있게 된 이유중의 하나이다.

그리고 한국인으로는 유일하게 발레단의 일원이면서 차세대 로열 발레를 이끌어갈 재목으로 주목받고 있는 발레리나 최유희의 연기를 볼 수 있다는 사실도 꽤나 특별하다. 발레단의 수석 무용수들을 부르는 프린시펄(Principal)의 바로 전 단계인 퍼스트 솔로이스트(First Soloist)로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최유희씨는 이미 발레를 좋아하는 국내 팬들에게도 낯설지 않은 이름이다.

그녀는
일본 후쿠오카에서 태어나 어린 나이에 파리로 유학하고 로열 발레단에 입단해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녀의 인생은 발레에 문외한인 사람에게도 꽤나 흥미진진해 보인다. 재일교포 4세대에 해당하는 그녀는 일본에서 나고 자랐다. 5살부터 배우게 된 발레의 매력에 빠져, 14세의 나이에 파리로 유학을 결정하고, 2002년 스위스 로잔 콩쿠르(Prix de Lausanne)에서 수상하며 로열 발레단에 연수생(Apprentice)자격으로 런던에 온 것이 로열 발레단과의 인연의 시작이었다.

올해로 25살인 그녀는 이제 그녀의 발레 인생에 있어서 커다란 전기를 맞이하고 있는 듯 보인다. 퍼스트 솔로이스트로 승급된 지 얼마 안되어 <호두까기 인형>과 <라 바야데르>에서 주역 무용수로 발돋움하며 로열 발레의 차세대 주역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녀의 춤에 대한 영국 언론을 포함한 전문가들의 반응도 무척이나 호의적이다.

계속되는 공연으로 인한 바쁜 스케줄에도 불구하고 어느 늦은 금요일 오후 오페라 하우스 안에서 인터뷰에 응한 최유희씨의 첫인상은 단아한 동양적인 매력과 차돌과 같은(?) 매끄러운 단단함이었다.

하루 일과는 어떤가요?
일이 쉽지 않아요.(웃음) 보통 10시 30분까지 출근해서 몸을 풀기 시작하죠. 12시에 리허설을 시작하구요. 운이 좋으면 점심시간을 갖고 5시 30분 정도에 리허설이 끝나요. 공연이 있는 날에는 저녁 10시 30분쯤 일이 끝나기 때문에 거의 12시간 일하는 셈이죠. 공연 없는 날엔 조금 일찍 끝나구요. 지금 웨인 맥그리거(로열 발레단의 상임 안무가)의 신작 연습에 참여하고 있는데 안무가 빠르고 높은 수준을 요구하기 때문에 항상 집중해야 해요. 작년에 처음 그의 신작인 <인프라, Infra>에 참여할 수 있었는데 처음에는 그의 스타일에 대해 잘 몰랐기 때문에 따라가기 바빴죠. 지금은 많이 좋아졌어요.

현재 진행되고 있는 작품은 무엇인가요?
현재 내년 초까지 <잠자는 숲속의 미녀, Sleeping Beauty>, 트리플 빌<아곤/스핑크스/라이먼, Agon / Sphinx / Limen>, <스케이트 타는 사람들, Les Patineuer>, <호두까기 인형, The Nutcraker>까지 네 작품이 진행중이에요. 꽤 많고 힘들지만 발레단의 방식이기 때문에 열심히 하고 있죠.

올해 <라 바야데르>에서 니키야역으로 데뷔한 모습

특히 올 해는 유희씨의 발레 경력에 있어서 특별했을 것 같은데요?
맞아요. 꽤 많은 일들이 일어났죠. 우선 <라 바야데르>의 주역으로 연기할 수 있는 큰 기회가 있었어요. 발란신의 <루비>도 매우 즐거운 경험이었고, 또 알리나 코조카루의 부상으로 대신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도 몇번 있었어요. 특히 여러 작품에 참여하면서 점점 더 나 자신의 영역을 만들어나가고 있는 느낌이죠.

 작년에 이어 크리스마스 시즌 레퍼토리인 <호두까기 인형>의 사탕요정으로 올해도 공연할 계획인데요?
예, <호두까기 인형>도 저에게는 특별하죠. 어렸을 때 꽤나 사탕요정을 연기하고 싶어했어요.(웃음) 작년에는 원래 스케줄 상의 공연 뿐 아니라, 다른 무용수의 부상으로 대신 투입된 경우도 있어서 세 명의 남자 파트너가 있었죠. 그들과 호흡하는 것이 쉽지 않았어요.올해에는 이반 푸트로프(Ivan Putrov)와 연기할 예정이지만 또 누가 알아요? 다른 기회가 생길지.(웃음) 여러 파트너와 연기할 수 있는 기회는 좋은 것 같아요.
 그 동안 어떤 발전이 있었다고 생각하나요?
정말 많은 발전이 있었어요. 우선은 퍼스트 아티스트에서 퍼스트 솔로이스트로 승급한 것은 저에겐 정말 커다란 도약이죠. (그녀는 솔로이스트 단계를 건너뛰고 바로 퍼스트 솔로이스트로 승급했다.) 지금 단계는 정말 전과는 매우 다른 상황인 것 같아요. 전에 코르 드 발레(군무를 추는 무용수)로 5년간 일하던 시기와는 다르게 지금은 내 자신 영역을 만들어 가는 느낌이 많이 들어요. 특히 지난 시즌은 그런 느낌을 더 가질 수 있었구요. 언제나 자신감을 가지고 있지만 지금은 더 자신감을 갖고 무대에서 더욱 즐기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바보 같은 질문이지만 멀지않은 미래에 프린시펄이 될 수 있을 것 같은데. 프린시펄이 되는 것이 꿈이지만 누가 알겠어요? 정말 그렇게 되기를 바랄 뿐이죠. 하지만 지금의 안좋은 경제 상황이 전체적으로 문화 예술계쪽에도 영향이 있는 것 같아요.

 특별히 좋아하는 안무가나 작품이 있나요?
아직 특별히 좋아하는 작품이나 안무가는 없어요. 지금은 조금 더 많은 시도를 하고 싶어요. 그래서 현재 웨인 맥그리거의 신작에 참여하는 것이 저에겐 꽤 큰 도전이죠. 나 자신을 통해 새로운 무엇인가를 창조하는 작업이 제게는 특별하고 이런 작업을 앞으로도 계속하고 싶어요.

 프레데릭 애쉬튼(Frederick Ashton)과 케네스 맥밀란(Kenneth MacMillan)과 같은 영국 안무가들은 특별히 로열 발레와 밀접한데요?
그들의 작품들을 좋아해요. 그들이 로열 발레를 위해 많은 작품들을 만들었고 그것이 커다란 역사가 되었죠. 안타깝게도 이미 두 분은 돌아가셔서 이제는 같이 일할 수 없지만, 그들과 일했던 사람들이 아직 발레단에 있고 나를 가르치고 있다는 사실은 정말 특별하죠. 제가 내년 봄 시즌에 애쉬튼만의 특별함이 있는 <신데렐라, Cinderella>와 <고집쟁이 딸, La Fille Mal Gardee>의 주역을 맡았는데 흥분되고 또 고대하고 있어요. 그리고 맥밀란의 <콘체르토, Concerto>도 내년 봄에 공연해요.

 어릴 적 파리 오페라 발레단에 가는 것이 꿈이었다는데 지금은 어떤가요?
지금은 더 이상 아니에요. 전에는 정말 그곳에 가고 싶었지만 지금은 여기가 저에게 최고의 무대입니다. 

 쉬는 날에는 주로 무엇을 하나요?
보통 일요일에 쉬는데 주로 일본에 계시는 부모님과 통화하구요, 가끔 동네 시장에 가서 꽃을 사거나 맛있는 레스토랑에서 음식을 먹으면서 휴식을 취하죠. 가끔 친한 친구들과 한국 음식점에 가서 불고기 전골을 먹어요.(웃음)

 한국에 가본 적이 있나요?
2003년 가족들과 함께 대구의 친척집에 방문한 적이 있어요. 2005년에는 로열 발레단이 <신데렐라>로 서울과 대구에 공연했었을 때 갈 수 있었구요. 한국은 일본과 비슷한 느낌이에요. 특별히 기억에 남는건 발레단 일로 한국에 갔을 때 친척들과 동대문 시장에 갈 기회가 있었는데 꽤 재미있는 경험이었어요.(웃음) ‘깎아 주세요’를 연발했죠.

 런던에 살면서 좋은 점과 나쁜 점은 무엇인가요?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런던은 정말 매력적인 도시인 것 같아요. 너무나 많은 일들이 주변에서 일어나죠. 특별히 오페라 하우스에서 일하면서 엘리자베스 여왕과 같이 생각지도 못한 사람들이 발레를 보러 오는 것은 특별한 경험이죠. 쉬는 날엔 다른 공연들을 보러 다니기도 하는데, 클래식 발레나 현대 무용들을 보러 새들러스 웰스(Sadler’s Wells)극장도 자주 가요. 나쁜 점은 날씨와 교통이죠. 스트레스 받지 않으려고 하지만 가끔은 버스를 타기위해 오래 기다려야만 해요. 일본과는 비교할 수도 없죠.

그녀의 미래가 궁금하다.
인터뷰가 끝난 후 저녁 공연 준비를 위해 총총히 사라지는 그녀에게 마음으로나마 ‘힘내요!’라고 응원의 말을 전했지만, 한걸음 한걸음 내딛는 그녀의 다부진 모습에서 새로운 도전을 즐기는, 조용하지만 강단있는 미래 로열 발레단의 주역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조만간 그녀의 또 다른 희소식을 기대해 본다.

*인터뷰는 영어로 진행되었고, 필자에 의해 의역되었습니다.

사진: 임광수, Johan Persson (프러덕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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